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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Jun 29. 2022

동네 여인들

김 씨는 어느새 동네 유지가 된 듯하다. 매일 강아지들을 산책시키다 보니 난 그들을 모르나 그들은 나를 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강아지들을 산책시키는 늙은 남자. 어쩌다 한 놈만 데리고 나가면, 모르는 아줌마, 학생, 할머니, 심지어 소도둑 같은 중년 남자가 묻는다. “아니 흰 강아지는요?” “검은 놈은요?” “어디 아픈가요?” 조금 먼 아랫동네로 갔을 때 내 또래 남자가 반갑게 말을 건네기도 했다. “아! 저 위에서 강아지 산책시키는 분이죠?”


강아지들 산책으로 알게 된 동네 할머니들이 있다. 그중에 대장인 95세 여인이 내게 말한다. “열 열하네.” “네?”  “강아지들에게 열 열한다고. 부모한테도 그리 잘하나?” 아, 그런 말이셨구나. “그럼요. 어머니가 서울에 계셔서 가끔씩 뵙지만 잘합니다.” “용돈도 드리나?” “그럼요.” “얼마나 드리나?” “뭐 (약간 뻥을 섞어서) 한 달에 100만 원 드립니다.” 할머니는 더 이상 말씀이 없다. 나의 완승. 그렇게 알게 된 할머니들은 95세 대장과 88세 부두목, 그리고 존재감 없는 두 분 더. 매일 만나다 보니 잠시 멈춰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거다. 그분들은 말하고 싶어 하시나 듣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들어주면 하염없이 좋아하신다. 젊었을 때의 무용담. 딸이 근처에 산다는 말과 사위 자랑. 나도 모르는 어떤 할머니가 죽었다고. 나도 노인인데 나보다 더 노인은 나보다 더 외로우신 거다.


아내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고 가급적 끼니를 알아서 해결한다. 자주 김치찌개를 먹으러 가는 솜씨도 머리도 좋은 식당의 키 작은 아줌마. 새로운 메뉴를 계속 개발하고, 반찬도 자주 바꾸는데, 비싸지도 않고 맛있다. 김치찌개의 대체재로 즐기는 짜장면 집 무뚝뚝한 아줌마, 그리고 혼밥을 즐긴 후 커피 사러 하루 한 번은 꼭 들리는 동네 카페의 꺼벙이 (이건 내가 노골적으로 붙여준 애칭) 여사장. 난 그 아이가 (40대쯤 되었을지 모르나 어쨌든 나한테는 애니까) 어떻게 장사를 하는지 모를 정도로 칠칠맞고 엉성해서 가끔 나도 모르게 "이 바보야, 이 꺼벙아"라고 소리치면 중년의 그 여자 아이는 자지러듯이 웃으면서 좋아한다. 꺼벙이.


김치찌개 아줌마는 가끔 말을 건넨다. 서울이라도 다녀오면 며칠 안보이시던데 어디 다녀오셨냐고 묻는다. 메뉴에 없는 반찬을 쓱 놓고 가기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 김치찌개 아줌마가 가게를 닫았다. 꺼벙이의 말로는 남편은 제주도에 있는데 여기서 애인을 만들었는데 (그 애인은 가끔 바쁠 때 가게 일을 도와서 나도 잘 안다) 그 애인이 동네 사람들한테 2억을 떼어먹는 바람에 난리가 났고 그래서 식당을 닫았단다. 본시 꺼벙한 애들이 쓰잘데 없는 소문에는 밝은 법이다. 남 뒷말 말라고 구박한 지 며칠 후 카페에 새 주인이 왔다. “사장은?” 아르바이트하는 잘생긴 청년이 말한다. “사장님 그만뒀는데 찾는 사람이 많아요.” 아, 그 꺼벙이가 이렇게 느닷없는 짓을 저지른단 말인가. 생각보다 많이 섭섭했다. 갈 때마다 걸걸한 목소리로 “반갑습니다" 하고 나올 때는 “가세요"라고 말했다. “좀 영혼을 담아 인사 좀 해보렴. 가는 손님한테 ‘가세요'가 뭐야.” 그럼 또 자지러지게 웃는 꺼벙이 여사장.


