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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퍼 May 11. 2023

10년 만의 가족 해외여행

4박 5일간 세 아들과 살아남기

남편을 큰아들이라 생각하며 산지 10년.


신혼여행이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는데 큰아이가 방학 동안 친구들은 다 여행 갔는데 본인만 못 갔다고 울부짖자, 스크루지 뺨치게 가족들에게는 인색한 남편이 패키지 해외여행 상품을 통 크게 결제했다.


가기 전날까지 실감이 안 났는데 비행기를 타니 정말 해외라는 곳을 가기는 가나보다 실감이 난다.

명품에 관심을 가질 형편이 안 돼서 비행기 탑승전 어린이 놀이터에서 두 아들을 풀어놓고 놀렸는데 둘이 하도 싸우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비행기 안에서도 작은아이가 4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있는 게 힘들었던지 몸을 배배 꼴 때마다 앞에 앉은 아저씨가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바람에 나랑 남편은 아이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폭풍 잔소리를 하느라 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태블릿에 영화를 저장해 보여줬는데 4시간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괌에서의 첫날

3시에 체크인해야 한다 해서 점심을 굶은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사 간 누룽지로 간단히 식사를 때우고 야외수영장에서 실컷 놀다 6시에 저녁으로 뷔페 먹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둘째 날

가이드 남부투어가 있는 날.

에메랄드 밸리, 스페인 광장, 사랑의 절벽 등을 둘러보았으나 집에 가고 싶고, 사진 찍기 싫다고 계속 짜증 내는 큰아들덕에 함께 투어 하는 가족들에게 "엄마 힘내세요"라는 응원을 받았다. 호텔로 돌아와 야외수영하다 저녁식사 후 슈퍼 아메리칸 서커스(PIC 골드 카드 소지자는 무료이나 사이드 자리에서 관람해야 합니다) 구경을 했다. 남자아이들이라서 그런지 마지막 오토바이 쇼(구안에서 오토바이 두대가 질주함. 부딪치면 어쩌나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습니다)를 가장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중간 15분간 휴식시간에 팝콘을 사달라는 아드님들 요청에 거금 8달러 주고 제일 작은 사이즈로 사 드림.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가격에 손이 후들후들 떨린다.


셋째 날

렌트 한 차를 타고 피시 아이 마린 파크 구경(돈 아깝다. 절대 가지 마시라. 바닷속 전망대는 협소했고, 물고기도 별로 없었어요) 후 야시장에 가서 아이들 망고주스 사주고, 소도 태워줬다(말이 아닙니다).


호텔에 돌아와 저녁식사하며 세 캔이나 주를 마신 남편은 버려두고, 다른 숙소에 머무는 여동생네 가족과 타가다 어뮤즈먼트 파크에 갔다. 큰아이는 생애 첫 바이킹을 타고 둘째는 앞뒤로 흔들리는 자동차를 태워줬다. 맨 끝에서 사촌누나들과 바이킹을 탄 큰아이는 다시는 안 타겠다고 울고, 키가 미달이라 탈 것이 별로 없었던 둘째는 밥이랑 우유 많이 먹고 다음에 또 오자는 엄마의 다독임에 입을 삐죽이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저녁에 문 연 마트가 K마트밖에 없어 구경하러 들어갔으나 비싼 가격에 하나도 구입하지 않고 빈손으로 나와 숙소에 갔더니 남편이 그 사이에 K마트에서 6개 세트 맥주를 사 와 지 혼자 마시고 있었다.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는지 아이들을 재우다 나도 잠들어버린 날이었다.


넷째 날

동생네 가족과 리티디안에 가서 스노클링 한다고 신난 큰아들, 물에 뜨는 법을 드디어 익힌 둘째 아들과 2시간 동안 파란 바다에서 예쁜 물고기를 보며 신나게 놀았다. 반바지 수영복 때문에 너무 다리가 타서 아파하는 언니를 보고 막내딸이 입었던 긴바지 수영 레깅스를 준 동생덕에 오늘은 덜 타는 하루가 될 듯하다.


숙소에 와서 점심 먹으려는데 어린이 골드카드가 보이지 않아 결국 25달러 내고 데스크에서 재발급받고, 둘째 아쿠아 슈즈도 잃어버려 숙소 앞 ABC마트에서 15달러 주고 깔창 두꺼운 파란색 아쿠아 슈즈를 샀다.


