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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Jun 07. 2023

드립커피

by 송차장 부장 대우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13시 10분, 양조장은 오늘도 어김없이 핸드밀에 원두가 갈리는 소리로 오후 업무가 시작된다. 양조장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지만, 송차장 부장 대우는 오늘도 원두를 간다. 커피에 대한 집념은 업무 그 이상이다. 


 유리 서버 위에 드리퍼와 미리 준비해 둔 필터를 올려 깔아준다. 필터에 한 번 정도는 뜨거운 물을 흘려주어야 한다. 보온과 뜸 들이기를 좋게 하기 위해서이다. 필터 위에 핸드밀로 갈아 둔 커피를 넣고 뜨거운 물의 드립 포트를 사용해 천천히 뜸을 들인다. 2~3번 정도 뜨거운 물을 나눠 부어야 한다. 너무 물을 많이 붓게 되면, 커피 맛이 쓰고 커피 향은 사라지는 꼭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오늘의 커피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인가 보다. 부드러우면서 짙은 꽃향기와 달콤한 신맛이 양조장에 퍼지며 오후를 알렸다. 커피를 직접 내려 시음하는 그의 모습은 호주 출신 바리스타 폴 바셋을 연상케 한다. 


‘후르룹 ~, 쩝’

‘후르룹 ~ 쩝’


 송차장 부장 대우는 해장국을 들이켜듯 드립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가 얼큰한가 보다. 송차장 부장대우의 업무는 의전이다. 스탠리 상무의 전담 밥 당번 그것이다. 송차장 부장대우는 퇴직이 얼마 안 남았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그였지만, 부장 보직만큼은 가지지 못했다. 그는 퇴직 전 부장대우가 아닌 진짜 부장이 되고 싶다. 그래서 새로운 양조장에서 밥 당번이 필요하다는 구인 정보를 듣자마자 제일 먼저 지원했다. 그만큼 올해는 꼭 해야 한다. 벌써 밥 당번만 올해로 15년째다. 


 밥 당번 업무에 있어서는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다. 초고수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날씨, 온도와 습도, 미세먼지까지 체크해 윗사람이 무엇을 먹고 싶은지 금세 맞출 수 있다. 관심법까지 동원한다면 메뉴 선정에 있어서는 돗자리를 깔고도 남았다. AI 머신러닝은 그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다음날, 송차장 부장대우가 준비한 점심은 수제버거다. 얼마 전 오픈한 버거집이다. 아무래도 금요일 하버드 출신 스탠리의 향수병을 달래주기에는 그만한 메뉴가 없기 때문이다. 패티 2장, 체더치즈 2장의 자이언트 클래식은 태평양 건너온 스탠리의 마음을 차분하게, 그리고 깊은 곳에서부터 든든하게 마음을 잡아준다. 트뤼프 감자튀김은 미국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변종이었지만, 스탠리는 마음에 든다. 케첩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라지 사이즈 콜라를 마시면서 스탠리는 오늘 매우 행복하다. 그래서 집에 가기 싫다. 


 스탠리는 오늘 송차장 부장대우를 다시 본다. 이 자리를 마련해 준 송차장 부장대우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눈가는 촉촉하지만, 입가에 미소를 띠며 자기 감자튀김을 송차장 부장대우에게 맛 좀 보라며 건넨다. 성공이다. 송차장 부장 대우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 감자튀김 한 조각은 조선의 명장 이순신의 쌍룡검보다 더 빛이 났다. 


‘드 르르 드 르르르르 드르르 드 르르르르’ 

‘드 르르 드 르르르르 드르르 드 르르르르’ 


 핸드밀에서 원두가 굿거리장단에 맞춰 갈린다. 커피 원두의 균일성을 위해 가장 정성을 쏟아 분쇄를 해온 송차장 부장 대우였지만 오늘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쌍룡검을 하사 받았기 때문이다. 굿거리장단 때문인지 커피 원두가 불규칙하게 갈렸지만, 오늘보다 더 짙은 꽃향기는 없었다. 오늘 송차장 부장대우는 에티오피아고원에 누워있다. 그리고 중요업무 처리에 노곤했는지 젖혀진 의자에서 스르르 잠이 든다. 꿈속에서 벚꽃에 휘날리는 따뜻한 봄이 어서 오라는 손짓을 느껴본다. 오후 2시 집중업무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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