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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줏대 Aug 03. 2024

겸손한 낙하

결국 겸손함이었음을

고등학교에 들어온 지 꽤나 시간이 지났다.


나는 지난 며칠간 알 수 없는 답답합과 불안함,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구역감으로 휩싸여있었다.


공부는 손에 잡히지 않았으며 답답한 마음을 억지로 붙잡고 자리에 앉아도 어느 정도 있다가 미쳐버릴 것만 같아 집에 오곤 했다.

집에 와선 영상만 엄청나게 보고, 시험기간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우울해했다.

이런 생활을 한 일주일 정도 계속했는데, 카뮈의 책 같은 고상한 책들을 읽으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삶을 내가 초월해 버리겠다고, 이 위에 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친구들을 조금씩 멀리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한심해 보였고, 그들이 치는 장난은 귀찮기만 했다. 공부만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는 피폐해져 갔고, 가슴에 무언가 답답함이 응어리짐을 느꼈으며 머리가 아파왔다.

세상이 싫었다. 죽고만 싶어졌다.

그럴수록 나는 이를 초월하겠다고, 마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것도 거부하겠다고 스스로 굳게, 굳게 다짐했다.


그러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담임선생님과, 또 엄마와 상담을 하고 답답함을 토로했지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저 말한 것에 대한 후회만 남을 뿐, 가슴의 응어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우울하고 슬펐다.

앞에 있는 같은 전교권 친구가 나를 견제하는 말을 하는 것 같다고 조금이라도 느끼면 한심하다고 생각했고,

누군가 나를 불편해하면 내가 조금이라고 그보다 잘난 부분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이 싫어졌고,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과만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다.

또 그러는 자신의 모습에 회의를 느꼈다. 더욱 답답해져만 갔다.




그렇게 며칠을 견디다, 오늘 생명 수업을 들으면서 답답해도 참으면서 문제를 풀었다.

옆에 앉은 친구가 나보다 문제를 잘 푸는 것 같아서 나도 열심히 풀었고, 그가 책장을 넘기는 것조차 신경 쓰였다.

지금 자기가 나보다 잘 푼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같은 한심한 상상을 혼자 해가면서.


나는 선생님께 힘듦을 토로했다. 사는 게 힘들다고,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다.

매일이 우울하고 힘들다고 말했다. 이제는 지쳤다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왜 그럴까 하시면서 위기가 왔군 같은 말을 하셨다.

나는 선생님께서 가르치시는 학생도 몇 백 명이시고 이런 학생들을 볼 만큼 보셔서 별로 신경 쓰지 않으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1시 정도까지 프린트를 점검받고 집에 가려하는데, 그때도 질문을 받느라 바쁘셨던 선생님께서 어쩐 일인지 나를 배웅해 주신다고 따라 나오셨다.

그리고 나한테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마음을 알고 있다. 이해해.”

“정말요?”

“그래.”


“그럴 땐 하나님께 나를 낮추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렴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를 낮추라고? 갑자기?


생명과학 선생님이자 한 교회의 장로님이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을 원하시지 않는단다. 모두를 평등하게, 동등하게 바라보길 원하시지”.

 

이 말을 듣고 감사인사를 드린 후 나는 학원에서 나왔다. 어두운 복도를 걸으면서 곱씹어봤다.

’ 나를 낮춘다라…‘


그리고 마침내 알 수 있었다. 나의 우울함이, 구역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세상을 기만하고 있던 것 같다.

밤에 가끔 산책을 나가 밤거리에서 놀고 있는 대학생들을 보며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즐기고, 나보다 잘하는 친구를 엄청나게 견제하고, 멀리하는 것,

성적이 떨어진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학교 아이들을 멀리하는 것,

친구들을 한심하게 보는 것 모두 그런 것이었다.


가슴에 단단히 뭉친 응어리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겸손하게…


그리고 지금은 나를 떠나간 그녀가 떠올랐다. 나는 그녀와 있을 때 한없이 겸손했던 것 같다.

그녀는 나보다 열심히 살았고, 공부를 잘했으며 나는 그녀와 경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보다 공부를 못했지만, 내 위치를 인정할 수 있었고,

다른 무엇보다 스스로의 발전에 힘썼다.


거기로부터 나오는 정직하고 순수한 노력이 나의 최선의 모습을 이끌었던 것 같다.


이제야 그 퍼즐이 맞추어진 느낌이다.


계속해서 외부로부터 나의 자존감을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닌,

순전히 나의 발전에서 파생되는,

겉멋이 전혀 없는 순수한 발전으로부터의 행복.

그게 바로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었다.


세상을 알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은,

겸손함에서 시작된다고 감히 결론 내리고 싶다.


그리고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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