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희귀한 행운, 행복은 공짜

셰필드 교환학생의 모험 Week 7

by 윤슬


2024.11.4. 월요일


Y님과 두 번째로 같이 한식을 만든 날이었다! 한 달 전, Y님과 닭볶음탕을 만든 날, 다음에는 라볶이를 만들어 먹어도 좋겠다는 대화를 나눴는데, 정말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Y님과 나눈 대화들은 전부 이루어진다는 게 괜스레 신기했다. 오전 수업을 들으면서 저녁에 라볶이를 먹을 생각에 설렜다.


이번에는 Y님 기숙사 주방에서 요리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꽃을 선물해준 기억이 나서 나도 요크 여행에서 샀던 위타드 크리스마스 쿠키를 들고 놀러갔다.


Y님은 사설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내가 살고 있는 앨런코트 기숙사와 5분도 안되는 거리에 있었다. 앨런코트와 비슷한 '플랫'과 공용 주방 구조를 가지면서도 인테리어가 달라서 두리번거리면서 Y님을 따라갔다.


이날 라볶이를 처음 만들어봤다. 핸드폰을 곁에 꼭 둔 채 레시피를 보면서 재료를 손질하고 떡볶이 양념을 만들었다. 지난주에 아시아 마트에서 산 떡볶이용 떡을 양념에 버무려서 라면과 함께 넣으면 완성이다! 생라면을 떡과 동시에 넣었어야 했는데 조금 뒤에 넣어서 익히느라 애를 먹었다. 그래도 30분도 안돼서 만들었다. Y님과 함께 만드니 더 시간이 쏜살같이 달려간 것 같다.

20241104_175747.jpg?type=w773


Y님의 플랫 메이트는 중국인이었는데 우리가 라볶이를 만드는 동안 옆에서 중국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어떤 음식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옆에서 플랫 메이트 분이 음식을 나눠줬던 기억이 있다. 이런 소소한 교류가 셰필드 기숙사 생활의 매력이다.


Y님이 삶아둔 계란까지 위에 톡톡 올려두니 비주얼이 완벽했다. 이곳에 와서 야무지게 한식을 만들 줄 몰랐는데 지난번 닭볶음탕부터 요리가 전부 성공해서 기뻤다. 내가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이 요리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Y님과 다음에는 어떤 요리를 만들어 먹을지, 먹으면서 먹는 얘기를 했다. 떡볶이가 분식이여서 자연스럽게 김밥이 연상되었다. 영국에서 만드는 김밥! 재미있는 도전이 될 것 같아 다음에는 김밥 파티를 열기로 했다. 앞으로의 여행 계획, 셰필드 생활, 한국에서의 일상을 공유하다보면 어느새 밤이다.


감사하게도 Y님이 설거지를 다 해주셨다. 정리하고 나서 Y님이 아까 떡볶이 국물을 우려내는데 쓴 코인 육수를 가지라고 주셨다. 평소에 한식 요리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내가 더 잘 쓸 것 같다고 건네주셨는데 속으로 아싸! 싶었다. 한국에서는 '코인 육수? 한식 별로 요리 안할 것 같은데, 짐도 많고, 딱히 생각 없어~" 하고 안 챙겨간 재료(?)였는데 이렇게 받게 되어서 기뻤다.

20241104_183015.jpg?type=w773


먹은 걸 소화할 겸 우리는 기숙사 밖을 나와 5분 거리에 있는 테스코 익스프레스까지 걸어갔다. 항상 마트 안을 들어가면 사려는 게 따로 있어도 무언가에 홀리듯 과자 코너부터 들르게 된다.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영국 과자들이 쌓여있는 과자 선반은 군것질을 좋아하는 교환학생에게 신세계다. 마트에 온 김에 어떤 과자를 새로 시도해볼까 고민하던 중, Y님이 내 것까지 계산해 주겠다고 말했다.


'이런 게 바로 멋진 어른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헉 정말요? 그러면..." 고민하는데, 테스코 과자가 눈에 띄었다. 항상 테스코 과자는 과연 맛있을까, 고민하며 결국 나에게 익숙한 누텔라 비스킷이나 로투스 과자를 샀었다. 다른 과자들보다 싸기도 하고, Y님이 추천해주기도 해서 'Malted Milk Biscuit'을 골랐다. 차랑 마시면 환상의 궁합이 될 것 같았다.

