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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여행일지 2화

안개로 뒤덮인 성과 무덤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

by 윤슬

Day2


둘째 날 아침, H와 이른 시간에 숙소에 나섰다. 가보고 싶은 곳들이 가장 많은 둘째 날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Dean Village를 향해 걸어갔다. 울창한 나무들과 시냇가를 따라 걷게 되었는데, 아침에 등산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침 공기만이 가지고 있는 차가움과 초록색 나무들이 잘 어울렸다.


40분 정도 걷자 Dean Village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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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세계에서 잠시 작은 동화 마을 속으로 들어온 것 마냥 동네가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했다.


졸졸 흐르는 은빛 시냇물과 빼꼼 보이는 노란 집들이 비현실적인 감각을 더욱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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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구경하다가 조그만 시계탑이 보여 홀린 듯이 걸어갔는데 알고 보니 실제로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 급하게 보고 나왔다. 가운데 작은 광장 주위로 네모난 빌라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문득 이런 곳에서 살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밖으로 나왔을 때 풍경이 예뻐서 설렐까 싶다가도 관광객들도 많이 오고 주위에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가 많이 없어 이상과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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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마을 크기가 작아 금방 둘러볼 수 있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에든버러 성을 보기 위해 다시 구글 지도를 열었다. 40분 걸어가면 돼서 흔쾌히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행 중 1시간 이내면 대부분 걸으려고 한다. 꼭 흔히 말하는 관광지가 아니어도 그 지역의 길거리, 사람들,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 설레기 때문이다. 걷다가 이름 모를 예쁜 성을 마주하는 순간처럼 말이다. 성 앞에 긴 다리가 보였는데, <나니아 연대기>가 떠올랐다. 다리 위로 칼을 찬 병사들이 말을 타고 지나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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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풍경에서 벗어나고 중심가에 다다르게 되었다. 이때 배가 갑자기 고파 H에게 눈에 보이는 마트에 들어가 간식을 사자고 했다. 마침 Sainsbury's Local이 보여 빵을 샀다. 당 충전이 필요해 초코 크루아상을 집었다. H와 함께 각자의 취향이 담긴 빵을 베어 먹으며 다시 에든버러 길 위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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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가로 다시 도착했다. H는 어제 데이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 통신사에 들르자고 했다. H가 직원을 통해 데이터를 충전하는 동안 창밖을 봤다. 현대적인 통신사 안과 밖에 보이는 고전적인 성 모습에 유쾌한 괴리감을 느껴 피식 웃음이 났다. 에든버러에서 휴대폰 통신사를 가는 일정이 제법 재미있었다. H도 자신이 에든버러까지 와서 통신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모습이 웃기다며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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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길이 전부 오르막길이라 힘들었지만, 성은 항상 높은 곳에 있는 법이다. 드디어 보이는 에든버러 성은 지금까지 영국에서 봤던 성 중 가장 '성' 다웠다. 이곳에 Mary 여왕이 살았었는데 왜 그녀가 Bloody Mary가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먹구름과 안개가 파란 하늘을 덮쳤지만, 우중충한 날씨가 오히려 성의 매력을 돋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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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공주가 살 것 같은 성보다는 권위적인 여왕이 살 것 같은 성의 모습에 더 매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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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도착하자마자 전망을 구경했다. 여행이 주는 낭만 필터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흔히 생각하는 좋은 날씨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풍경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영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북쪽 지방 에든버러라는 지역에 서 있기 때문일까. 흐린 날씨와 환상의 짝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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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곳곳에 들어갈 수 있는 건물들이 많았다. Scottish National War Memorial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사진 촬영이 불가능해서 카메라로 못 담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어두운 분위기와 달리 내부 벽이 하얗고 전체적으로 밝아서 놀랐었다. 과거 에든버러 성에 있던 병사들의 역사를 반짝거리는 스테인드글라스로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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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성은 매일 오후 1시마다 대포를 쏘는 이벤트가 있다고 해서 부랴부랴 대포 쏘는 장소로 달렸다. 역시 소문을 접한 관광객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때 비가 오기 시작해 우산을 쓰면서 대포 쏘는 순간만을 숨죽이며 기다렸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상상보다 훨씬 큰 '빵!' 소리가 나서 나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질렸다. 순식간에 끝난 행사였지만 강렬했다. 대포를 쏜 후 군인의 모습을 유심히 봤는데 귀에서 귀마개를 빼고 있는 모습을 발견해 역시 침착한 태도를 유지한 이유가 있었구나 생각했다.


현장에서 본 대포의 모습과 달리 과거 대포는 훨씬 뚱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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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병사들은 성벽에 큼직하게 뚫려있는 구멍 사이로 대포를 쐈겠지. 한 방이면 지금 내 시야로 보이는 마을이 초토화될 것 같은데.'


아찔한 상상을 하며 대포 구경을 했다.


