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유난히 빨갛게 피어있는 장미꽃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화분을 사고 난 뒤 내년에도 꽃이 필까요? 물었더니 꽃 집 사장님께서 뻔한 대답으로 잘 관리하면 피겠지요 했다. 육천 원을 주고 샀던 장미가 피고 지며 잎도 무성하게 자라났다.
초겨울이 되자 창밖에 두었던 꽃나무들은 거실로 옮겨왔다.
그런데 가시가 있는 장미는 사과 박스에 들어있는 그물망 스티로폼으로 싸서 창밖에 그대로 두었다.
창문 열 때마다 마른 잎 몇 개가 떨어지지 않고 팔랑거릴 때마다 거슬렸다.
보기 민망해서 잘 보이지 않는 쪽으로 밀어 놓았다.
그런데 봄이 되니 세상에나 잎이 돋고 있었다. 5월은 장미의 계절이라 했던가 집집마다 담 장 너머로 붉은 덩굴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우리 집 창밖에도 겸손한 화분이지만 작년에 피었던 채송화, 맨드라미, 민들레, 봉숭아, 돌나물, 풀꽃까지 저절로 씨가 떨어져 돋아나고 있었다. 자연이 주는 조화 속에 생명이 커가는 경이로움을 아침마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한쪽에 밀어 놓았던 장미가 언제 꽃망울이 맺혔는지 꽃이 피어 있었다.
지난겨울 푸대접을 받았지만. 원망도 없이 활짝 피어서 웃고 있었다.
다시 창문만 열면 보이는 곳으로 장미를 옮겨놓고 간사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도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눈송이를 온몸으로 안고 품어낸 장미! 앙상한 줄기에 마른 잎을 매달고 매서운 바람도 견디어 낸 장미라 더 귀하게 느껴졌다.
나는 현재 보이는 것만 좋아한다.
때가 되면 꽃을 활짝 피우는데
잎을 다 쏟아내고 벌거벗은 나목으로 서있는 겨울을 외면할 때가 있다.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
매서운 바람만 부는 황량한 겨울 들판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 사계절을 준비하는 새싹들이 있다. 싹이 트고 꽃 진 자리에 잎이 나고 열매가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