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은 연극배우이자 예술강사이다.
겨울방학이 되자 백수가 될 뻔했지만 다행히 사촌 형이 경영하는 사업장에 일이 많아서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 하고 있다.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결혼한 지 40년 만에 손녀를 품에 안게 되었다. 이제 머지않아 카톡 대문 사진에 손녀 사진이 도배를 하리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지금 며느리는 임신 4개월 차인데 입덧도 하지 않고 평상시와 같이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 가끔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고 휴일에도 성격상 누워 본 적이 없는 며느리가 가끔 눕기도 하는데 임신 중에 일어난 입덧이라면 예쁜 입덧을 하고 있다.
아들은 가장이 되었고 이제 아이가 곧 태어나게 되니 어깨가 무거워졌다.
올 겨울은 연극 무대도 올리지 못하고 동료들이 하는 연극만 관람하고 투 잡을 뛰고 있다.
남편은 힘든 일을 해도 너무나 당연하다 여기면서도 아들이 투 잡 한다는 소리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저녁에 토막잠을 자고 인근 아파트에서 세차를 하고 있다는데 가장의 책임은 무섭긴 하나보다.
짠한 생각에 밤 잠을 설쳤다.
그런데 옛날에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엘리트부부가 주식투자로 망했다. 당장 먹고 살길이 망막해서 새벽 조간신문 돌리기를 했다고 한다. 엘리트 남편이 새벽마다 찬 공기를 가르며 집집마다 신문 배달한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나왔다고 한다. 옛날에는 기름 냄새가 채 가시지 않는 신문을
현관 투입구에서 가져와 편하게 보았는데 입장이 거꾸로 된 것이다.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남편이 새벽마다 나가는 모습이 너무 짠해요 했더니 신체 건강한 사람이 새벽에 일어나서 신문 돌리는 게 뭐가 불쌍하냐고 호통을 치셨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고 너무 섭섭해서 제대로 하소연도 못하고 전화 끊었다.
그런데 가만가만 생각해 보니 남편보다 자기 처지가 불쌍해서 자기 연민으로 눈물 흘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생활이 힘들어도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면 땅을 파자니 육신이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낮이 부끄럽다 생각하며 집안에서 웅크리게 된다.
그래도 우리 아들이 건강한 신체와 정신으로 가장의 역할을 감당하고 가니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역시 애잔한 게 에미 마음인가 보다.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저희 부부를 도시로 분가시키고 난 후 거의 매일 전화해서 “아비 아침밥 멕여 보냈냐”가 인사였다.
그 말씀 들을 때마다 기분이 나빴다.
아니 아무리 일을 못 해도 밥도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 넷 중에서 막내로 일도 못하고 행동이 굼떠서 성질이 급한 시어머니께서 같이 사는 동안 속으로 애를 많이 태우셨다.
형님들은 알아서 일을 척 척 잘하는데 저는 시키는 일만 하고 행동까지 느렸다.
덜 떨어진 며느리가 살림을 나갔으니 얼마나 마음이 졸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화 올 때마다 어머니께서 그동안 가르쳐 주신 대로 아침밥 준비해서 애비 든든하게 먹고 출근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 해드리면 좋았으련만 네! 아침 먹고 출근했어요 성의 없이 대답한 후 모든 일에 참견한다고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그런데 요즘 내가 아들에게 가끔 너 밥 잘 먹고 다니냐? 물어보게 된다.
엄마! 걱정 마세요 어머니 며느리께서 밥 잘 챙겨줍니다. 하며 식탁에 차려진 밥상 사진을 카톡으로 보낸다. 속으로 실실 웃으며 나도 별수 없네 “시어머니 되고 보니” 이제야 우리 시어머니 마음을 알게 된다.
옛날에 우리 부모님들은 배고픈 시절을 보냈기에 밥이 인사였다. 우리 어머니께서도 까칠한 저에게 전화기 너머로 소통하는 첫 문이 밥으로 안부 묻고 다른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형님들보다 일 못한 며느리라는 피해의식으로 왜곡되게 듣고 나를 어머니께서 폄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들었으면 좋으련만 내 생각 속에 갇혀서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했다. 어쩌면 지금도 나는 어느 부분에서는
내 생각에 갇혀 왜곡된 부분이 있지 않을까?
며느리가 입덧도 안 하고 잘 먹고 잘 잔다는 말에 뱃속에 딸이 태어나기도 전에 효녀구나 맞장구쳤는데 어쩌면 시어머니 앞이라 사실대로 표현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요즘 갑자기 날씨가 추워서 며느리가 감기가 들었다. 임신 중이라 약도 먹지 못하고 막힌 코를 힘들게 훌쩍이고 있었다.
갑자기 아들도 일이 힘드는데 며느리까지 아파서 제대로 밥을 못 먹고 다니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들은 오히려 어머니 며느리께서 투 잡 뛴다고 더 잘 섬겨주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좋고 편한 시어머니가 되려고 하지만 사건이 올 때마다 역시 시어머니는 시어머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들 입장만 생각하기 전에 객관성 있게 아들, 며느리를 대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늘 이렇게 팔은 안으로 굽는 나 자신을 본다.
가난한 연극배우에게 시집오겠다고 결정한 며느리만 생각하면 항상 고맙다.
그런데 또 손녀까지 안겨주게 되었으니 정말 나는 복 받은 시어머니다.
힘들 때 서로 섬겨주며 살아가는 아들 부부 사진 보며 오늘도 기도드린다.
우리 집에 좋은 며느리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하루속히 감기도 뚝 떨어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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