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라는 노래가 있다. 누나는 남동생에게 ‘짜샤, 힘내.’라고 말한다.
두 살 위 누나가 있다. 보통 남매가 그렇듯이, 우리도 그렇게 살갑게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지난해 엄마가 아프시기 전까지는.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서로 마음으로 위하고 의지하는 좋은 남매였지만, 전화해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거나 굳이 만나서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사이는 아니었다. 엄마가 아프기 전까진 그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어머니를 모시는 일이 시작됐다. 쉽지 않았다. 아내와 홀어머니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도,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는 미처 상상도 못 했다. 아내는 전형적인 가정주부나 현모양처가 아니다. 능력 있고 자아가 분명한 여자였다. 내 엄마는 똑똑하고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어야 하는 여자였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두 여자 모두 아버지를 좋아했으니까, 어떤 완충이 있어 두 여자의 갈등이 폭발하진 않았으리라.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두 여자 사이엔 늘 팽팽한 긴장과 힘겨루기가 있다. 속내를 드러내고 소리쳐 싸웠다면 그나마 낫지 않았을까. 날카로움과 차가움, 불안한 긴장과 경계, 그리고 분명한 미움. 그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세대는 아직까지는 부모에 대한 절대적 존중이 있었으나, 아내에게 시어머니는 엄마가 아니었으므로 내가 엄마 편을 들면 아내는 화내면서 말했다. “내가 당신 하나 믿고 이 집에 왔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당신은 정말 어머님이 옳다고 생각해?” 내 변명은 늘 궁색했다. “여보, 당신이 맞지만, 엄마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 그냥 져주면 안 돼?”
외줄 타기가 힘들고 자신 없으니 자연히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먹지 못하는 술을 먹었고, 공연히 동료나 후배들에게 술을 사주면서 최대한 집에 들어가는 시간을 지연했다. 아내와의 관계는 나빠졌고, 두 여자의 사이도 나빠졌고, 두 아들까지 집안의 우울한 분위기에 상처받았다. 다들 힘들었다.
상황이 바뀐 건 내가 직장 때문에 지방으로 이주한 후부터다. 처음에 아내는 서울에 남아있었지만, 남편 없이 시어머니와 겨루고 두 아들을 키우는 것의 한계를 인정하여 결국 내게로 왔다. 그 후, 아내는 며느리의 의무감인지 아니면 진심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주 시어머니와 전화를 했고, 그때마다 두 여자의 대화는 30분을 넘기곤 했다. 같은 공간에서 숨 막히게 대치하지 않으니 겨루어 이기려는 것들도 사라졌나 보다. 아내는 혼자 지내시는 게 괜찮냐고 죄송하다고 말하면, 엄마는 괜찮다고 그리고 너희들 잘 지내라고 답하시니 두 여자의 관계는 급속히 좋아졌다.
누군가 짐을 벗어 홀가분해지면 다른 사람이 그 짐을 지느라 힘들어진다. 그때부터 누나가 엄마를 돌보게 되었다. 누나는 한 주에 두 번씩 엄마를 찾아 이런저런 반찬거리와 먹을 것을 주었고, 무료한 엄마를 모시고 드라이브시켜주고 맛있는 것도 먹이곤 했다. 엄마는 늘 혼자 잘 살고 있다고 자랑했지만, 그건 전적으로 누나의 봉사와 돌봄을 희생 삼은 것뿐이다.
엄마는 90이 되었어도 여전히 도도했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순리대로 서서히 약해졌고 결국 사고가 생겼다. 상가건물에 있는 미장원에 가려고 계단을 오르다 뒤로 넘어진 것이 엄마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심한 엉덩방아. 천만다행으로 뼈가 부러지진 않았지만, 그 충격으로 몸에 힘을 줄 수도 없었고, 먹지도 못했고, 말도 잘 못했고, 배에는 복수가 찼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 보호자가 있을 수 없었지만, 누나는 엄마 혼자 움직일 수 없다고 사정을 했고, 결국 비싼 1인실로 옮긴다는 조건하에 병원의 허락을 받았다. 답답하고 궁금해서 전화할 때마다 졸지에 병원에 갇혀 늙고 병든 엄마의 수발을 들게 된 누나는 말한다. “이러다 엄마도 죽고 나도 죽겠어. 넘어져서 그런 거 아니냐고 아무리 말해도 의사들은 듣지도 않고 온갖 검사만 해대고, 나도 잠도 못 자고 너무 힘들다.”
