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어
J와 함께 반나절 동안 옥스퍼드를 탐방하기로 한 날. 그동안 여행은 적어도 1년 동안은 알고 지낸 친구들과 다녀왔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만난 친구와 스스럼없이 같이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은 교환학생 생활에서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인 것 같다.
셰필드 역에서 출발해 더비 역에서 한 번 갈아타야 옥스퍼드 역까지 도착할 수 있다. 좌석이 지정되어 있어 가는 동안은 J와 떨어져 있어야 했다. 하루 동안 J와 여행할 생각에 설레기도 했고 살짝 떨리기도 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통통 튀어 오르는 감정을 진정시켰다.
옥스퍼드에서의 첫 행선지는 'Covered Market'이었다. 아침 일찍 방문해서 많은 가게들이 아직 문을 안 열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시장 안을 구경했다.
이곳에 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벤스 쿠키를 먹기 위해서였다. 벤스 쿠키를 처음 시작한 1호점이 있었다. 영국이 원조인 줄은 몰랐다. 나의 고향인 연남동에도 벤스 쿠키가 있는데, 그 원조를 먹어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났다. 초콜릿 칩 쿠키를 주문했다. 한 입 먹었는데 부드럽게 쿠키가 으스러졌다. 쿠키 반죽에서 기분 좋은 달달함이 느껴졌다. 연남동 벤스 쿠키는 외관에서부터 세련된 분위기를 띄우는데, 이곳은 '원조'라는 단어가 주는 분위기와 어울리게 투박했다. 투박하지만 정성스러운 감성을 좋아한다.
본격적으로 옥스퍼드 길거리를 구경했다.
이번에도 미리 가보고 싶은 서점을 찾아봤다. Blackwell's Bookshop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입구가 공사 중이라 파란색으로 칠해진 서점의 외관을 온전히 감상할 수 없어 아쉬웠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밖에서 봤을 때와 달리 공간이 넓었다. 책으로 쓸 수 있는 장르란 다 모아놓았다. 나와 J는 각자 끌리는 책들을 구경했다. 지하로 내려가니 Ground 층보다 훨씬 방대한 양의 책을 마주했다. 내가 만약 옥스퍼드 주민이었다면 가끔 이곳에 와서 한구석에 자리 잡은 채 책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서점 밖을 나와 길을 걷다가 신기한 풍경을 목격했다. 교차로를 중심으로 한 쪽에는 먹구름이, 한쪽에는 맑은 하늘이 피어 있었다. 전혀 다른 두 세계가 가까이 붙어 있는 모습이 신비로워 사진을 찍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가 되었던 'Christ Church'에 다다랐다. 이곳은 옥스퍼드 대학생들이 실제로 수업을 듣는 건물로, 해리포터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대학교가 어떤지 궁금하기보다, 해리포터 영화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파란 하늘 아래 자리 잡은 학교 건물이 무척이나 예뻤다.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노란 건물 외관은 가을이라는 계절과 잘 어울렸다. 입구에 들어가려고 하자, 티켓을 검사하는 직원이 뒤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오디오 가이드 기기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디오 가이드 기기가 곧 티켓을 구매했다는 증거가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목에 오디오 기기를 걸고 다시 입구로 향했다. 어렸을 때 가족들과 가이드 투어를 다닐 때, 관광지에 대한 배경지식을 듣는 게 그렇게 지루했다. 지금은 그 뒷이야기가 너무 재미있다. '예쁘다', '아름답다'라는 수식어 외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며 구경할 수 있어서 가이드가 좋다.
오디오 가이드에 따라 자연스럽게 옥스퍼드 대학교의 건물을 지나치며 발자국을 하나씩 남겼다.
대학생들이 밥을 먹는 곳, 해리포터 촬영지로 유명한 옥스퍼드 학교 식당인 '더 그레이트 홀'에 도착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어렸을 때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과 '해리포터 비밀의 방'을 수십 번도 넘게 봤었다. 당시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던 모니터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언젠가 옥스퍼드에 가서 이 촬영지를 꼭 구경하고 말 테야.'
두루뭉술하게 상상했던 기쁨이 곧바로 찾아왔다. 기다란 연회장을 천천히 걸으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식당 위에 상상의 그림을 그렸다. 옥스퍼드 대학생들이 저녁에서 웨이터의 서빙을 받으며 밥을 먹는 모습, 호그와트 학생들이 밥을 먹으며 온갖 마법이 펼쳐지는 광경.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환상이라고 생각했던 장소 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위해 이곳에 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해리포터를 떠올리게 하는 장소가 연이어 나왔다. '마법사의 돌' 편에서 호그와트 신입생들이 교수님을 쫄래쫄래 따라가며 오르는 계단. 'Shut up Malfoy'라는 명대사가 나온 곳이다. 관광객의 면모로써 줄 서서 사진을 한 컷 찍었다.