20241104_192126.jpg?type=w773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공용 주방에 가서 내 개인 선반을 열었다. 한 쪽 칸에 아예 간식 꾸러미 칸을 만들었다. 달달한 쿠키들이 내가 방금 산 Malted Biscuit을 반겨줬다. 앞으로 식사 후 총총 걸어가 꺼내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었다.


저녁에 보냈던 몽글몽글한 시간 덕분인지, 이날은 유독 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잠에 들었다.


2024.11.5. 화요일


아침 일찍 오전 수업을 들었다. 제법 날씨가 일주일 사이 추워져 롱패딩을 꺼내 입을 시기가 찾아왔다. 얼른 라디에이터를 킨 폭닥폭닥한 내 방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이었다.


점심을 먹고 따뜻한 차랑 어제 받은 비스킷을 꺼내 혼자만의 티타임을 즐겼다. 당분간 차와 곁들일 과자는 Malted Biscuit이 될 것 같았다.

20241105_120933.jpg?type=w773


이번 주 일요일까지 Family 수업 1차 과제를 제출해야 했기에 노트북을 꺼냈다. 기숙사 책상의 단점이 있다면 의자가 너무 딱딱하다는 점이었다. 한국에 있는 내 방 의자는 사무용 의자라서 오래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안 아픈데 안타깝게도 기숙사 의자는 식당 의자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지 않는 날이면 침대에 기대고 무릎에 노트북을 놓은 채 살짝 늘어진 상태로 과제를 한다. 이날도 반 늘어짐, 반 집중한 상태로 목표 지점까지 과제를 마무리했다. 이번 주는 두 번이나 당일치기 여행을 가기 때문에 목요일까지는 전부 완성하고 제출할 작정이었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부랴부랴 저녁 식사를 만들어 먹는 것도 익숙해졌다. 익숙하다 못해 이 시간이 제일 설렌다. 육체적 고생을 한 뒤 먹는 음식은 나에게 소소한 도파민이다. 요즘은 땀을 뻘뻘 흘린 상태에서 바로 공용 주방으로 들어가 닭가슴살을 삶아놓은 뒤 샤워하는 게 일상이다. 최대한 빨리 요리하고 먹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다.

20241105_175237.jpg?type=w773


'공용' 주방이 처음에는 나에게 적응해야하는 장소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분위기에 금방 익숙해졌다. 각자의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주방을 사용하고, 각자 음식을 해먹고, 중간에 스몰 토크하는 과정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물론 여전히 주방에 들어갔을 때 아무도 없으면 내적 댄스를 춘다.


내일은 수업에서 친해진 Geena와 아침 일찍 셰필드 역을 떠나 리버풀로 가야했다. 외국인 친구와 처음 떠나는 여행이어서 그런지, 평소 떠나는 여행보다 살짝 긴장이 가미된 설렘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2024.11.6. 수요일


Geena와 리버풀 여행을 간 날(얼른 써야지...)


2024.11.7. 목요일


여행에 대한 여운도 잠시, 어김없이 강의를 들어야 할 아침이 밝아왔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1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오가닉 마트에서 토마토랑 빵을 사려고 들렀는데, 테스코보다 비싸기도 했고 빵은 도저히 소분해서 공용 냉장고에 보관할 자신이 없어 슬그머니 나왔다. 결국 마트 구경한 사람이 되어버린 셈이다. 다시 집으로 향하던 중 Coop 마트가 눈에 들어왔다. 테스코에서는 볼 수 없는 빵이나 과자가 있으려나- 무의식적인 생각과 함께 아쉬운 대로 들어갔다.


구경만 하려는 다짐이 무색하게 어느새 품 안에 새로운 과자들이 안겨 있었다. 오레오가 노란색이라니! 한국에서 절대 볼 수 없는 Flipz 시나몬 번 맛! 내적 댄스를 추며 계산대로 걸어갔다. 영국에서 맛을 들인 digestive biscuit도 하나씩 맛을 도장 깨고 있었는데, 테스코에서 못 본 비주얼이 있어 잽싸게 같이 골랐다.