원인을 찾지 못하니 새로운 검사가 계속된다. 늙고 아픈 엄마의 팔은 주삿바늘 자국으로 온통 멍들어 더 피를 뽑을 수도 없는 지경이다. 그래도 또 검사. 의사들은 엄마가 왜 아픈지 끝까지 몰랐으니까. 결국 누나와 의논하여 모든 검사와 치료를 거부하고 엄마를 퇴원시켰고 누나의 지옥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엄마는 밤새 열 번이 넘게 화장실을 가겠다고 했고, 혼자 움직일 수 없으니 침대 아래서 잠을 자던 누나는 그때마다 엄마를 부축해서 화장실을 가야 했다. 오줌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한테 기저귀를 채워. 밤새 잠 못 자면 누나가 어떻게 버티냐고.” “엄마가 아직 정신이 있어서 기저귀 절대 안 차려고 하는데 어떡하니.”
밤새 못 자고, 낮에도 엄마를 부축해 소파에 앉히고 침대에 눕히고, 화장실 데려가고, 의자에 앉혀 뭐라도 먹이고, 목욕시키고, 누나의 극한 삶이 계속되었다. 누나하고 이렇게 많이 오래 얘기를 한 적이 없다. 나는 엄마가 걱정되고 누나한테 미안하니 자주 전화를 했고, 누나는 너무 힘든데 하소연할 사람이 없었으니 내게 다 퍼붓는다. “야, 내가 먼저 죽겠어. 네 매형하고 아들은 이래라저래라 말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니까 결국 내가 다 하잖아. 잠 좀 자면 원이 없겠다. 친구도 만나고 나가서 할 일도 있는데 엄마 때문에 꼼짝 못 하잖아.”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누나한테 미안한 마음뿐이다. 사람이 너무 힘들어지면 원망이 생기는 건가. 천사 같던 누나는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한테 칭찬받아 본 적도 없고 돌봐줘서 고맙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어. 늘 구박받은 게 다야. 넌 모르겠지만 우리가 잠시 엄마하고 같이 살았을 때 너무 힘들었어. 나도 네 매형도 얼마나 무시당했는지 몰라.”
매형은 꼭 집밥을 먹어야 한단다. “누나가 평생 그렇게 잘해줬으니까 매형이 그게 당연한 걸로 알잖아. 누나 나이에 누가 매일 밥을 차리나. 엄마 때문에도 너무 힘든데 시켜먹어.” 그럼 또 속 터지게 착한 누나는 말한다. “그래도 매형이 위가 약하잖아. 계속 사 먹으면 탈이 나더라고.” 그러면서 각종 반찬에 요리를 해댄다. 누나에게 외아들이 있다. 그런데 엄마가 아픈 그때 마침이면 임신한 예비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픈 엄마, 밥해 달라는 매형, 철없는 아들과 임신한 며느리, 그리고 고양이 네 마리와 늙은 강아지 한 마리. 가족들과 짐승들을 돌보는 것은 온전히 누나의 몫이다.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약도 끊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는 놀라울 정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복수가 빠졌고, 몸에 힘이 생겨 지팡이에 의존해서 다시 혼자 걷게 됐고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되니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넘어졌던 충격으로 모든 장기가 흔들렸던 것이 자연 치유되어 다시 자리를 잡아가나 보다.
“엄마가 아팠을 때가 더 쉬웠어. 그때는 아기 같아서 내가 말하는 대로 했거든. 지금은 힘들어. 다시 고집이 생기고 나를 무시하고.” “엄마 눈치 보지 마. 누나가 엄마 뒤치다꺼리 다 해주는데 이젠 좀 엄마한테 이래라저래라 말도 하고 편하게 지내.” “난 그게 안돼. 평생 엄마 눈치 보고 살아서 그런가 봐. 엄마 때문에 상처 많이 받았고 너무 힘들었어. 너는 공부 잘해서 엄마 자랑거리 만들어 줬지만, 나는 뭐 아니니까 그저 무시당하고 살았지.” 천사같이 착한 누나가 평생 처음 불평과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힘드니까.