크라이스트처치의 또 다른 명소인 '탐 쿼드'도 볼 수 있었다. 옥스퍼드 거리를 다니면서 본 황토색의 낮은 건물들이 이곳에서도 네모나게 빙 둘러싸여 있었다. 이곳 학생이었다면 공부하다가 머리가 지끈거릴 때 탐 쿼드로 나와 몇 바퀴 도는지도 모르는 채 계속 산책하면서 머리를 식혔을 것이다.
J가 탐 쿼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말했다. 오디오 가이드를 목에 건 채 신난 표정을 지은 모습이 왠지 모르게 교환 학생 같아 보였다.
가이드에서 예배당에 대한 설명이 절반을 넘게 차지했다. 그만큼 역사가 깊어 보이는 예배당에서 30분 정도 시간을 보냈다. 목을 꺾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수식어밖에 안 떠올랐다.
그동안 성당을 다니면서 스테인드글라스에 새겨진 그럼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이날은 제대로 알아보고 싶어 가이드를 열심히 들었다. 같은 장소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성당을 구경했다.
예배당을 끝으로 크라이스트처치 셀프 투어가 끝났다.
J가 가보고 싶은 기념품 가게로 가던 중 우리의 발걸음을 멈춘 서점이 있었다. 호그와트 세계관에 나올 것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책을 살 생각은 없었지만 그 분위기 속에 녹아들기 위해 들어갔다.
서점에서 가장 놀랐던 점은 유명한 문학 책들의 초판본이 전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가격에 눈길이 가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책 한 권에 750 파운드라니! 자세히 보니 '1st edition'이었다. 특히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초판본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봤다. 'original'이 주는 힘은 엄청난 것 같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원본은 희귀함으로 반짝반짝 빛나 사람들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개인적으로 Blackwell 서점보다 흥미롭게 구경했다.
블로그 후기에서 많이 봤던 앨리스 기념품 가게에 도착했다. 기념품이라기보다는 소품샵이라는 이름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방금까지 하늘이 맑았는데 그 사이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많이 걸어 돌아다닌 탓에 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J가 가고 싶은 브런치 가게가 있다고 해서 도착한 곳이었다.
눈길을 끄는 메뉴들이 몇 개 있어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베이글 샌드위치를 먹을까 식빵 샌드위치를 먹을까 저울질을 하다가 결국 연어 호밀 샌드위치를 먹기로 했다. J는 디저트로 점심을 가득 채웠다. 정갈하고 건강해 보이는 내 접시가 마음에 들었다. 물론 옆에 곁들인 감자칩은 빼고 말이다. 감자튀김 말고 감자칩을 주는 건 생소했지만 잘 어울렸다. 보기보다 양이 많아서 많이 먹지는 못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다음 행선지로 떠났다. 가고 싶은 곳을 하나씩 도장깨기하고 있었다. 옥스퍼드 여행 사진에서 많이 보이던 돔 형태의 건물이 보였다. 보드레이안 도서관 건물의 일부였다.
도서관 입구를 찾느라 몸을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직원들에게 물어본 끝에 입구를 찾았다.
처음 마주한 장소는 Divinity School였다. 이곳도 해리포터 촬영 장소 중 하나라고 해서 눈이 반짝거렸다. 해리랑 친구들이 항상 자주 드나드는 보건실이 바로 여기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훨씬 넓었는데 실제 로케이션은 공간이 한눈에 들어와서 놀랐다. 양쪽 창문에서 채광이 들어오는 구조, 그리고 밝은 회색빛을 띠는 건물 내부는 '보건실'이라는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Divinity School 옆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학교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보드레이안 도서관을 생각하고 갔지만 정작 도서관은 가보지 못해 아쉬웠다. 생각해 보니 학교 도서관에 관광객들이 들이닥치게 되면 학생들의 공부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옥스퍼드 학생이 아닌 가벼운 서러움을 안은 채 나왔다.
