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싹을 틔우고 자랐는지 새 또랑 밭에는 감잣대가 굵어 있었고 푸른빛을 띤 잎 사이사이에 하얀 나비가 줄지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웬 나비일까? 가까이 가서 보니 감자꽃이 피었던 것이다.
우윳빛처럼 부드러운 하얀 꽃잎 속에 노란 꽃씨가 매혹적이었다.
다른 농작물들은 꽃이 피면 열매가 맺히는데, 그 예쁜 감자 꽃은 감자 열매로 보내는 영양분을 빼앗아서 미리 따주어야 한다. 감자 꽃을 따느라 모처럼 새 또랑 밭에서 햇볕과 같이 놀았다.
한쪽에 심어놓은 푸른 보리도 어느새 누렇게 익어가고 가시는 빳빳하게 서 있었다.
옛날에는 해가 바뀌면 그 지역 국회의원 사진이 박힌 달력을 이른 아침 반장이 방문해서 나누어 주었다. 달력에는 빼꼼히 농사 일지가 쓰였던 기억이 난다.
생일만 돌아오면 국회의원 얼굴이 한가운데 박혀있는 달력에 한 달 전부터 빨간 크레파스로 표시를 해두었다. 바쁜 농번기 철이라 시장 갈 수 없으니 필요할 때 요긴하게 사용하려고 사다 놓은 마른 명태가 늘 생일 반찬이었다. 내 등살에 저녁밥상 다 치우시고 도장에서 마른 명태 두어 마리 꺼내서 누룽지가 달라붙은 무쇠 밥솥에 물을 붓고 마른 명태를 불렸다.
그 이튿날 장작개비보다 더 뻣뻣했던 명태가 퉁퉁 불어 부들부들해졌다.
툼벙 툼벙 썬 감자 깔고 방망이로 자근 자근 두들겨서 넓적하게 만든 명태 위에 양념장을 끼얹어 찜으로 생일 반찬을 했다.
바쁜 오뉴월에는 부지깽이도 한몫을 할 때이다. 애똥 밭에 매어둔 염소는 아재들도 모내기 논 고르느라 바빠서 해가 넘어가도 풀어 올 사람이 없었다. 어둑어둑해진 애똥 밭 언덕배기에 매여있던 흰 염소가 나를 반기며 매에 매에 ~~ 목을 매며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