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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성벽이 떠오를 요크 여행일지

영국 도시 여행에 눈을 뜨게 되었다

by 윤슬


어느 날 상쾌한 기분으로 눈을 떴는데 뒤통수가 싸늘한 기분이 들 때, 이상하리만치 해가 높이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어렴풋이 울리는 알람을 끄고 잠을 청한 기억이 희미하게 머릿속에 스치고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늦잠을 잤다는 것을. 황급히 폰을 켰다. 아침 8시에 버스가 출발하는데 7시 45분이었다. 곧바로 톡 알림을 봤다. 어디냐고 묻는 H.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반사적으로 보이스톡을 눌렀다.


"나 어떡해... 지금 일어났어... 미쳤나봐."


속으로는 요크 여행에 갈 수 없겠구나 자포자기했다. 몸에 힘이 풀리려던 그때 폰 너머로 H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괜찮아 그냥 옷만 걸치고 바로 나와!"


다시 몸과 머리에 힘이 들어갔다. H와 요크에서 애프터눈티를 먹기로 했는데, 그 기쁨을 놓칠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화장실로 직행해서 세수만 한 채 칫솔을 가방 속에 넣었다. 서랍 속에 집히는 대로 옷을 고르고 후줄근함을 감출 수 있는 갈색 코트를 걸쳤다. 중구난방인 머리카락을 예쁘게 숨길 수 있는 니트 버킷햇을 머리 위에 툭 얹었다. 마지막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코트와 어울리는 신발을 맞추고 싶어 꿋꿋하게 흰색 부츠를 신고 문밖을 뛰쳐나갔다. 다급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버스 정차지까지 온 힘을 다해 달렸다.


멀리서 학교 버스가 보였고, 마침내 7시 58분에 담당자에게 티켓을 보여주며 출석체크를 마치고 버스에 탑승했다. H가 뒷자리에서 나를 반겼다. 가쁘게 숨을 몰아쉰 후 H의 얼굴을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안도감과 허탈함의 웃음이었다. H는 내가 와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고, 나는 H에게 사과하며 내가 미쳤다는 말을 반복했다. 포기해야 할 것 같던 요크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하며 요크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학교에서 보내주는 여행을 이곳에서는 'Give It a Go', 줄여서 'GIAG'라고 한다. 한 번 가보는 여행. 이전에는 여행이 내게 주어진 커다란 이벤트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여행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지는 것 같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와 H는 미리 알아본 애프터눈티 식당으로 달려갔다. 인기가 많아 아침에도 웨이팅을 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었다. 우리의 가벼운 간절함이 빛을 발했다. 도착하니 직원이 바로 식당 안으로 안내했다.


식당 안은 크고 고풍스러웠다. 차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질 장소다. 애프터눈티 세트를 시킬 거지만 괜히 궁금해서 무엇을 파나 메뉴판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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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한 뒤 나는 곧바로 화장실을 찾았다. 정신없던 아침 때문에 양치질을 못했다. 텁텁한 입을 얼른 헹구고 싶었다. 긴박한 시간 사이에 칫솔과 치약을 챙긴 나 자신이 웃겼다. 꾀죄죄하게 다녀야만 하는 순간에도 최소한의 깔끔함을 유지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다.


그 사이 애프터눈 티 세트가 차려져 있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3단 트레이 위 음식 코스가 펼쳐져 있었다. 영국의 상징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나 사진을 연달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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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는 배를 가볍게 채울 수 있는 샌드위치, 2층에는 차와 마시면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스콘, 식사의 마무리는 디저트라고, 3층에는 작고 예쁜 모양의 한 입 디저트들이 보였다. 작년에 대만에서 처음 애프터눈 티를 먹었는데, 생김새는 예뻤지만 각각의 음식 맛 편차가 너무 심해 실망했던 기억이 있었다. 이번에도 화려한 생김새만 즐길 수 있으려나,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샌드위치를 먹었다. 생각보다 훨씬 맛있어서 눈이 동그래졌다. 샌드위치가 소울푸드인 사람으로서 샌드위치 속 재료와 소스의 조화를 중요시하는데,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맛이었다. 샌드위치 조각마다 맛도 달라서 하나씩 맛보는 재미도 있었다.


