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움직이기 싫어서 창밖만 바라보시며 앞치마를 입고 있는 저에게 날씨가 좋아요? 하고 물어보셨다.
네 햇빛이 너무 좋아요 오늘 밖에 좀 나가보실까요? 했더니 싫다고 하신다.
며느님께서 옥상에 심어 놓은 부추, 방울토마토, 상추 심어서 잘 자라고 있었다.
가끔 부추와 상추 뜯어와서 반찬을 해드렸다.
옥상 채소가 또 얼마나 자랐는지 구경 한번 가실래요? 했더니 한참 망설이다가 올라가 보자고 하셨다. 밖 같 공기를 쐬고 옥상 몇 바퀴 돌고 오시더니 우울증이 잠시 해소된 것 같았다. 이때다 싶어 어르신 오늘 병원 가셔서 물리치료 받을까요?
겨울 내내 미루시더니 그럼 가볼까요 하셨다.
보통 사람들은 항상 걸어 다니는 길이지만 몇 달 만에 외출하신 어르신께서는 기분이 한결 좋아지셨다. 사람 다니는 것 만 바도 우울증이 사라졌다고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결단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시작한 일이면 끝을 보고 마는 뚝심 있는 분이시다.
항상 출근하면 벌써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태그만 찍고 바로 유모차를 꺼내서 계단 밑에 내려놓았다. 바퀴가 굴러가는 대로 따라가시니 93세 어르신께서 나보다 훨씬 걷기도 잘하신다. 귀가 안 들려서 차가 오는 것도 모르고 직진 하려고 해서 애를 먹는 날도 있다.협착증이 심해서 걷다가도 앉고 싶으실 정도로 아프실 거라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어르신은 별로 엄살을 잘 부리시지 않았다. 외국에서 사십여년 간 직장 생활
하셨던 분이시라 늘 계획적으로 생활하신다.
아침 빵 한 조각, 토마토 반 조각, 삶은 계란 하나, 커피 한잔 아침 메뉴이다.
점심은 정확하게 11시 30분에 드신다.
모든 국에는 항상 두부를 넣고 끓이신다. 닭 가슴살 야채 듬뿍 넣고 카레 조금 넣어서 만들어 드리면 냉장고에 미리 해서 넣어둔 밥하고 데워서 드신다. 오늘은 며느리가 옥상에서 가꾼 상추 몇 잎 넣고, 오이, 양파와 함께 샐러드를 만들었다.
올리브 오일, 소금, 매실진액, 식초, 후추 넣고 버무려 드렸더니 건강한 음식이라며 좋아하셨다.
양배추, 무 넣고 물김치 담그는데 지료받고 오자 시간이 부족했다. 확실하신 분이라 정확한 시간 일하고 마치는걸 좋아하신 다.
시간 보시더니 짜증 내셨다.
어르신! 오늘 물김치 담그고 늦게 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며 등을 쓰다듬어 들었더니 안심하셨다. 태그 미리 찍고 난 후 양파, 마늘, 빨간 고추 믹서기에 갈고 멸치젓, 파, 소금, 매실 넣고 물김치 담궜다.
미안해하시면서도 제시간에 일 마치지 못한 것에 때문에 짜증 내셨다.
잘해드리고 싶다가도 이런 행동을 하실 때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오히려 어르신을 달래야 하는 마음이 들어 언짢았다.
미안해하시는 어르신께 일을 다 마치고 난 후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 있는 일인데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말도 이쁘게 한다고 고마워하셨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뿌듯하면서도 앞으로 병원치료를 받는 동안 시간이 계속 오버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었다.
매사에 좋은 게 좋다는 생각으로 손해 보면 되지 뭘~하는 마음이 있다. 갈등구조가 싫고 맺고 끊음이 분명치 않는 것 때문에 늘 내가 너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