에든버러 성을 다녀온 후 머릿속에 대포처럼 탕, 하고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루비 왕관'이다. 사람들이 붐비는 건물이 한 군데 있어 우리도 따라서 비를 뚝뚝 맞으면서 기다렸다. 알고 보니 건물 안에 실제 영국 왕족이 쓰던 왕관이 있어 모여들었던 것이다. 기대를 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전시품이 많았지만 다 보고 나서 기억나는 형상은 왕관밖에 없었다. 새빨간 루비가 황금 왕관을 둘러싸며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줄을 지어서 계속 걸어가야 했는데, 왕관을 볼 때도 뒷사람들을 위해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했다. 출구까지 천천히 왕실의 아름다움을 음미했다. 왕관을 쓰게 되었을 때 얻을 환희와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찰나에 실감했다.


그렇게 에든버러 성을 둘러보고 어제 가고 싶어 했던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로 다음 행선지를 옮겼다. 발걸음을 옮기는데 자꾸 뒤꿈치가 아팠다. 얼마 전에 Primark에서 싼 가격으로 검은색 부츠를 샀는데 새 신발이라 그런지, 아니면 싸서 그런지, 뒤꿈치에 상처를 실시간으로 내고 있었다. H가 밴드를 사서 붙이는 게 어떠냐고 걱정해 줬다. 마음 같아서는 사고 싶었지만, 밴드로 내 소중한 돈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기숙사에 밴드가 이미 있어 더욱 참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다고 대수롭지 않은 척하며 아픔을 잊으려고 했다.


미술관에 다다랐을 때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어 비를 피하기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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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H와 만나는 시간을 정해놓고 각자의 흐름에 맞춰 미술관을 누비기로 했다. 이날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한 바다 풍경을 담은 그림이었다. 항상 미술관을 갈 때마다 자연이 그려진 작품, 그리고 인상파 작품에 매료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술 기법에 대한 지식도, 화가에 대한 지식도 없지만 보고 있으면 그림 속으로 빠져든다. 화가가 당시 그리고 있을 모습도 상상하고, 그림 속 풍경은 실제로 어떤 생동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상상한다. 그렇게 찰나의 상상이 끝나면 마음에 드는 작품이 되어 핸드폰 카메라로 담는다. 일종의 기록이다. 내 취향을 알아가기 위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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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꿈치가 아파서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G 층으로 내려가서 쉬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는데 갑자기 맨 위층이 궁금해서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작품들을 감상하다가 예상하지 못한 놀라움을 마주했다. 반 고흐 작품이 걸려있는 것이다. 그동안 감상했던 미술 작품들과 다른 생동감과 굴곡을 느꼈다.


'스코틀랜드 미술관에 반 고흐 미술품이 있다니, 맨 위층으로 올라온 나 자신 칭찬해'


기분 좋은 마음으로 다시 H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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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정을 시작한 덕분에 시간이 여유로웠다. 오후 3시쯤 되었나, 배가 출출해진 우리는 미리 찾아뒀던 젤라또 가게에 갔다.


젤라또 가게는 선택하는 고민과 즐거움이 공존한다. 콘으로 먹을까, 컵으로 먹을까. 겨우 정하면 어떤 맛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한다. 아이스크림은 무조건 달달해야 한다는 확고한 취향이 있어 과일 맛은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리뷰에 칭찬이 자자한 피스타치오 맛과 염소 우유맛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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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와 젤라또를 받고 신났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살짝 지친 체력이 재충전되는 기분이었다. 벤치에 앉아 에든버러 성을 감상하면서 먹을 수 있어 더욱 낭만적이었다. 서로의 젤라또를 맛보기도 하고, 가만히 멍 때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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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근처에 에든버러 성을 배경으로 사진이 잘 나온다는 View point가 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그 흔적으로 안개가 뭉게뭉게 성을 덮고 있었다. 에든버러 성이 지닌 색깔과 어울려 만족스럽게 H와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보면 '영국답다', '스코틀랜드답다'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 포인트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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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point를 지나 Flodden Wall을 따라 길을 걷는데 결혼 스냅사진을 찍는 부부를 발견했다. 여행객으로써 이날의 흐릿한 에든버러 날씨가 만족스러웠지만 신혼부부로써는 오늘 날씨가 많이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스코틀랜드에서 에든버러 성을 배경으로 행복하게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는 부부가 아름다워 보였다.