그래도 간접적으로 시험 기간의 옥스퍼드 학생이 되어볼 수 있는 곳은 있었다. 탄식의 다리.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난 후 다리 아래에서 한숨을 푹푹 쉬며 스트레스를 내뱉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탄식의 다리 존재 자체가 학생들이 얼마나 공부에 열정적인지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노력한다는 뜻과도 같기 때문이다. 막상 가니 공감보다는 관광지에 놀러 왔다는 설렘이 커서 사진을 많이 남겼다.
옥스퍼드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장소 '뉴 칼리지'에 도착했다. 처음에 구글 지도를 보고 걷다가 막다른 길을 마주해서 한참을 헤맸던 기억이 난다. 분명 목적지를 정확히 입력하고 파란 점을 보며 따라갔는데 왜 안 나오는 것인지! 헤맴 끝에 찾은 목적지라서 더 반가웠다.
오전에 갔던 크라이스트처치보다 이곳에서 옥스퍼드 대학생들을 많이 마주할 수 있었다. 옥스퍼드 학생들은 발걸음, 몸짓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다. 꿈에 그리던 장소에 도착해서 신나게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고 고개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나와 달리 그들은 태연한 발걸음으로 고개를 고정한 채 무뚝뚝이 걸어간다. 재학생의 여유는 내 눈에 멋있어 보였다. 창문 속을 빼꼼 들여다보면 학생들이 소파에 앉아서 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건물 내부를 둘러보는데 J가 얼른 와보라고 재촉했다. 바로 뒤따라가자마자 자동적인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아치형으로 뚫린 창틀이 줄지어진 복도, 그 밖에 보이는 푸른 들판. 해리포터 영화 속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상상 속에 푹 젖어들 수 있었다. 내 투명한 반응에 J가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그 영화 속에 들어간 기분 때문에 모티브가 된 관광지들을 좋아하는 것 아닐까?" J가 말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J에게도 전에 말했었지만, 나는 <해리포터>의 열렬한 팬은 아니었다. 에든버러 여행지에서 해리포터 굿즈를 파는 상점을 둘러봤을 때 확실히 깨달았다. 굿즈를 사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이돌 그룹을 좋아할 때처럼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을 알지도, 대사를 외울 정도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촬영한 장소, 작가가 영감을 받은 장소에는 꼭 가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호그와트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면 한 손에는 마법 책을,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든 채 뉴칼리지 복도를 지나다닌다. 복도에서 해리 일행과 말포이 일행이 싸우는 장면, 해리가 해그리드를 만나는 장면이 전부 그려졌다. 영화 속 장면에 들어가는 짜릿함.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 옥스퍼드에 꼭 가보고 싶었던 것 같다. J가 건넨 한마디로 <해리포터> 팬이 아닌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J와 나밖에 없어서 세트장에서 찍는 것처럼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 행세를 제대로 만끽했다.
J가 밖에서 핸드폰을 들고 영상도 찍어줬다. 철저히 짜인 걸음이었지만, 영상 속에서 아치 창문 너머로 유유히 걸어가는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 서로의 모습을 찍어주고 추억을 남겼던 과정이 왜인지 모르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아침 일찍 옥스퍼드에 도착한 덕분에 가보고 싶었던 장소들을 모두 가봤다. 원래는 시간이 붕 뜰 줄 모르고 옥스퍼드 탐방이 끝나면 곧바로 저녁을 먹으려 했으나 3시 정도밖에 안되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옥스퍼드 시내 곳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때 지도 앱에서 교회가 뜨길래 가벼운 호기심을 갖고 들어갔다.
'옥스퍼드 성모 마리아 교회'라는 곳이다. 성당은 화려한 유리 창문과 조각상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면 교회는 차분하고 검소한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자연스럽게 1층을 둘러보다 2층으로 올라가 교회 전망을 감상했다. 사실 많이 걸어 다닌 다리를 쉬게 하고 싶었던 마음도 컸다. 멍하니 보다가 J와 작은 목소리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라던가 한국에서 즐기던 취미라던가. 옥스퍼드 여행 프로그램에 몰입했던 우리는 볼륨을 리모컨으로 줄인 뒤 각자의 삶으로 잠시 돌아갔다.
