4주 차- 숙제 (감각 자극 글쓰기)
파도의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나자, 드높이 올려 휘몰아쳤다. 은빛 날개는 이내 보글보글 거품을 내며 사그라졌다. 나는 파도타기를 하는 아이처럼 신이 나다가도, 금세 시든 꽃처럼 축 늘어졌다. 그렇게 파도의 울렁거림은 쉼 없이 반복됐다.
비에 젖고 바람에 찢긴 산굴뚝나비처럼, 풀잎 끝에서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며, 북서풍이 들락거리는 방 안 구석에서 꼼짝없이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온 바람은 내 심장을 얼음 속에 밀어 넣은 듯 차가웠다. 쪼그라드는 심장에 설핏 잠이 깼다. 내려앉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흐릿한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커튼이 없는 창문은 바깥 풍경을 직사각형 액자 속에 가두어 두고 있었다. 앙상한 나목들 사이로 노을의 잔해가 감귤빛으로 흩어졌다. 나목은 겨자빛을 띤 겨울눈을 품고 있었다. 그 작은 겨울눈은 북서풍에 흔들리며 가지에 매달려 있으려는 듯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어둠이 흑빛으로 짙어지자 창밖의 나목은 창문에 바짝 다가와 괴상한 춤을 추었다. 저승사자의 도포를 걸친 듯 요상하게 몸을 흔들며 킥킥거렸다. 방 안은 어둡고, 가로등 불빛만 노르스름하게 창문을 더듬었다. 그 빛 아래에서 가지들은 마치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 같았다.
그때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뭇가지의 떨림인지, 바람의 숨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점점 그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또렷해졌다.
“이쪽으로 와.”
누군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창밖의 나목은 여전히 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바람은 빈가지 사이를 헤집으며 다시 속삭였다.
“여기 따뜻해.”
나목의 숨결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서릿빛 외투를 걸치고 현관문을 열었다. 계단 위로 밀려오는 찬 공기가 코끝을 스쳐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천장에 붙박이처럼 붙은 전등은 갓 부화한 병아리처럼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내 몸을 감싸는 듯했다. 계단 손잡이는 금속으로 되어 있어 겨울밤의 냉기가 손바닥을 타고 심장을 관통했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창문 속에 갇혀 있던 나목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둠의 옷을 입은 나목의 몸통은 까맣게 그을린 듯했다. 나목은 비틀거리며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바람이 가지를 흔들며 내 머리카락을 스쳤다. 일주일째 감지 못한 머리칼은 부석거렸고, 허리까지 내려온 모카빛 머리카락은 바람결에 나뭇가지를 향해 뻗어갔다. 닿지 못한 머리카락이 허공을 헤매었다.
“더 가까이.”
소리가 들리는 나무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내 그림자는 길게 뻗은 나목의 몸통과 맞닿더니, 이내 먹빛으로 물결을 쳤다. 나뭇가지는 미세하게 떨리며 서서히 일렁였다. 가지 끝에 매달린 겨울눈 하나가 얇고 투명한 비늘을 벗어냈다. 그 안에서 이슬 같은 물방울이 툭, 하니 떨어지며 내 입술을 적셨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혀끝을 스쳐 목구멍으로 타고 심장 깊숙이 스며들었다. 순간,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이 나뭇가지와 뒤섞었다. 내 몸은 점점 알 수 없는 비릿함에 젖어들었다. 손끝이 물결 속으로 녹아들 듯 흐려졌다. 나는 은빛의 날개를 펴고 파도를 타고 있었다. 파도의 겨드랑이에서 돋아난 날개가 포말을 일으키며 서리빛을 터뜨렸다. 출렁이는 소리 속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이제 괜찮아. 잠시 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