괌에서 보내는 마지막 저녁이라고 K마트에 가자는 남편과 밤산책. 아이들은 마트에서 농구공 하나씩을 어린이날 선물로 사고(절대 공은 사지 마세요. 비행기 안에서 기압차로 터질 수 있답니다) 남편은 가장 큰 맥주캔 하나 사서 호텔로. 같이 맥주 마시자던 남편은 아이들과 잠든 나를 버려두고 혼자 그  맥주를 다 마셨다.


마지막 날

아침 먹고 남편이 아이들과 물놀이하는 동안 혼자 싸고 수영장으로 내려왔다(미리 짐 싸기 정말 잘했어요). 기상사정으로 항공지연되어 새벽 3시에 비행기 타야 한다며 숙소 딜레이 하라고 여행가이드한테 연락이 왔다. 부랴부랴 데스크에 가서 숙소연장 신청을 했으나(우리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아 데스크 앞의 줄은 길었어요. 기다리는데 1시간은 걸린 거 같아요), 현재 머물고 있는 방은 뒷 예약손님이 있다며 다른 방에 6시에 체크인이 하란다. 6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여기서 뭘 한단 말인가! 우선 급하게 짐부터 빼러 머물던 호텔방에 갔는데 12시 넘었다고 문이 안 열렸다. 데스크에 다시 가서 문 열어달라고 부탁하고 짐  빼서 점심 먹으러 갔다. 지금은 1시. 6까지 야외수영장에서 버텨야 한다!


동생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T갤러리아 같이 가자고 연락이 왔다. 남편 동의하에, 아이들과 남편을 야외수영장에서 두고 동생차를 얻어 타고 시내에 갔다. 동생덕에 차 안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농구공은 기내반입 금지란다. 내 짧은 영어로 반품할 수 있으려나 걱정이 앞선다. 아무튼, 걱정은 이따 하기로 하고 동생이 찜한 목걸이가 있다며 들어간 곳은 까르띠에 매장. 동생 따라 반지와 목걸이를 착용해보기도 하고, 조카 가방 사는 것도 도와주고 나니, 남편카드지갑이 물에 젖어 안 잠기는 게 생각났다. 남편에게 결혼 10주년 선물 하나 하기로 결정. 검은색 카드지갑 하나를 구입했다. 매장직원 설명에 따르면 할인받는 방법이 두 개 있는데 큐알코드를 찍어 할인쿠폰을 받아서 계산하면 더 저렴하단다. 삼성폰을 쓰는 나와 동생은 큐알코드 찍어 사이트 들어가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 포기하고, 아이폰 쓰는 조카가 쿠폰 받아 조카 크로스 가방과 내 카드지갑을 같이 구매 후 내가 동생에게 현금을 줬다.


계산하는데 진이 빠진 나는 바로 숙소로 가서 맡긴 짐 찾아 6시 넘어 데스크에 갔으나 아직 정리가 안된 거 같다고 기다려달라는 직원말에 속에서 천불이 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약속한 6시가 지났으니 빨리 들어가게 해 달라고 데스크 직원에게 좋게 좋게 이야기했다. 처량하게 짐을 주렁주렁 옆에 놓은 채로.


드디어 방정리가 끝났다는 직원의 말에 배정받은 방을 향해 가족들과 바리바리 짐을 들고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짐을 숙소에 풀고, K마트로 갔다. 서비스센터에 영수증을 보여주며 "어제 공 2개를 샀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공은 기압 때문에 터져서 들고 갈 수가 없다. 몰랐다. 환불해 달라"라고 했더니 흔쾌히 환불해 주는 고마운 마트직원. 덕분에 기분 좋게 숙소에 돌아와 저녁으로 과자와 요플레를 먹고 12시까지 자다 새벽 3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가이드차량에 탑승했다.


공항에서 배고프다 징징대는 아드님들에게 우동을 사주고 정해진 시간에 비행기 탑승. 한번 타봤다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얌전히 있어준 두 아들. 너무너무 고맙다. 10년 만의 가족여행은 이렇게 끝났으나, 추억은 영원할 듯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서 다음에도 또 가족들과 여행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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