20241107_111617.jpg?type=w773


이날 저녁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Y님과 셰필드 극장에 가서 <Christmas Carol> 연극을 보러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연극을 보기 전, Y님과 식사를 하기로 해서 점심은 가볍게 빵과 뮤즐리로 배를 채웠다. 11월에 꽂힌 빵 이불은 바로 후무스다. 고소한 호밀빵에 고소한 후무스 이불을 덮어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뮤즐리도 오트 우유에 말아먹는 나는 고소함에 환장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평소에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밥을 먹는데, 구독하고 있던 유튜버가 HSP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영상을 업로드해서 자연스레 그 영상을 키고 밥을 먹었다. (TMI: 이 영상을 보고 바로 HSP 테스트를 해봤는데 나는 전혀 아니었다.)

20241107_131854.jpg?type=w773


극장에 가기 전, Y님과 만나서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기숙사에서는 쉽게 해먹을 수 없는 따뜻한 국물 요리가 먹고 싶어 베트남 쌀국수집에 갔다. 오랜만에 마시는 뜨끈한 국물이 몸 안을 데워줬다. 건강한 한 끼를 먹으면서 Y님과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먹으면서도 오늘 볼 연극에 대한 설렘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20241107_180256.jpg?type=w386
20241107_180215.jpg?type=w386


10월에 잠깐 하루 셰필드 시티 투어를 돌아다녔을 때, 셰필드 극장도 잠깐 구경했던 걸로 기억한다. 낮에 봐서였을까, 아니면 투어를 다닐 당시 정신이 없는 탓이었을까.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고풍스러운 건물이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이상하다, 분명 이런 옛날 분위기의 건물이 없었는데? 셰필드 시내에 이런 낭만적인 곳이 있었다니!'


건물을 보자마자 들뜬 마음이 더 두둥실 떠올랐다. 조금 신기했던 광경이 있었다면, 반짝거리는 검은 차에 내려서 여유롭게 걸어가는 노부부들이 많았다. 그 모습이 나를 더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줬다.

20241107_190753.jpg?type=w386
20241107_190816.jpg?type=w386


부끄러운 얘기지만, '크리스마스 캐롤'이라는 작품만 본다는 걸 알고 있었지 정확히 어떤 공연인지는 조사하지 않고 왔다. 그래서 포스터에 적힌 'Northern Ballet'를 보고 나서 발레 연극이라는 걸 깨달았다.


8살 때 아빠랑 영화관에서 짐 캐리가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롤> 영화를 보러 간 기억이 났다. 8살 아이가 봤을 때 스크루지가 겪는 악몽과 외로움은 공포 영화와도 같았다. 내 기억 속에는 '캐롤'이 아니라 <크리스마스의 악몽>으로 남아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20241107_191200.jpg?type=w773


우리는 3층 좌석에 가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무대 밖에는 술과 과자를 먹을 수 있는 바가 있었다. 영화에서 한 번쯤 봤던 장면이어서 신기했다. 저녁을 직전에 먹어서 배불렀지만, 나중에 한 번쯤은 일찍 와서 공연 전 샴페인 한 잔, 와인 한 잔을 딱!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 새로운 낭만 버킷리스트가 그 사이에 추가됐다.

SE-714192D5-8E36-4BF1-9265-D6057DA9AA69.jpg?type=w773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20241107_191840.jpg?type=w773


전혀 예상에 없었던 시야가 펼쳐졌다. 카메라와 조명만 빼면 정말 1800년대, 1900년대 오페라 극장과 같았다. 한국에서는 현대적인 감각의 뮤지컬, 연극 공연 무대만 봤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버킹엄 궁전에 있을 법한 천장화, 금색 빛깔의 벽지들, 정교하게 새겨진 조각상들은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연극 무대의 이미지를 톡 부쉈다. 붉은 벨벳 커튼 아래 놓인 두 개의 의자들, 박스 좌석도 '오페라의 유령'에서 봤던 공간이었다. 연극을 보다가 주인공이 문을 스르륵- 열고 멀리서 여자 주인공을 지켜볼 것만 같은 상상을 찰나에 했다.


