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신고식, 낭만이다!
2024. 9. 18.
Day 1
9월 18일이 돌아올 때마다 교환학생 시절을 떠올릴 것 같다. 내가 갖고 있는 나만의 기념일이 생긴 기분이랄까. 2024년 9월 18일은 또 다른 세계에 뛰어든 날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랜 기간 동안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6개월 동안 부모님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두려움과 슬픔이 뒤섞여 마음을 어지럽혔다. 이틀 전만 해도 영국으로 가는 게 실감이 안 나서 해맑게 일상을 누볐는데, 싸둔 짐을 보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나, 가는구나. 영국으로.'
그날 밤, 오랜만에 엄마랑 같이 잤다.
어김없이 아침은 밝아왔고, 나는 서둘러 씻었다. 비행기에서 16시간 동안 지내야 했기 때문에 편한 츄리닝 바지와 흐물흐물한 박스 티로 갈아입었다. 처음 짊어보는 초거대형 캐리어 하나와 그보다 반 사이즈 정도 작은 캐리어를 들고 부모님과 집 밖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마지막 순간, 거실을 보며 6개월 뒤에 보자는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아빠 차를 타고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투명한 차창 밖으로 'Asiana Airlines' 간판을 보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기내 짐을 부치고 체크인 수속을 전부 마치자 긴장감이 탁 풀렸다. 엄마와 아빠는 그래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밥을 먹자고 말했다.
사실 전날부터 속이 더부룩해서 입맛이 없었다. 그래도 앞으로 6개월 동안 한식을 잘 못 먹을 생각에 힘을 내서 공항 안 한식당에서 미역국을 먹었다. 당분간 가족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못 먹을 생각하니 점점 타지로 떠난다는 실감이 났다.
비행기가 뜨기 3시간 전 공항에 온 덕분에 여유가 많았다. 요즘은 모바일로 탑승권을 발급받을 수 있지만 종이 티켓이 주는 몽글한 감성이 있어 일부러 종이 탑승권을 받았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 엄마 아빠와 셀카를 찍고 안았다. 캐리어 두 개를 양손에 잡은 채 끌고 가면서 손을 흔들었다. 손을 흔드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울컥했다. 갑자기 반년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미지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고, 그곳에는 엄마 아빠가 없다.'
이런 생각이 스치면서 눈물이 고였던 것 같다. 물론 울지는 않았다. 나 빼고 전원 T인 가족들은 집에서 6개월 금방 간다며 재미있게 생활하고 오라고 말했다. 그래, 어디 피난 가는 것도 아니고 행복하자고 가는 건데! 고인 눈물이 쏙 들어가면서 정신 차렸다. 여권과 티켓을 꺼내 게이트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다.
게이트 7. '런던/히드로'를 보면서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만약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가야 했다면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번 교환 생활의 여정을 함께 즐길 친구가 있었다. 대학 과동기 H와 이번에 같이 셰필드로 가게 되면서 우리는 서로의 교환학생 동료가 되었다. 처음에 H와 같은 학교에 합격했을 때, 교환 생활 관련해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겠다는 가벼운 기쁨이 있었다. 정보를 주고받으면서(거의 H가 도움이 되는 정보를 공유해 줬지만) H는 같이 비행기도 타자고 제안을 했고, 어느새 보니 런던 여행도 같이 하게 되었다. H는 학회에서 알게 된 친구였고 전부터 친해지고 싶었던 동기여서 먼저 H가 제안을 해줬을 때 속으로 '아싸'를 외쳤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첫 발걸음부터 의지할 친구가 있어 든든했다.
H와 개인적으로 만나서 논 적이 많지 않아서 게이트에서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이상하게 떨렸지만 동시에 편안했다. 여행 다니면서 호흡이 잘 맞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다.
드디어 H와 만났다! 떨리는 마음이 무색하게 H가 반갑게 맞이해줘서 한순간에 편해졌다. 그동안의 짧은 근황을 얘기하고 교환 전 날 긴장한 마음을 서로 공유하다 보니 비행기 이륙 시간이 다가왔다.
비행기 좌석을 미리 선점했어야 했는데, 늦게 좌석을 보는 바람에 아쉽게 런던까지 가는 비행은 가운데 좌석에 앉아야 했다. 그래도 돌아올 때는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어서 큰 미련 없이 자리에 앉았다. 항상 교환 준비를 하면서 비행기를 타고 청춘 가득한 노래를 들으며 이륙하는 나를 상상했는데,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활주로를 천천히 거닐다가 갑자기 힘차게 굴러가는 비행기 바퀴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바퀴의 감각이 없어지고 온전히 공중에 뜨기 시작하면 긴장이 탁- 풀린다. 가슴이 조이다가 편안해지는 순간이 비행기를 타는 즐거움 중 하나다. 비행기와 함께 내 몸도 서서히 뜰 때, 항상 듣는 노래가 있다. 에프엑스의 'airplane'. 타이밍에 맞춰 벅차오르는 노래를 들으면 짜릿하다.