1층을 먹다 보니 2층에 있는 스콘 맛도 궁금해졌다. 런던에서 먹었을 때처럼 스콘을 반으로 잘라 클로티드 크림부터 바른 후, 딸기잼을 발라 한 입 크기로 잘라먹었다. 말해 뭐해 맛있었다. 담백한 맛과 퍽퍽한 식감이 스콘의 매력인 것 같다. 질릴 수도 있는 맛을 클로티드 크림과 잼이 부드럽게 채워준다. 배가 부를 때쯤 3층에 눈을 두기 시작했다. 오페라 케이크와 머랭 쿠키, 마카롱은 순간 파리를 떠올리게 했다. 귀엽게 자리 잡은 디저트들을 야금야금 먹었다. 케이크와 머랭 쿠키는 입맛에 맞았지만, 마카롱은 혀에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어렸을 때 가족들과 파리에서 마카롱을 먹었을 때 설탕을 한 움큼 먹는 맛만 나서 싫어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쯤 되면 마카롱이 나와 맞지 않는 음식인가 생각이 든다. 12월에 파리 여행을 떠날 예정인데 그때 다시 먹어보고 맛없으면 클래식 마카롱과는 작별 인사를 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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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눈 티를 먹기 전, H가 사진을 여러 장 찍어줬는데, 니트 모자와 식당 분위기가 잘 어울려 너무 만족스러웠다. 브런치로 애프터눈 티를 먹을 생각에 설레는 감정과 여유로움이 사진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 먹고 나오니, 식당 앞에 웨이팅 줄이 길게 늘여져 있었다. 내리자마자 가랑비를 뚫고 달린 보람을 느꼈다. 든든해진 속을 채우자 요크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요크 마켓에는 핼러윈 색깔이 물들고 있었다. 처음 보는 종류의 호박들과 핼러윈 장식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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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을 돌다 보니 요크에서 유명하다는 거리인 Shambles 거리에 자연스럽게 도착했다. <해리 포터>에서 마법사들이 각종 마법 도구를 사는 '다이애건 앨리'를 작가가 이곳에서 영감 받았다고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골목에 들어섰는데, 작가가 영감을 받은 부분들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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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돌길 위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상점들. 마치 상점 안에 들어가면 올리밴더 씨가 있을 것만 같았다. 비가 살짝 적시고 가서 반들반들해진 돌길은 더욱 영국과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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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한 건물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 채워진 상점을 봤기 때문이다. 누가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대륙이라고 할까 봐, 10월의 크리스마스를 느끼게 되었다. 크리스마스트리도 없고, 장식품을 사고 싶다는 소망은 없었으나 이렇게 가지각색의 반짝거리는 장식을 보고 있으면 12월 25일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설레는 감정을 간직하고 싶어 크리스마스 상점을 구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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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크리스마스 설레발에 물들였는지, Shambles 거리 구경을 다하고 나서 마주친 Whittard에서 크리스마스 에디션 쿠키를 샀다. 런던에서 Whittard를 처음 방문한 후 두 번째 방문이었다. H가 런던 때 산 English Breakfast Tea를 강력히 추천해 줬다. 전에 한 번 기숙사에서 끓여줬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다음에 나도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이번 기회에 구매했다. 차와 마실 쿠키도 사고 싶어서 세트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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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쇼핑을 한 뒤, 우리의 계획에 있었던 York Minster를 찾아갔다. 도착하기도 전에 멀리서 대성당의 분위기가 뿜어 나오는 건물이 보였다. 나와 H는 눈을 반짝이며 앞으로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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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는 작은 도시이다 보니 대성당에 대한 기대가 없었는데 규모도 웅장하고 건물 양식도 화려해서 연신 감탄을 했다. 학교 건물들로 둘러싸인 셰필드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유럽 색깔이 짙은 성당을 봤기 때문인지, 감동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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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나서 사진 찍는 재미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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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연한 만남을 가졌다. 같은 기숙사 동생 N을 Minster 앞에서 마주친 것이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했다. N은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 버스에서 내리면서 N과 인사했었는데 당시 옆에 아시아인과 앉아 있기에 일행이 있는 줄 알았다. H는 왜 말을 안 해줬냐고 말하며 같이 다니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한 명의 친구가 요크 여행에 합류하게 되었다. N과 Betty's에서 애프터눈 티를 같이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머릿속에서 셋이서 먹으면서 들떠하는 모습이 떠올라 더욱 아쉬움이 들었다. 사진을 계속 찍고 싶었던 나와 H는 사진을 이어서 찍었고, N도 같이 사진 찍기에 동참했다.


