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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 나도 안다

바쁜 모내기 철 생일상을 차려준 울 엄마가 보고 잡다!

by 진주

어느 해 처음으로 감자꽃을 보았다.

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이월 말이나 삼월 초에 미리 만들어둔 고랑에 감자씨를 묻었다.

어느새 싹을 틔우고 자랐는지 새 또랑 밭에는 감잣대가 굵어 있었고 푸른빛을 띤 잎 사이사이에 하얀 나비가 줄지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웬 나비일까? 가까이 가서 보니 감자꽃이 피었던 것이다.

우윳빛처럼 부드러운 하얀 꽃잎 속에 노란 꽃씨가 매혹적이었다.

다른 농작물들은 꽃이 피면 열매가 맺히는데, 그 예쁜 감자 꽃은 감자 열매로 보내는 영양분을 빼앗아서 미리 따주어야 한다. 감자 꽃을 따느라 모처럼 새 또랑 밭에서 햇볕과 같이 놀았다.

한쪽에 심어놓은 푸른 보리도 어느새 누렇게 익어가고 가시는 빳빳하게 서 있었다.




옛날에는 해가 바뀌면 그 지역 국회의원 사진이 박힌 달력을 이른 아침 반장이 방문해서 나누어 주었다. 달력에는 빼꼼히 농사 일지가 쓰였던 기억이 난다.

생일만 돌아오면 국회의원 얼굴이 한가운데 박혀있는 달력에 한 달 전부터 빨간 크레파스로 표시를 해두었다. 바쁜 농번기 철이라 시장 갈 수 없으니 필요할 때 요긴하게 사용하려고 사다 놓은 마른 명태가 늘 생일 반찬이었다. 내 등살에 저녁밥상 다 치우시고 도장에서 마른 명태 두어 마리 꺼내서 누룽지가 달라붙은 무쇠 밥솥에 물을 붓고 마른 명태를 불렸다.

그 이튿날 장작개비보다 더 뻣뻣했던 명태가 퉁퉁 불어 부들부들해졌다.

툼벙 툼벙 썬 감자 깔고 방망이로 자근 자근 두들겨서 넓적하게 만든 명태 위에 양념장을 끼얹어 찜으로 생일 반찬을 했다.




바쁜 오뉴월에는 부지깽이도 한몫을 할 때이다. 애똥 밭에 매어둔 염소는 아재들도 모내기 논 고르느라 바빠서 해가 넘어가도 풀어 올 사람이 없었다. 어둑어둑해진 애똥 밭 언덕배기에 매여있던 흰 염소가 나를 반기며 매에 매에 ~~ 목을 매며 울었다.

얼굴을 끌어안고 혼자서 무서웠재 나랑 같이 가자이 하고 끈을 풀었다.

풀자마자 쏜살같이 달려간 염소를 붙들려고 뛰어가다 그만 고무신이 쭉 미끄러져 고랑에 빠져버렸다.




볍씨를 물에 담그고 싹을 틔우더니 미리 만들어 놓은 모판에 볍씨를 뿌렸다.

못자리 논, 언덕에는 진달래가 지고 진한 분홍빛을 띤 요염하기 그지없는 개꽃이 피어 있었다.

그 모가 자라서 드디어 모내기를 한다고 한다. 모내기할 때쯤 새 또랑 밭으로 감자를 캐러 갔다.

호미로 살살 긁다가 감잣대를 쑥 뽑으면 줄기에 주렁주렁 달려 나온 감자알과 함께 뒤로 벌렁 나자빠져 흙세례를 받았다. 감자를 확독에 넣고 몇 번 굴리면 껍질이 쉽게 벗겨졌다.




지난 장에 사 온 갈치와 함께 감자 넣고 지졌다. 부드럽고 혀 끝에 살살 감기는 갈치 맛과 짠맛이 베어 들어간 포슬포슬한 감자맛도 혀끝에서 녹았다.

모내기 철 엄마는 부뚜막에서 밥 한술 뜨시다가 그마저도 집에서 기르던 메리에게 빼앗겼다. 모내기하는 날은 잔칫날처럼 음식도 푸짐하고 넉넉했다.

괜스레 그날 밤은 명절이 돌아오는 것처럼 잠도 오지 않았다.


어버이날이다

닳아진 놋숟가락으로 누룽지 닥닥 긁어서

공 굴리듯 뭉쳐두었다가 내 손에 쥐어주던

울 엄마가 보고 싶다.

대식구로 살던 시절 생일날 미리 동그라미 치고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 나에게" 안다 나도 안다" 하시며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셨던 엄마!


그런데 정작 결혼하고 사업이 힘들어지자 엄마 생신도 어버이날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살아생전 못다 한 효도 때문에 화려한 비석을 세우듯 천국 가신 어머니를 뒤늦게야 치장을 하고 있다.

살아생전에 좀 잘할 것이지 ~~


# 어버이날 # 감자꽃 # 나비 # 효도 #생일상 # 누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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