데리고 나가면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던 동네 셀럽(celebrity)이던 나의 사랑 흰 강아지 두리도 떠났고, 음식 솜씨뿐 아니라 애인 솜씨도 좋았던 김치찌개 아줌마도 홀연히 사라졌고, 나를 엉성하게 흠모하던 카페 꺼벙이도 떠났다. 그즈음에 친한 친구가 죽었고, 그리고 내가 그리도 좋아했던 라일락들이 죽었다. 화분에 심은 것들은 겨울에도 계속 물을 주어야 했건만 곧 이 집을 떠날 거란 방심 때문이었다. 강아지한테 하는 것만큼 부모에게 잘하냐고 구박하시던 대장 할머니를 뵌 것이 오래다. 편찮으셔서 딸 집으로 가신 건지, 요양병원에 계신 건지, 아니면 돌아가신 건지. 남은 건 짜장면 아줌마지만 여전히 퉁명하다. “여긴 간짜장 안 하세요?” 모처럼 말을 건네자 단호하고 퉁명스레 대답한다. “네, 우린 안 합니다!” 여인의 남편인 주방장이 솜씨가 좋으니까 간짜장 하면 많이들 사 먹을 것 같아 한 말이건만. 아 맞다. 한 명의 여인이 또 있다. 가끔 이발하러 가는 미장원 여인. “옆 카페 사장님 어디 간 줄 아세요? 술집 해요. 가만히 있을 여자는 아니잖아요. 알려드릴 테니 한번 가보실래요?” 승리의 발언이다. 미장원과 카페는 동등했지만 지금은 자신이 이긴 거다. 술집 하는 여자니까.


여인이 아닌 동네 친구는 옆집 형님뿐이다. 3층 원룸을 운영하시는데 성실하셔서 매일 와서 분리수거하시고 마당과 주차장 청소를 하신다. 다리를 조금 절지만 기골이 장대하다. 일흔 후반쯤 됐을까. 어쨌든 나보다 형님임은 틀림없다. 청소를 마치면 근처 편의점 앞에 자리 잡고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동네 후배들과 담소를 나눈다. 청소도 담소도 하루도 거르지 않는 것이 그분의 루틴이다. 동네 형님을 매일 만난다. 강아지와 산책하다가 만나고, 혼자 김치찌개나 짜장면 먹으러 가다 만나고, 그냥 원룸 청소하실 때 뵙기도 한다. 그럼 잠시 이런저런 얘기도 하게 된다. 형님이 보이지 않았다. 여인들만 떠난 것이 아니라 유일하게 아는 남자도 떠난 거다. 원룸 청소를 하는 젊은이는 아들일 터이니 물었다. “아버님 편찮으신가요?” “허리가 안 좋아서 서울에서 수술하시고 지금 집에서 재활하십니다.” 아프셨구나. “안부 전해주세요. 어서 완쾌하시고 다시 뵙자고.”


멈춰있는 건 없다. 사람도 인연도 그렇다. 늙고 병들고 무슨 일이 생기고 그런 거니까. 내가 사라지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면, 동네 할머니들과 무뚝뚝한 짜장면집 아줌마와 꺼벙이 대신 온 카페의 젊은 여사장과 승리의 미소를 짓던 미장원 여인과 옆집 형님과 나는 모르나 나를 아는 많은 동네 사람들은 그 독거노인 듯한 늙은 남자가 궁금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곧 나를 잊을 것이고 나의 사라짐은 세상에 아무런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다 잊히고 혼자가 되는 것이 인생이라면, 미리 고립되어 혼자로 살아가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나를 오래 기억할 것이라 여겼던 뭇사람들에게 너무 쉽게 잊히는 슬픔을 미리 방지하는 장점이 있다. 하긴 나도 그들을 잊으니까. 그래서 내 인생 연극의 마지막 장은 혼자서 잘 노는 이야기로 채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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