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말로 그런 세상이 어디가 있다냐?

by 진주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식사 할 때였다.

셋째 오빠가 미국은 현재 어떻게 농사짓는지 신나게 이야기했다.

콤바인, 트랙터, 경운기로 모내기하고 가을에는 트랙터가 나락도 베고 방아까지 찧는다고 했다. 그리고 집집마다 자가용도 다 있다고 하자 할머니께서는 "그런 세상이 참말로 어디가 있다냐" 하셨다.




학예회 연습 마치고 어둑어둑 해질 때쯤 교문을 나섰다.

방죽을 지나 명산에 다다를 때쯤 해는 저 너머 산속으로 숨어버렸다. 제법 캄캄한 길을 친구들과 함께 빈 도시락에 든 숟가락 소리에 발맞추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태어나서 처음 본 밝은 불덩이가 꺾어진 고갯마루에서 우리를 향해 점점 밝은 빛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호랑이 눈에서 나온 불빛일까?

옛날 호랑이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란 우리들은 겁에 질렸다.

그런데 점점 다가오는 불빛의 정체는 처음으로 보았던 "경운기"였다.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았던 때라 촛불만 켜도 밝아서 환호성을 지르던 때였다. 그런데 경운기에서 나온 불빛은 정말 그때 당시 어마 어마했다. 통통통 소리 내며 밝은 불빛으로 달려온 경운기 이야기로 저녁 내내 호들갑을 떨었다.

"머세' 사는 부잣집에서 우리 면에서는 처음으로 경운기를 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려 시대부터 모내기를 했다고 한다. 우리가 자랄 때 모내기 하려면 지게, 리어카, 소 구르마, 못줄, 서로 품앗이로 동원된 우리 이웃들이었다.

집 앞 못자리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모 판에서 '모'를 뽑은 후 흙을 대강 씻어냈다.

한 움끔씩 묶어 놓으면, 아저씨들은 미리 써레질한 논에 군데군데 던져 놓았다.

못줄 잡아주는 것도 큰일이었다. '주~울' 소리치면 저쪽에서도 '주~울' 받아치며 못줄 뗄 때마다 물이 찰랑찰랑한 논에는 연한 푸른빛으로 ' 수'를 놓았다.



한편 집에서는 점심 준비로 분주했다

바쁜 철에는 끼니때가 아니면 굳게 닫혀 있는 정제문이 모처럼 활짝 열리고 아궁이에서 불길이 꺼지지 않았다. 콩 볶아서 콩장도 미리 만들고 미역도 넉넉히 물에 담가서 불려 놓았다. 굵은 멸치도 다듬어서 적사에 놓고 가리 불 꺼내서 슬쩍슬쩍 구워서 풋고추, 간장, 물, 마늘, 고춧가루 넣고 자글자글 끓이다가 참기름으로 마무리했다.

김치도 담그고 깨를 갈아 넣은 감잣국도 끓여놓았다. 오이, 호박, 가지는 빠질 수 없는 채소 반찬이었다

감자 넣고 자글자글 끓여 낸 갈치조림은 모내기철 제일 맛있는 반찬이었다. 애호박, 양파, 파, 고춧가루, 돼지고기 넣고 바글글 끓인 찌개는 새참 술국이었다.



모내기하는 날 잔칫날처럼 모든 게 푸짐했다. 이웃 할머니들도 초청해서 점심 밥상 차려 드리고 논으로 가져갈 못을 챙겼다.

리어카에 실은 요즘 말로 밥차가 오면 모내기를 멈추고 논고랑에 흐르는 물에 손과 발을 씻었다. 장딴지에 붙은 거머리도 떼어내서 땅에 내동댕이쳤다. 모내기하는 날 지나가는 이웃, 우체부 아저씨, 면사무소 직원들 까지 불러서 밥을 먹었다.

학교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점심때가 되어 들판에서 밥을 먹게 되면 최고로 수지맞은 날이었다.

물이 찰랑찰랑 한 논에 점심때가 되어 조용하자 개구리가 폴짝 뛰어들었다.

물속에 한동안 축 늘어져 자태를 뽐내다가 뒷발을 차더니 쭉쭉 뻗은 몸매로 물살을 가르며 헤엄쳐갔다. 해가 어둑어둑할 때쯤 모내기가 끝났다.



힘센 장정 아저씨는 “천하지대본” 깃대를 배 위에 올렸다. 새참 드셨던 빈 냄비에 숟가락 장단 맞추고 모내기 끝낸 아저씨들이 춤추며 마을 어귀로 들어섰다. 이들도 신이 나서 뒤를 따르고 기분 좋게 술 취한 아저씨들의 노랫소리가 작은 산동네에 울러 퍼졌다.

새벽부터 일어나 모내기하느라 고단한 몸을 놀이로 승화시킨 것이다.




"참말로 그런 세상이 어디 있다냐" 하셨는데 우리나라도 기계로 농사짓는 세상이 된 지 벌써 오래되었다.

지난 주일 예배 드리고 딸 덕분에 양평을 다녀왔다.

비가 내렸지만 푸르름이 선명해서 더 아름다웠다. 몇 년 만에 푸른 밀밭을 보니 반가웠다.

비가 와서 개천마다 물이 제법 큰 소리로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더 반가운 건 모내기 갓 마친 논에서 여린 모가 줄지어 서 있었다.

옆 논 물꼬에서 흘러내린 물은 또 다른 논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옆에는 묘한 조화로 주차장이 넓은 카페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불과 몇십 년 만에 집집마다 차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요즘 로버트가 각종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는 자가용만큼이나 각 가정에 인간 로버트가 필수품으로 차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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