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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Oct 19. 2022

백 살 할머니에게 농락당하다

동네에 혼자 사시는 백 살 할머니 이야기를 몇 번 한 적이 있다. 똑똑하시고 옷을 감탄할 정도로 세련되게 입으시고 다행히 너무 건강하시다. 그리고 정이 간다. 할머니의 매력이다. 그 할머니가 웃을 일 없는 나를 웃기셨다. 지금 생각해도 또 웃음이 난다. 귀여운 백 살 할머니.


#1.

새벽에 산책을 시켰지만 오후가 되니 아이들이 나만 쳐다본다. 나가자는 강아지의 언어. 장모 치와와 형제인 둘째와 셋째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할머니를 만났다. 두 마리가?  셋입니다. 까만 애 많이 보셨잖아요. 집에 있습니다. 병이다. 병. 작은 병 아니다. 큰 병이다. 뭐 가족이죠. 가족? 지랄 허네. 나는 큰 병에 걸려서 지랄하면서 사는 거였다. 예순 중반의 노인에게 정겨운 욕지거리해주시는 백 살 할머니는 내 엄마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


#2.

날이 쌀쌀해서 못 나간다고 고집 피우는 내 엄마를 겨우 설득해 산책을 나가니 할머니가 저 멀리 벤치 앉아서 계속 이쪽을 쳐다보고 계신다. 가까이 가서 안녕하세요?라고 크게 인사를 드리니, 할머니가 물으신다.  “마누라가?” 이건 백 살 할머니의 KO 펀치.


#3.

할머니가 요양사와 함께 나오셔서 잠시 얘기를 나눴다. 할머니가 아들도 딸도 있는데 올 자식이 없다시던데요. 딸이 셋인데 막내딸은 자주 오고 큰 딸들은 장사를 해서 가끔 옵니다. 아들도 자주 오고요. 아니 할머니가 뻥을 치셨구나. 나는 완전히 속아 할머니가 가여웠고 자식들이 미웠는데 뻥이라니. 요양사가 웃으며 말한다. 할머니가 늘 그래요. 할머니, 자식들 자주 옵니까? 물으면 항상 똑 같이 대답하세요. 안 와. 안 와. 아무도 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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