비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기내식이다. 하늘 위에서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특별한 상황에 놓인 기분이 든다. '내가 구름 위에서 밥을 먹고 있다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아이패드로 보고 있던 넷플릭스 드라마 <네버 해브 아이 에버>를 멈추고 승무원이 오기를 차분히 기다렸다. 속으로는 한식을 먹을까 양식을 먹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승무원이 오면 마치 미리 정해놓고 있었던 사람처럼 태연히 말한다. 앞으로 유럽에 있으면서 한식을 거의 먹지 못한다는 생각에 한식 메뉴를 골랐다.
사육의 현장과도 다름없는 기내. 밥 먹고 자고, 또다시 밥 먹고 자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도착하기 직전에 간식을 또 주셨다. 브리또를 먹으면서 런던과 가까워지는 비행기 경로를 구경했다.
드디어 히드로 공항 도착!
공항에 영어로만 가득한 표지판을 보면서 영국에 왔음을 실감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면서 입국심사, 수하물 찾기까지 정신없이 끝냈다. 큰 캐리어와 작은 캐리어가 두 손에 잡히자 '도착했다'는 안도가 생겼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낯선 외국에서 여행이자 살림살이. 그 첫 단추는 데이터 개통이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히드로 공항에 있는 유심 자판기에서 데이터를 개통한다는 후기를 봤다. EE가 영국 통신사 중 제일 빠르고 괜찮다고 해서 거침없이 구매했다. 일단 런던 여행 5일 동안은 한국 통신사 데이터 로밍이 되어 있어서 여행이 끝날 때쯤 유심을 갈아끼우기로 했다.
그렇게 순조롭게 지하철을 타고 한인 민박까지 갈 줄 알았으나,
<나이트 브리지 사건>
'공항에서 Piccadilly line을 타고 Victoria line으로 갈아타기만 하면 돼.'
모든 게 처음인 런던 땅에서 살짝 긴장한 채, 간단한 동선을 되뇌며 지하철에 올라탔다. 예상은 했지만 지하로 내려가자마자 핸드폰 데이터가 똑 끊겼다. 지도를 확인할 수도, 핸드폰을 볼 이유도 없어서 지하철 벽에 피곤한 몸을 기대며 멍을 때렸다. 그렇게 두 정류장을 남긴 채 지하철은 Knightsbridge 역에 정차했다. 다시 또 출발하겠지, 무료하게 생각하며 문이 닫히길 기다렸다. 하지만 1분이 지나도, 3분이 지나도 문이 그대로 열려 있었다. 처음에는 지하철에 잠시 문제가 생겼나? 조금만 더 있으면 출발하겠지 생각했으나, 단순한 시간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승객들이 한 명씩 내리기 시작했고, 전철 밖에 있는 직원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 승객들도 생겼다. 복잡한 상황이 안 오길 바라며 애써 현실을 부정했지만, 10분 정도 지나고 나서 나오는 방송 소리에 인정했다. 방송 소리에 딱 꽂힌 한 단어. 'trespasser'. 무단 침입자가 선로에 끼어들어, 지하철이 움직이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이게 무슨 화려한 신고식인가. 허탈함을 느낄 새도 없이 일단 지하철에서 나오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어 H와 함께 내렸다. 하필 정차한 역이 환승할 호선도 없고 크지 않은 역이라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우리와 눈이 마주친 건 오직 계단뿐이었다.
"진짜 올라가?"
믿기지 않아서 던진 의문.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올라가야만 한다. 20킬로짜리 캐리어를 질질 끌며 겨우 계단 위까지 욺긴 뒤, 작은 캐리어를 옮겼다. 우리와 같은 처지인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기도 했다. 기껏 힘들게 개찰구까지 올라갔는데, 출구로 가는 길도 계단이었다. 자포자기한 표정을 지으며 캐리어를 들어 올리려는 순간, 한 외국인이 옆에서 도와주셨다. 대형 캐리어를 사뿐히 들어 바깥세상까지 갖다 놓는데, 오랜만에 인류애를 느낀 순간이었다... 아직 세상은 따뜻하구나! 생각하며 땡큐 소 머치를 외쳤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밤하늘 아래 반짝이는 유럽 건물 아래에서 우리는 길 잃은 여행객이었다. 곧바로 핸드폰을 켜서 지도로 길을 찾아봤지만 이미 진이 다 빠진 상태에서 캐리어 4개를 갖고 버스를 타고 가는 건 무리였다. 몇 초 고민 끝에 우버 앱을 켜고 택시를 호출하고 기다렸다. 그때 길 앞에 커다란 택시가 있길래 우버 호출을 취소하고 곧바로 탔다. 금액이 살짝 걱정됐지만 빨리 숙소에 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몸이 앞섰다.