연극이 시작하기 10분 전쯤 자리에 착석했다. 처음에는 무대에 움직이는 사람들과 눈 내리는 모습이 당연히 영상이라고 생각하고 멍을 때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직감이 왔다. 영상이 아니라 실제 배우들이 눈 내리는 무대에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투명한 칸막이가 가리고 있는 걸로 보였다. 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여서 두 눈을 계속 꿈뻑거리면서 배우들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크리스마스 캐롤>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20241107_191945.jpg?type=w386
20241107_193122.jpg?type=w773


휘몰아치는 1부가 끝나고 인터미션이 주어졌다. Y님과 얼마나 시간이 빨리 지나갔는지,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이 얼마나 우아하고 멋졌는지, 감탄의 대화를 나눴다. 주인공 스크루지도 발레를 너무 잘해서 놀랐다. 발레 공연이면 발레복을 갖춰 입은 발레리나 한 명이 나와서 발레 동작을 물 흐르듯이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만 떠올랐다. 그래서 발레를 추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조용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20241107_200704.jpg?type=w773


잠깐 바짝 굳어있던 몸을 풀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2부랑 3부도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20241107_210243.jpg?type=w773


자연스럽게 바뀌는 세트장, 배우들의 합창, 그리고 발레. 전부 완벽한 공연이었다! 대사보다는 노래 위주로 흘러갔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5년 전만 해도 이런 클래식이 가미된 우아한 공연을 보면 졸기 십상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즐겼다. (이런 게 어른이 되었다는 뜻인가!) 8살 때의 나는 스크루지를 고약한 할아버지로 기억했지만, 지금은 스크루지를 보면서 어떤 상처가 있길래 마음의 문을 닫고 지냈을까? 스크루지의 배경을 상상하면서 공연을 감상했다. 무시무시한 귀신은 오히려 스크루지가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도와준 수호천사였다. 할아버지, 이제는 크리스마스 때 따뜻하게 불 켜놓고 지내세요! 스크루지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쯤, 배우들의 커튼콜과 함께 막이 내려갔다.


크리스마스 한 달 전 봤던 <크리스마스 캐롤>이라서 더 기분이 좋았다. 계절에 어울리는 경험을 하면 언제나 뿌듯하다. 나중에 셰필드를 다시 오게 된다면 여행 코스 중 하나로 셰필드 극장에서 연극 한 편을 반드시 볼 거다. 런던에 있는 극장과 견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동안 다른 영국 도시에 한 눈 파느라 정작 셰필드는 '기숙사, 집이 있는 곳', '학교생활을 하는 곳'으로 바라봤다. 남은 교환 생활 동안 셰필드에서도 나들이를 떠나야지, 마음먹었다.

20241107_211034.jpg?type=w773


2024.11.8. 금요일


리버풀 여행, 연극 나들이의 기쁨을 모두 만끽하고, 잠시 혼자 있는 날이 주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독의 편안함은 내 온몸을 따뜻하게 녹였다. (정확히는 침대지만.) 주방 선반을 열어, 어제 산 과자 봉지들을 조금씩 뜯어서 애착 그릇에 토독토독 넣었다. 내가 갖고 온 단 하나뿐인 한국어 책을 아끼면서 읽고 있었는데, 지금이 펼쳐야 할 타이밍이었다.

20241108_122001.jpg?type=w773


한국에서 읽었더라면 느낄 수 없었던 공감의 온기를 셰필드 기숙사 침대 위에서 읽으며 진심으로 작가의 즐거움을 이해했다. "파스타 면과 소스와 마늘", "소문난 드라마를 정주행" 조합은 지금 내 일상과 맞닿아 있었고, "건강한 여행객의 불평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표현은 나의 청춘과 겹쳐 보였다. 누군가 유럽으로 멀리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유지혜의 <쉬운 천국>을 꼭 갖고 가라고 말할 것이다.

20241108_130244.jpg?type=w773


점심에 먹고 옹졸하게 남았던 베이글 샌드위치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오늘 먹지 않으면 영원히 먹지 않고 냉장고에 썩혀둘 것 같았다.) 운동 후 닭가슴살 새우 샐러드랑 곁들여 먹었다. 자고로 샐러드는 야채랑 원하는 재료들을 섞으면 샐러드인 법이다.