원래는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Arthur's Seat에 가려고 했으나 안개 때문에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나의 사심이 담긴 장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이곳에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 속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짓는데 영감 받은 무덤들이 있다고 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리스트에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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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공동묘지는 처음이었다. 안개의 존재로 공동묘지의 음산한 분위기가 짙어졌다. <해리 포터: 불의 잔> 편에서 볼드모트가 공동묘지를 배경으로 부활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 장면도 조앤 롤링이 이곳을 둘러보면서 영감 받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해리포터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보통 영화보다 소설을 더 재미있다고 말하는데 나는 영화가 훨씬 재밌었다. 특히 1편과 2편은 열 번도 넘게 봤다. 해리포터 영화 외에는 관심이 없어 '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영화 속 장면들이 배경이 된 곳에 가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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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Tom Riddle 무덤을 찾는 것이었다. 분명 구글 지도가 표시한 곳에 도착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무덤 사진을 검색하면서 근처를 전부 살펴봤는데 도통 나타나지 않아 답답했다. 기대했었는데 나오지 않아 섭섭한 마음을 H가 알아차렸는지 옆에서 더 열심히 찾아줬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만날 운명이 아닌가 보다 하고 아쉬운 대로 맥고나걸 교수님 이름이 적힌 무덤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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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metery 출구를 향하고 있었는데 그때 H가 외쳤다.


"저거잖아!"


구글 사진으로만 봤던 Tom Riddle 무덤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앞에서 사진을 연신 찍고 있었다. 우리는 신나서 방방 뛰며 무덤으로 향했다. 살면서 무덤을 보고 기분이 좋은 순간이 있을까. 심지어 무덤 주인은 소설 속 Tom Riddle과 무관하다.


"이 무덤 주인도 알았을까? 자신의 이름이 해리 포터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관광지가 되었을 줄."


H가 말했다. 생각해 보면 무덤에 작게 'Thomas Riddell'이라고 써져 있을 뿐인데,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무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심지어 우리처럼 좋아하는 관광객이 생길 줄 알았을까. 앞으로 소설을 짓게 된다면 등장인물 이름을 공동묘지를 통해 짓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그렇게 가볍게 보고 넘어갈 줄 알았던 무덤을 우여곡절 끝에 만나 뿌듯한 마음으로 공동묘지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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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가로 다시 들어섰는데 멀리서 흥겨운 백파이프 소리가 들렸다.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듣던 소리가 흘러나와 신기했다.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있는 연주자를 보면서 다시금 스코틀랜드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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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 요리로 유명한 식당을 한 군데 추천받아 저녁을 먹게 되었다.

애피타이저로 수프, 메인 요리로 홍합과 파스타를 주문했다. 이 중 하얀 수프인 Seafood Chowder를 가장 맛있게 먹었다. 관자가 가진 바다의 맛과 수프의 느끼함이 알맞게 어우러져 나도 모르게 싹싹 긁어먹었다. Shellfish Pasta도 너무 맛있었다. 기숙사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파스타라서 평소 외식할 때 파스타를 외면하곤 했다. 그러나 리뷰에 파스타 칭찬이 자자하고 에그누들로 만들었다는 소식에 궁금해서 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에그누들이 지닌 고소한 맛과 쫄깃한 면 식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보면 에든버러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였다. 나는 진 토닉이 담긴 잔을, H는 화이트와인이 담긴 잔을 손에 쥐며 둘째 날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우리를 위해 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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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본 에든버러 성은 낮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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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서 씻은 후 나와 H는 침대에 누웠다. 수다를 떨다가 12월에 있을 유럽 여행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파리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 파리를 시작으로 여행을 다녀야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파리에서 독일을 갔다가 독일에서 스페인을 가기에 무리가 있었다. 버스로 30시간을 갈 수는 없었다. 영국에 오기 전,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은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당연히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독일을 일정에서 제외하기에는 아쉬움이 크게 남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스페인을 제외하기에는 바로 옆 나라인 포르투갈도 너무 가고 싶었고 H의 1순위가 스페인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딜레마에 빠졌다. 잠깐의 정적을 H가 끊으며 말했다.


"네가 지난번에 프랑스 니스 가보고 싶다 했던 것 같아서 제안하는 건데, 혹시 파리에서 니스로 넘어가는 건 어떻게 생각해?"


H에게 바다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언젠가 한 번 프랑스 니스 바다를 보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고 말했던 게 기억이 났다. 바다는 당연히 여름이라는 고정된 생각 때문에 이번 유럽 여행에서 떠오르지 못한 장소였는데 너무 좋을 것 같았다. 여행 루트도 훨씬 보기 깔끔해진다. 니스 바로 밑이 스페인이기 때문이다.


H는 내가 혹시 독일을 못 가게 되어 아쉽지 않을까 걱정했다. 고등학생 시절 독일어과였기에 내가 독일에 대한 애정이 있어 보였나 보다. 전혀 아쉽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마켓 하나 때문에 독일이 가고 싶었던 건데 우선순위를 니스 바다가 깨트렸다. 오히려 H가 '니스'라는 장소를 내 머릿속에 상기해 줘서 고마웠다. 나는 니스를 가게 되어서, H는 스페인 세비야를 가게 되어서 우리는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어쩌다 보니 유럽 여행 일정을 에든버러 숙소에서 상의하게 된 밤. 우리는 몰려오는 피로감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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