J가 옥스퍼드에 오면 꼭 후드티를 사고 싶다고 말해 같이 구경하기로 했다. 중심가에 가면 지도를 보지 않아도 수많은 가게 밖에서 형형색색의 옥스퍼드 후드티들이 보인다. 그중 J가 원하는 색깔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수많은 색깔 조합 중 J가 원하는 후드티는 없었다. 결국 J는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도 여러 가게를 둘러보면서 해리포터 굿즈랑 옥스퍼드 후드티를 원 없이 구경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슬슬 저녁시간 때 드리우는 어두움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아직 시간은 5시밖에 안 돼서 우리는 고민했다. 이제 볼 것도 없고, 카페에 가기에는 바로 저녁을 먹을 거라 타이밍이 애매했다. 그때 맨체스터 여행 때 공원에 갔던 기억이 나서 J에게 공원에서 산책을 하자고 제안했다. 구글 지도의 내비게이션을 따라서 공원으로 향했는데 이번에도 도무지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높은 벽돌 담만 옆에 보였다. 담 너머 공원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찾던 중 표지판을 발견했다. Private. 권한이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결국 공원 산책을 포기했지만, 입구를 찾기 위해 같은 곳을 이리저리 걸어 다닌 덕분에 시간은 어느덧 6시를 향하고 있었다.
버터 맥주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바로 결정한 집이었다.
정신없는 펍 분위기 속에서 버터 맥주와 안주를 주문했다. 영국의 펍 안주는 어딜 가나 비슷하다. 햄버거랑 맥 앤 치즈는 항상 메뉴판에서 보였다. 맥주랑 궁합이 최고인 안주들. 특히 이곳 맥 앤 치즈가 상당히 맛있었다. 버터 맥주는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탓일까, 특색이 없는 맛이었다.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있는 알코올 없는 버터 맥주를 기대했는데 평범한 맥주여서 살짝 실망했다.
J랑 오늘 여행에 대한 후기를 나눴다. 각자 여행 스타일에 대해 비교하기도 했는데 J는 오늘처럼 계획했던 장소를 하나씩 도착할 때마다 희열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나는 전체적인 틀을 세우기는 하지만 다 가보면 좋고, 못 가면 다른 곳을 가도 좋은 물 흐르듯이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나와 J 둘 다 여행지 속 즐길 수 있는 음식과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사진에는 진심이었다. 친구랑 여행할 때 얻을 수 있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좋아하는 풍경을 들여다보고 함께 경험할 수 있다는 점. 혼자서는 몰랐을 풍경을 친구의 취향을 통해 볼 수 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이랑 친구가 되어 옥스퍼드 펍에서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신기했다.
기차 시간이 다가오고 우리는 자리를 떴다. 기차역으로 바쁘게 움직이던 중 보드레이안 도서관 건물과 다시 마주했다. 낮에 봤던 밝은 모습과 달리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갈 때와 마찬가지로 Derby 역에서 한 번 갈아타야 Sheffield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숙사에 도착해서 씻고 따뜻한 전기장판 속으로 들어갈 상상을 하고 기차에 탑승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모른 채 말이다.
기차가 역에 정차할 때마다 조금씩 예상 도착 시간보다 지연되었다. 결국 우리는 첫 번째 기차를 타고 있는 중 갈아탈 두 번째 기차를 놓치게 되었다. J랑 영국의 기차 앱인 trainline을 켜서 시간표를 확인했다. Derby에서 Sheffield로 가는 기차는 1시간 뒤에나 온다. 시간 안 지키기로 유명한 유럽의 무책임함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J는 지난번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말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집에 갈 수 있는 기차 편이 있는 게 어디야'라고 생각하며 무념무상으로 Derby에서 기다렸다. 몸은 지쳤지만 짜증이 난다거나 화는 안 났다.
무사히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둘 다 타자마자 잠시 눈을 붙였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깨서 Sheffield 역에 내렸다. 역에서 기숙사까지 20분 정도 걸어야 해서 힘든 마무리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또 활기가 생겼다. 피곤한 몸이 제대로 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 설렜던 것 같다. 그렇게 신나는 발걸음으로 앨런 코트 기숙사에 도착했고, 서로 오늘 수고했다며 토닥토닥 다독이는 말들을 건넨 뒤 방에 쏙 들어갔다.
다 씻고 예열한 전기장판에 등을 지질 때쯤 J에게 톡이 왔다. J가 오늘 계속 들고 다니던 캐논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 온 것이다. 서점에서 찍은 사진을 제외하고는 나를 찍은 줄 몰랐다. J의 뷰 파인더로 담은 내 모습들이 너무 예뻐서 고마웠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찍은 사진을 카톡 프로필 배경사진으로 전시했다. 핸드폰 카메라로 담기지 않는 선명함은 나를 <옥스퍼드 여행>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줬다.
J의 예쁜 마음까지 기억에 저장한 채 기분 좋게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