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만 한 아우 없다

by 진주


올 설은 유난히 염려가 많았다.

언니는 명절만 돌아오면 틈틈이 식혜도 미리 해서 냉동실에 얼려 놓았다가 우리 집은 물론이고 설날 찾아오는 자녀들이나 친정 시집 조카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피 도라지도 미리 사서 껍질 벗기고 쌉쓸한 맛을 우려내려고 큰 양푼에 담가놓았다.

빼 짝 말라 서로 엉켜있는 고사리도 푹 삶아서 몇 번이고 헹구어 놓아 눈으로 보기만 해도 부들부들하니 큰 양푼 속에서 야들야들거리고 있었다.

봄에 미리 뜯어놓은 쑥도 냉동실에서 몇 덩어리 꺼내서 방앗간에서 인절미를 만들었다.

이렇게 설 준비를 미리미리 했던 언니가 지난해 12월 달에 무릎인공관절 수술과 허리 시술했다.

웬만하면 수술하지 않고 지내려고 했지만 한계에 부딪쳐서 결국 수술하고 한 달 동안 병원신세를 지다가 설 며칠 앞두고 퇴원했다.



그동안 언니에게 받아먹었던 세월이 있었는데 사랑의 빚을 갚아 드릴 때가 되었다.

그런데 ‘떡도 먹어 본 사람이 먹 는다’고 무슨 일이든지 늘 하던 사람이 더 잘한다 것을

이번 설에 더 깨닫게 되었다. 전 부치고 팔보채 준비해서 드리려고 했더니

형부께 전화가 와서 위, 아래층 식구가 함께 모여서 저녁 만찬을 즐기자고 한다.

내려가 보니 조카며느리와 조카딸, 둘이서 김치 찜, 잡채, 회, 불고기, 각가지 전, 나물 등 한상 가득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수술한 무릎에 보조기를 끼고 고통의 시간들을 재활에 힘쓰느라 무릎 꺾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언니가 살다 보니 명절에 물 한 방울 손끝에 튕기지 않고 지내게 되었다고 좋아하셨다




아무리 상대방이 아프다고 해도 내가 아닌 이상 아픔의 고통을 본인만큼 느끼지 못한다.

오죽하면 옛 말에 남의 큰 상처보다 내 손톱 밑에 가시 박힌 것이 더 아프다고 하지 않던가? 언니가 아프다고 해도 내 코가 석자가 되다 보니 돌아오는 설이 염려가 되었었다.

그런데 조카들이 음식 장만해 온 덕분에 원님 덕에 나발 분 다고 언니 덕에 덩달아 우리 식구들도 젓가락을 부산하게 움직이며 배불리 먹었다.



그런데 왜 잘 먹고 왔어도 마음이 편치 않을까?

그동안 직장 다닌답시고 수시로 언니 도움을 많이 받고 살았다.

그런데 정작 몸이 불편할 때 제대로 동생노릇 못한 것이 마음이 걸려 먹었던 음식이 소화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형 만 한 아우 없다더니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이제 며칠 후면 보름이 다가오는데 미리 준비 좀 해볼까?

찹쌀 미리 씻어서 불린 후에 소쿠리에 건져 놓고, 팥도 넉넉하게 삶고, 밤도 깎고, 대추도 저민 후에 팥물로 물들여서 찌면 되지 않을까? 언니를 스승 삼아 한번 도전해 보리라

시래기나물, 건 토란대 나물, 호박 나물, 고사리나물, 등 조선 장으로 간 맞추고 프라이팬에 식용유 넣고 덕은 다음, 불린 쌀 믹서기에 갈고 들깨 가루 넣어서 걸쭉한 국물이 자작 자작하게 끓여내 보자.


# 보름 # 고사리 # 찰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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