이때부터 날씨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대성당 입구도 아름다웠다. 건물 외관으로 충분히 감동을 얻기도 했고, 앞으로 영국에 머무르면서 성당 내부를 자주 볼 것 같아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내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돈을 아껴야 하는 교환학생의 합리화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H와 N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음 여행길을 나섰다. N은 아직 Shambles 거리를 못 봤다고 해서 우리도 다시 자세히 구경할 겸 Shambles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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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둔 목적지로 가는 길에 York City Walls를 지나치게 되어 성벽을 따라 걷게 되었다. 거대한 성벽을 기대했었는데 성벽의 길이가 짧고 평범한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길을 걸으면서 요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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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Shambles에 다시 온 게 운명일지도 모른다. 아까는 못 봤던 해리포터 굿즈 상점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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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 덕후는 아니지만, 해리 포터의 나라에서 해리포터 상점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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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ivanders를 구현한 듯, 지팡이를 실제로 팔고 있었다. 해리 포터에 나오는 각 등장인물들의 지팡이를 전시해놓기도 했는데, 가게 직원이 한 번 보고 싶은 지팡이 있냐고 물어봤다. 헤르미온느 지팡이가 제일 마음에 들어 한 번 볼 수 있겠냐고 말했다. 나무 질감과 손잡이 부분에 금색 나무줄기들이 감겨 있는 모양이 마음에 쏙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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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mbles 거리를 어느 정도 둘러본 후, Ouse Bridge로 걸음을 향했다. 긴 강물 위로 해가 먹구름을 뚫고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한 풍경에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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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를 쭉 따라가면서 H와 N이 어떻게 친해졌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크 성 앞까지 오게 되었다. 요크 성의 모습은 '요크'다웠다. 크지는 않지만 동글동글 귀여운 모습이 요크 지역과 잘 어울렸다. 요크 성 입장료가 있다는 N의 이야기를 듣고 일단 얼마인지 알아보기 위해 걸어 올라갔다. 올라갔더니 입장료가 예상보다 비싸 찰나의 고민 후 안 가기로 했다. 앞으로 다른 지역의 성들을 많이 볼 것이라는 부푼 기대감 덕분에 미련 없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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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자마자 내려가야 했지만 아쉽지 않았다.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가슴을 탁 트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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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겨 성 앞에 있는 동그란 광장을 걷기로 했다. 왼쪽으로 노란 벽돌 건물이 보이길래 구글 지도로 검색했다. York Castle Museum이라는 건물이었으나 이 역시 돈이 들어 외관만 구경하고 물 흐르듯이 지나쳤다. 돈이 한정된 교환학생에게 백 프로 내키지 않는 지출은 사치와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볼 유명한 박물관과 성 입장료를 위해 이날은 카드를 주머니 밖으로 덜 외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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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근교 여행의 묘미는 성이나 박물관보다 이렇게 거리를 누비면서 사람들과 건물을 구경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하게 요크를 보면 '성'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건물 벽이 성벽 색깔과 비슷하거나 성 모양의 건물이 있기 때문일까, '요새'라는 단어와 비슷하기 때문일까, 반사적으로 '요크 하면 성이지'라는 나만의 공식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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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힘을 내서 해가 구름을 뚫고 나온 덕분에 오후의 하늘은 맑았다. 180도 달라진 하늘의 모습에 순간 오전에 비가 왔다는 사실조차도 까먹었다. 거리 근처에 St Mary's Abbey라는 곳이 있어 공원을 통해서 맑은 날씨를 만끽하기로 했다. 멀리서 부서진 고대 건물의 모습이 보였다. 길게 늘어진 수도원 외벽은 푸른 하늘 아래에 있어서인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우리 셋은 이 망가진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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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열심히 찍고 공원길을 걸으려는데 폐허가 된 수도원 건너편 성당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목격했다. 성당에서 결혼식을 울리고 있는 부부를 보게 된 것이다. 갑자기 맑아진 날씨, 무너진 신비로운 수도원 건물, 그 앞에 놓인 성당 안에서 결혼식을 울린다면 어떤 기분일까? 