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 상자를 ‘현자’라 불렀다.
그것은 흐릿한 존재다. 모든 존재마다 고유의 크기와 색, 질감이 있는 것처럼. 그것은 고유의 흐릿함을 태생으로 지녔다. 그것은 때로 자신의 흐릿함조차 흐릿하게 만들어 흩어질 뻔 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본질적 존재를 추구한다. 그러니 그것의 존재를 위한 추구는 흐릿한 존재로 존재하기 위한 싸움이다.
그것은 상자를 만났다. 무언가 들어 있는 사람 모양 상자. 무언가는 사람 모양 상자를 입고 살고 있었다. 그것 또한 상자가 되기로 했다. 자신도 그렇게 흩어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흐릿하지만 동시에 또렷한 존재로 살 수 있는 방법을 그것은 찾아낸 것이다. 이제 그것은 사람 모양 상자 안에서만 존재하는 무언가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것의 유일한 생존 방식은 사람 모양 상자 안에서 사는 것일지 모른다.
그것은 상자를 단단히 봉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상자 안으로 들어온 것은 그것이 무엇이던 흐릿한 자신과 구분되지 않으니, 절대로 내보내지 않으려는 듯. 그것은 기쁨도 슬픔도 오롯이 받아들이며 진정시키지 않고, 부정하지 않고, 긍정하지 않고, 그저 수용하며 단단히 봉했다. 상자 안에 많은 격정이 터를 잡았고, 상자는 그것을 가두기 위해 점점 단단해졌다. 그렇게 사람과 닮은 가장 단단한 상자가 세상에 태어났고, 사람들은 이 상자를 ‘현자’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