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씨 Jul 15. 2022

Episodes

난 사실 장난치고 웃는게 좋다

#1.


우리 집 첫째 이름은 타샤. ‘카발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이라는 매우 건방진 이름을 가졌다. 오래전 영국 찰스 몇 세가 좋아해서 왕실견이었던 게지. 게다가 부모는 독일에서 Dog Show의 챔피언이었고, 그 후 러시아 브리더가 입양해서 또 러시아 챔피언을 먹었다. 유럽 어딘가로 입양가게 되어 있던 아이가 어쩌다 내게 와서는 그저 동네 똥개로 살고 있다. 그런 게 운명. 사람의 기쁨을 위해 강아지를 훈련시키고 모양내는 일체의 행위를 싫어하는 나는 그저 최소한의 안전과 통제를 위해 ‘앉아, 기다려’ 만을 가르친다. 나머지는 무슨 짓을 하든지, 집안을 개판으로 만들든지, 그대로 놓아둔다. 자기 집에서는 맘대로 살 수 있어야 집인 게지.  내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믿는다. 가끔 아내가 애들을 이용해 돈 벌려 할 때도 있지만 내 철학은 분명하다.


타샤는 늘 긁는다. 피부병인지 알레르기인지 진드기 때문인지. 며칠 전 머리 쪽에 부스럼이 보여 병원에 모시고 가서 뭔지 알 수 없는 주사를 한방 맞고 나니, 삼일 치 약을 먹이기도 전에 긁기를 딱 멈췄다. 이렇게 갑자기 나을 수가 있는 건가. 일주일 정도 지나자 조금씩 다시 긁어 대기 시작한다. 그리 심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완치라고 여겼기에 낙심이다. 하여 오늘 털을 죄다 밀어버리고 피부병이 있는지 전면적으로 살폈는데 수의사 왈 “깨끗하네요. 돈 워리.”


좋아라 집에 오자마자 다시 오른쪽 뒷발로 오른쪽 앞발 쪽을 긁어댄다. 하긴 오른쪽 뒷발로 왼쪽 앞발을 긁을 수는 없을 테니까. 아,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어쨌든, 타샤를 책상에 올리고 등을 켜고 면밀히 피부를 살피다 보니, 아뿔싸 진드기가, 분명 죽은 시체이겠지만, 오른쪽 옆구리 두 군데 박혀 있는 게 아닌가. “아, 이래서 타샤가 계속 긁었구나. 이제 너를 평안히 해 주겠노라.”


진드기는 침인지 주둥인지, 하여튼 뭔가를 살 깊이 박아 넣어 몸뚱이가 잘려도 마지막 몹쓸 부분을 빼내기 어렵다는 걸 어디선가 봤는데, 역시 까맣게 박혀있는 몹쓸 것이 빠지질 않는다. “타샤야 네 가려움을 이 아빠가 해결하고야 말겠다.” 계속 여드름 짜듯 짜다 보니 피부가 벌겋게 벗어지고 타샤는 깨갱대고 난리 부르스.

할 수 없이 병원에 전화했더니 일단 데리고 와 보시란다.


“아니 선생님! 이건 젖꼭지잖아요. 아이고 우리 타샤 얼마나 아팠을까. 아빠가 젖꼭지를 파내다니. 상처만 내고.”  낭패. 의사한테 창피하고 타샤한테 미안하고 나의 무식이 한심하고. “잘 오셨네요. 밤새 타샤 젖꼭지 파낼 뻔했잖아요. 큰일 날 뻔했네.”


집에 오는 내내 타샤에게 사과하고 집에 오자마자 타샤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 마구 주고 또 빌고 빌었다. 사람 같으면 결코 날 용서하지 않았겠지만 타샤는 화도 안 내고 날 즉시 이해해준다. 이래서 사람보다 낫다니까. “타샤, 쏘리 베리 마치.”



#2.