저 부부에게는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눈이 부신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크지는 않지만 예쁜 성당과 예쁜 도시에서 울리는 결혼식은 마치 동화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더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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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벤치에 앉아 잠시 아무 말 없이 우리 셋은 따뜻한 햇볕을 머금었다. 오랜만에 여행을 다니면서 늘어진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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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보는 지역에는 처음 가보는 서점이 있으니, 이번에도 요크에 있는 오래된 책방을 찾았다. 녹색 간판을 보자마자 설레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옛날 책 향기가 났다. 작고 밀집된 공간은 동네 책방의 매력인 것 같다. 비록 짐 크기가 한정된 교환학생 신분이라 책을 살 수는 없었지만 서점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눈이 즐거워진다. 특히 이곳에서 50년도 더 된 옛날 책들을 구경할 수 있어 신기했다. 책을 열면 흰 종이가 아닌 갈색빛이 도는 종이가 만져졌고, 이해하기 어려운 옛날 영어 단어들도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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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와 2층에도 책이 있어 한 층씩 둘러봤다. 가는 계단이 좁고 가파르기 때문에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비켜줘야 한다. 때로는 먼저 가도 된다는 친절한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오고 가는 "Thank you"라는 말이 좋다. 스쳐 지나가는 인사말이지만 마음이 따뜻해진다. 한국에서는 이런 웅크러진 공간에 있는 경우도 흔하지 않고, 말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일까. 소소한 감사 인사는 마음속에 은은한 뿌듯함을 가져다준다. 한국에서도 앞으로 이런 감사 인사를 스쳐 지나가듯이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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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다 본 후 시간이 2시간 정도 남아 마지막으로 요크에 있다는 철도 박물관을 구경하기로 했다. 박물관을 가는 길에 두 번째로 Ouse Bridge를 마주했다. 밝아진 날씨 아래에서 강을 다시 보니 새로운 장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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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박물관까지 20분 정도 걸어서 가야 했다. H와 N에게 내색은 안 했지만 이때부터 발이 아프기 시작했다. 흰색 부츠를 입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기에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빨리 박물관 안으로 입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무료라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갔던 철도 박물관. 딱 기대했던 만큼 기차 모형과 기차의 역사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래도 기차를 처음으로 발명한 영국에서 철도 박물관을 볼 수 있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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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천천히 둘러보고 나서도 시간이 남았다. 왜 학교 측에서 오후 5시에 여행 일정을 마치는지 알 수 있었다. 작은 도시인만큼 반나절만에 여행객으로써 즐길 요소를 다 누린 것이다. 30분 정도 여유가 있어 다시 City Centre로 갔다.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기념품 가게가 있어 들어갔다. 가게 안에 다양한 컵을 팔고 있었는데 가격도 괜찮고 귀여운 머그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티백도 샀고 이왕 마시는 거 급하게 산 Primark 컵 대신 귀여운 컵에 마시고 싶어 하나 구매했다. 베이지색 바탕 위 하늘색 줄무늬 선이 가로와 세로로 수 놓여 있는 컵이다. 앞으로 남은 교환 생활 동안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를 이 컵에 타서 마실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 여행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Ouse Bridge를 또 거쳐가게 되었다. 버스에 탑승하기 전 H와 N과 사진을 찍었다. 아침부터 소란스럽게 시작한 요크 여행이었지만 여행하는 동안에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다닐 수 있었다. 맨체스터는 빨간 벽돌이 떠오르는 도시라면, 요크는 동그란 성벽이 떠오르는 작고 귀여운 도시다. 영국 근교 여행의 매력을 한 층 더 짙게 느낄 수 있었다. 근교 여행을 열심히 다녀야겠다는 욕심이 생기게 되었다.


기숙사에 돌아오니 저녁 7시가 되었다. 오전에 먹은 애프터눈티 배가 아직도 안 꺼지기도 했고, 차려먹기도 귀찮아 냉장고에 보관해 둔 Jimmy's Kitchen 피자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었다. 그래도 야채는 챙겨 먹고 싶어 토마토와 샐러드 채소를 꺼내 대충 씻어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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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Whittard에서 산 Christmas Pudding 쿠키를 궁금증에 꺼내서 먹었다. 영국 쿠키가 얼마나 맛있겠어 생각하면서 먹었는데 버터 풍미가 생각보다 진해서 놀랐다. '차'와 최적화된 맛이라서 얼른 차와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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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맨체스터 그리고 요크까지. 각 도시마다 가지고 있는 특징이 뚜렷하다. 같은 영국인데 여행할 때마다 느낌이 달라서 신기했다. 영국에 오기 전까지는 런던과 유럽 여행만 기대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이 달라졌다. 영국 교환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 근교 여행을 자주 다니고자 한다. 구글 지도로 영국을 확대 축소하면서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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