런던의 상징인 빨간 버스... 전에 블랙 택시를 타게 될 줄이다. 그래도 택시 안 푹신한 자리에 몸을 기대니 기분이 좋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창밖을 봤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한국에 있었는데 눈앞에 템스강과 런던 아이가 보였다. 여행이 주는 마법이다. 비현실적인 감각을 즐길 수 있는 마법. 낯설고 새로운 풍경에 가슴이 간질거렸다. 비록 돈도 더 나가고 가는 길이 순탄치 않았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런던의 첫 발걸음이 되었다. 다른 역은 기억 못 할 수 있지만, ' Knights Bridge'만큼은 10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것 같다.
핸드폰으로 민박집 주인이 보낸 카톡을 봤다.
- Nandos 식당 건너편에 있는 cafe 간판 앞에서 뵙겠습니다
역에 내리자마자 반대 방향으로 가서 헤매느라 애를 먹었다. 방향을 되찾고 'cafe open' 간판을 봤을 때 속이 다 시원했다. 민박집 사장은 아니고 여자 직원이 우리를 반겨주셨다.
숙소를 미리 알아보지 못하고 1주일 전에 방을 급하게 찾느라 유명한 런던 한인 민박집들은 이미 마감한 상태였다. 결국 후기가 많지 않은 방을 한 곳 잡았는데, 이름도 범상치 않았다. <싼 불친절>. 블로그 후기를 보면서 심장이 살짝 쪼그라든 사진이 있었다. 작은 검은 글씨로 빼곡히 적힌 경고 사항들이었다. 처음에는 사장님이 엄격하신 분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경고 사항들을 읽어 보면 전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매너들이었다.
'그동안 민폐 손님들에게 얼마나 시달렸으면...'
그래서 큰 걱정 없이, 또 큰 기대 없이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영국 가정집 향이 진하게 났다. 10살 때 영국에서 살았던 향 그대로여서 속으로 놀랐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계단이 보였다. 이날은 계단의 늪이었다. 현관문까지도 작은 계단을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3층 다락방까지 올라가야 했다. 작은 캐리어와 배낭은 혼자서도 가볍게 옮길 수 있었지만, 우리의 살림살이가 들어있는 큰 캐리어는 힘을 합쳐야만 했다.
H와 나는 몸을 뒤뚱뒤뚱 움직이며 앞뒤로 캐리어를 잡았다. 한 층 올라가면 숨을 고르면서 쉬었다. 이걸 두 번이나 반복했다. 순간 체크아웃 때 모습이 그려져 동공이 흔들렸지만, 잠시 잊기로 했다. 3시간 사이 몰아친 런던의 폭풍우 덕분에 H와 전우애가 생겼다. 우리는 오늘 닥친 사고를 피곤함과 비관 대신 황당함으로 유쾌하게 해석했고, 오히려 화려한 신고식이라고, 절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라고 웃었다.
지나고 나니, H와 여행을 같이 계속하면서 행복했던 이유 중 하나를 런던 첫날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난관을 낭만으로 풀어내는 마음가짐. 그리고 같이 헤쳐나가면 추억이 된다는 행운의 사고 회로를 갖고 있었기에 이날의 고생도 행복한 장면들 중 하나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물론 몸이 피곤해서 바로 곯아떨어진 건 사실이다.)
우리는 짐을 풀고 잠시 나와 근처 마트에서 물과 맥주를 사면서 동네를 구경했다. 해가 밝아진 이곳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다.
처음 써보는 공용 화장실에서 샤워도 해보고, 처음 써보는 3층 다락방에서 H와 매트리스를 나란히 한 채 누웠다. 어렸을 때는 민박집이 마냥 불편하고 침대가 아닌 곳에서는 자는 게 싫었는데 신기하게도 지금은 설레기만 한다.
'내일부터 진짜 런던 여행 시작이다!'
라고 생각을 끝맺지도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