난 잘 몰랐다. 누나가 엄마한테 그렇게 많은 상처와 분노가 있었는지. “엄마는 사람을 구분하잖아. 우아하게 대해줄 사람과 무시할 사람. 난 무시할 사람이었고. 엄마는 성격이 왜 그러냐.” 엄마에 대한 서운함. 집안의 모든 짐을 혼자 져야 하는 힘든 현실. 그렇게 살아온 자신에 대한 미움과 후회. 난 그저 누나한테 미안했다. 같은 자식인데 모든 마음과 육체의 짐을 혼자 감내했던 것에 어찌 미안해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누나가 쓰러졌다. 결국. 급성 B형 간염, 그리고 피검사 중에 우연히 발견된 백혈병. 누나의 삶은 끝없는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구정 때 누나 집에서 모처럼 다 모였었다. 아픈 엄마도 즐거워했고 누나도 얼굴이 좋았다. 그런데, 이틀 후인가, 전화를 했더니 누나가 좋지 않다. “며칠 먹지도 못하고 혈변도 있어.” 동네 병원에 갔지만, 검사를 해보더니 빨리 큰 병원에 가보란다. 급성간염, 그리고 혈액암. 약을 써도 간이 전혀 재생되지 않고 급속히 악화되어 간이식받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다. 놀란 매형과 조카가 서로 간을 주겠다고 검사를 받던 중에 기적이 일어났다. 26살 젊은 남자가 뇌사였고 부모님이 장기 기증을 결심했고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누나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누나가 아프니, 죽을 정도로 아프니, 내가 엄마를 집으로 모셔왔다. 누나의 모든 짐을 인계받고 보니 비로소 누나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다. 아니 모른다. 지금 엄마의 상태는 누나가 겪었던 최악이 아니니까.
누나가 간 이식을 했다는 말을 들은 것이 충격이었나 보다. 엄마가 매일 말한다. “그렇게 아픈 줄 모르고 난 그냥 어디가 좀 아픈가 했지. 말을 해줘야 기도를 했을 건데. 내가 아플 때마다 달려왔는데, 난 누나가 아파도 갈 수가 없구나.” 엄마가 울면서 한 말을 전했지만, 그런데, 천사 같던 누나는 냉담하다. 그동안의 서운함이 엄마의 신파 한마디에 풀리지 않는다. 죽음의 벌린 입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느라 너무 힘들고 무서운데 엄마의 눈물 따위는 의미 없다.
누나가 다 이해된다. 누나의 평생 봉사와 헌신이, 천사가 아닌 인간의 노력이었으니, 즐거울 리 없었고 당연 할리 없었으니 다 이해가 된다. 그런데 서운하다. 그럼 끝까지 엄마를 위하는 척, 걱정하는 척하면 안 되는 것인가. 이제 와서 그렇게 엄마를 미워하고 엄마를 위했던 날들을 후회하면, 누나의 자랑은 무엇이냐 말이야. “누나, 이제 그만 엄마 용서해라.” “용서하고 말고 가 어딨어. 늙고 힘 빠지니 불쌍하지만, 지금은 내가 죽을 지경이니 아무 생각이 없다.”.
나는 안다. 내 엄마가 사랑 없음을. 그리고 모든 싸늘함과 상처 주는 말들을 누나가 다 감내했음을. 그리고 이제 자신이 아프고 죽음과 싸우니, 그동안 엄마한테 받았던 모든 서러움과 상처와 분노를 다 토해내고 있음을. 다 이해가 된다. 전화 중에 누나가 웃으면서 말한다. “네 매형이 그래. 당신이 아프니 비로소 어머니한테서 해방됐네.” 나도 울면서 웃는다. “그러게, 아프기 전에 진작 해방되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난 내 누나가 천사인가 했다. 젊었을 때부터 가난하고 불쌍하고 버려진 사람들을 위해 봉사만 했다. 교회를 열심히 다녔으되 감투를 쓰기는커녕 다 하기 싫어하는 호스피스 부서를 맡아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려고 애썼다. 그리고 엄마를 위해 오랫동안 수고하고 너무 애썼다. 그러나, 내 누나는 천사가 아니었다. 그 모든 헌신과 봉사와 노력이 힘들었다. 겨우 버티다, 죽을병에 걸리자 그 모든 수고가 도대체 무슨 의미였냐고 항의하고 있다. 천사가 아니라 인간이었으니까.
“오늘 병원에 갔었지. 근데 의사가 백혈병 수치가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졌대. 처음에 오진이었는지 뭔지 모르겠다고 다음에 제대로 골수검사를 해보자는 구만.” 누나한테 기적이 한번 더 일어난다고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신이 계시다면, 내 누나 같은 사람에게 기적을 베푸는 건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식한 간이 잘 정착되고, 백혈병이 무효가 되면, 누나는 백수하겠구먼.” 누나가 오랜만에 웃는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불안 속에서도 잠시 같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