우리 집 강아지들은 다 예쁘다. 하긴 코와 입이 삐뚤어진 자식도 예뻐 보이는 게 부모이긴 하지만. 온몸이 까만 왕실견의 후예 타샤는 지극히 우아하고, 지금은 돌아가신 두리는 작고 솜뭉치 인형처럼 귀엽다. 매일 아이들을 산책시키다 보니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 역시 강아지 산책을 시키다 만난 사람하고는 아무런 경계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몇 살이냐는 둥, 귀엽다는 둥, 우리 애가 겁이 많다는 둥. 짐승을 사랑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이 없다더니 정말 그렇다. 초면에도 친구가 되고 서로 좋은 얘기 해주고 정겹게 인사하고 헤어진다.


늙은 시추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 있다. 젊은 여인의 나이를 가름할 수는 없지만 대략 마흔 후반이나 혹은 쉰 초반. 그리고 예쁘다. 우리 애들을 만나면 꼭 무릎을 굽혀 쓰다듬어 주고는 말한다. “아이고, 이런 예쁜이들.” 한 번은 딸인듯한 소녀, 아니 숙녀와 같이 어딘가 가는 중에 만난 적이 있다. 여인은 늘 그렇듯이 우리 애들을 예쁜이들이라고 불렀고 쓰다듬어 준다. 그리고 딸한테 말한다. “애들 너무 귀엽고 예쁘지? 아빠하고 똑같지 않아?”


아니 이렇게 갑자기 훅 들어오면 어쩌란 말인가. 공연히 설레게 만들고 말이야. 늙은 남자보고 대 놓고 귀엽고 예쁘다고 말하면 반칙이오. 그날은 괜히 실실 웃음이 나오고 잠시 행복했다.



#3.


분리수거. 빈 병들을 투병 비닐에 넣어 내놓으면, 누군가 꼭 비닐을 찢어놓는다. 화가 났고 할 수 없이 더 큰 비닐에 다시 병들을 찢어진 비닐 채 넣는다. 병을 내놓는 날이면 공연한 불안이 생겼다. 또 찢겼나.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소주병과 맥주병은 100원을 주는가 보다. 그러나, 나는 주로 와인과 가끔 위스키를 마셨으니 이것들은 돈이 안된다. 그러나 병을 줍는 동네 할머니들은, 그들이 할머니라는 건 안다, 내 또래 할아버지들은 주로 종이박스와 폐지를 모은다, 비닐 안에 돈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 무조건 비닐을 찢는다. 그리곤 그냥 간다. 그럼 나는 다시 새로운 비닐봉지를 가져다 그 돈 안 되는 와인 병들을 담고, 그럼 그 할머니는 또 찢고, 그럼 나는 또.


돈 되는 병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후, 간혹 소주나 맥주, 그리고 청하 같은 것들을 먹게 되면, 병에 리사이클 표시와 100원이 쓰여 있으니까, 그 들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따로 잘 놓아둔다. '이것들 가져가시고 제발 비닐은 찢지 마세요. 비닐봉지 안에는 돈 되는 병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비닐은 또 찢겨있다.


동네 친한 할머니들 중에 88살 부대장을 만났다. 그 할머니는 동네 모든 쓰레기들을 치우고 함부로 버린 자들을 징계하는 깐깐한 동네 반장이다. 할머니하고 수다 떨던 그때, 그 문제의 할머니가 나타나서는, 연립주택 앞에 버려진 비닐을 또 찢는다. “저분. 저 할머니. 우리 집에서도 그럽니다. 아 정말.” 부대장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나도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만, 저 여자가, 어차피 시에서 청소하니까 상관없다나. 그래서 내가 그랬지. 너 그 따위로 사니까 평생 병이나 줍고 빌어먹고 사는 거지. 평생 그렇게 살아.” 아, 무서버라. 비닐 찢는 할머니는 밉고, 악담하는 내 친구 할머니는 무섭다.

작가의 이전글 누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