20241108_175723.jpg?type=w773


내일 있을 리즈 당일치기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H와 카톡으로 나누면서 잠자리를 준비했다.


2024.11.9. 토요일


리즈 여행 간 날 (일주일에 두 번 여행이라니... 지금 돌아보니 어떻게 했지 싶다)


2024.11.10. 일요일


어제 밤늦게 여행에서 돌아온 탓인지, 아침 운동을 미루고 점심에 대충 냉장고에 남은 재료들로 배를 채웠다.

SE-8d9c8d2e-a2f7-476f-9173-7cb644e65eea.jpg?type=w773


블로그에 일기를 조금 끄적이다가 책을 꺼내 읽었다. 읽다가 귀여운 대목이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어린애가 이런 식으로 시를 썼던 유명한 짤이 생각났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인 악동뮤지션의 <Freedom>도 떠올랐다. 소소한 행복에 감사할 줄 아는 작은 마음가짐은 인생에 잔잔한 행복을 지속적으로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잔잔한 행복은 계속 살고 싶다는 희망을 주기에 큰 행복보다도 소중하다. 어쩌면 내가 사진을 찍고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던 이유도 공감이 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20241110_114920.jpg?type=w386
20241110_114926.jpg?type=w386


운동 가기 전, 하늘 위 떠 있는 구름이 한 폭의 수채화 같아서 사진으로 남겼다.

20241110_150240.jpg?type=w773


운동을 마치고 나서 위를 올려다보는데,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보라 분홍빛 하늘이 펼쳐졌다. 동화 판타지 세계의 하늘 같았다. (건물은 다분히 현실 세계지만). 내가 운동을 미룬 데에는 이 하늘 아래에서 바깥공기를 마시기 위해서였구나, 하찮은 합리화도 해봤다. 숨쉬기 공짜! 동화 세계의 하늘 보기도 공짜!

20241110_162812.jpg?type=w386
20241110_162835.jpg?type=w386


저녁으로는 따뜻한 음식이 먹고 싶어서 햄 치즈 샌드위치랑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요리했다. 지난주 테스코에서 장을 보면서 '화이트 크림 파스타 소스'가 궁금해서 샀는데... 파스타에 부어서 먹어보니 상당히 느끼했다. 첫 몇 입은 맛있다- 하고 먹었는데, 다음 몇 입은 맛있나? 의문이 들었고, 어느 순간부터 맛없는 것 같아... 그라데이션으로 식욕이 감퇴했다. 결국 얼마 먹지 못하고 남겼다.

20241110_181431.jpg?type=w773


과자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분명 처음에는 이 정도면 배가 찰 것 같아서 담아왔는데... 이상하게 이날따라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갑자기 크림이 잔뜩 든 빵이 먹고 싶다는 욕심도 그득그득 생겼다.

20241110_201023.jpg?type=w773


결국 야밤에 테스코까지 가서 평소에 궁금했던 테스코 디저트랑 짭짤한 감자칩까지 야무지게 사서 방으로 돌아왔다.

20241110_215655.jpg?type=w386
20241110_215918.jpg?type=w386


보기에는 세상 맛있어 보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파리바게뜨 추억의 슈크림 슈가 이 둘하고 붙으면 압승이다. 그래도 달달한 욕구를 이 폭닥한 초코 구름들이 꽉꽉 눌러줬다. 급발진하는 식욕 때문에 어이가 없었지만 이 기회로 먹어보고 싶었던 간식들을 다양하게 먹을 수 있어서 뿌듯했다. 이런 게 길티 플레저일까?

20241110_220411.jpg?type=w773

셰필드에서 생활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이번 주는 새롭게 도전해 보고 경험한 사건들 투성이다. 첫 라볶이, 싱가포르 친구와의 첫 여행, 첫 발레 연극 관람, 첫 리즈 여행, 첫 보랏빛 하늘... 돌이켜보니 처음이 제일 많은 한 주였다. 그리고 그 처음이 전부 행복으로 다가왔다. 쉽지 않은 행운임을 알기에 이곳에 머물수록 감사함이 커지는 것 같다. 행운은 희귀하지만, 거기서 느끼는 행복은 나의 선택이자... 공짜다! 그러니 앞으로 다가올 날들도 즐기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