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있나요?
게으른 완벽주의자는 후회가 가장 두려웠어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보다 나에게 실망한 사람을 마주하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나에게 걸었던 기대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이려니 싶어 내가 더 형편없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내가 미처 알지 못한 후회할 점들을 새롭게 알아갈 때마다 속살이 다르게 아팠습니다.
후회를 세는 시간이 무섭도록 지겨워질 즈음에는 매순간 나를 태우며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스스로가 기꺼이 장작이 되어 두들겨 패고 활활 태웠습니다. 무엇이 좋을지 혹은 옳을지 보다는 지금 무슨 기대를 받고 있는지에만 오감을 기울였습니다.
비아냥거리는 내면의 소리에는 특히 집중해 내가 빤히 비칠만큼 닦아냈어요.
마침내 누군가에게 꺼내어 보일 정도가 되면 흔들리는 동공을 붙잡으며 다음에도 꼭 맡겨달라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한계를 모르고 솟는 기대를 맞추기는 어려웠습니다. 분수에 맞지 않게 꿔다 놓은 불쏘시개마저 동이 나니 비로소 까맣게 재가 된 채로 멈출 수 있었어요.
이제는 최선을 다할 체력은 없지만 여전히 실망을 받아낼 여유는 더욱 없었습니다.
그때부터는 겁없고 도전하길 좋아하는 제가 후회에게는 여지없이 발목을 내어주는 선택을 했습니다.
새로운 과제가 주어질 때면 이 결정이 정말 최선일지에 대해 과거-현재-미래의 내가 끊임없이 토론을 벌였습니다. 더이상 그 누구도 실망시킬 수 없었으니까요.
마침내 내가 해야 할 선택을 추려보면 기회는 이미 사라지고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쉽지 않아요.
이미 떠올려 본 많은 후회의 경우의 수로 마음이 너덜거려서 차라리 포기하고 싶던 참이었거든요.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건 내가 포기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었던 거라 자위합니다.
나에게 하는 실망으로 후회가 비집고 나올 구멍마저 완전히 틀어막고나니 이상한 안도감까지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배달 어플을 켜고 두 시간 반을 망설이다 끼니를 거르고, 다이소에 공책을 사러갔다가 세 시간 뒤에 울며 빈손으로 나오면서도 어디가 고장난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엔 인형뽑기 기계 앞에 서서 꽉 움켜쥘 수 있는 정확한 자리를 찾으려고 움찔거리다 실수인 척 핸들을 놓았습니다.
주어진 제한시간이 지나서 인형뽑기 속 집게가 멈춘 자리 그대로 구겨져 내려가버리는 모습을 보며 이번에도 아무 선택도 않는 걸 선택했습니다.
아무런 선택을 안한 줄 알았는데 실패라는 성적을 받았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나는 그간 계속해서 받은 결과를 외면했구나. 결과에 따른 책임을 물을까 도망치고 회피하기 위해 나라는 주체를 지웠다고 착각했을 뿐이고,
선택하지 않은 그 선택 또한 나의 선택이었음을요.
그렇다면, 진정으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지 나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기 마련인데, A가 아닌 B를 선택하면서 필연적으로 감내해야 할 아쉬움과 후회는 어떻게 소화해야 할 지를 다시 고민했습니다.
과거의 나에게로 돌아가는 몇 번의 타임슬립을 상상하면서 무엇이 정답일지를 따져 물었어요.
마치 영화 '어바웃 타임' 속 주인공 '팀'처럼 시간을 몇 번이고 되돌려보았는데 결과는 늘 같아요. 그때의 나는 다른 결정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더이상 시간을 돌려보며 과거에만 머물러있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그보다는 과거의 나를 믿고 존중하기로 했어요.
내가 만일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 순간만큼의 열정과 체력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더 이상 미련을 둘 이유도 없습니다.
물론 과거의 나에 대한 믿음이 제법 두터워지려면 현재의 나도 맡은 바 몫을 다해야 합니다.
적당히 내 몸 속 부품들이 굴러가고 삐걱대지 않을만큼 쉬어주고, 주어진 상황 내에서 지금의 나에게 후회없을 결론을 내립니다.
미래의 나에게 지장을 주지 않고
과거의 나를 믿을 수 있을만큼만
현재의 내가 최선을 다합니다.
이것이 제가 후회하지 않는 선택입니다.
최선을 다하려다 번아웃이 오고, 후회하지 않으려 선택을 회피하던 제가 주어진 선택을 할 수 있어졌네요.
여러분 오늘도 후회없는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