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떨고 있어요

하루하루 잘 살아요

by 진주


고질적인 허리병 전방전위증과 협착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다.

무릎 꿇고 엉덩이로 허리를 바치면 편안했다.

그 자세로 큐티한 다음 정리하고 일어서는데 다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고 걸을 때마다 통증이 시작되었다.

겨우 직장출근 했지만 버스 올라타는 일도 쉽지 않았다.

종일 다리 절면서 다니자 지나가는 학생들이 실장님 다리 쥐 났어요?

제법 관심 있는 학생들은 안부를 묻고 지나갔다. 미련하게 하룻밤 지나고 나면 괜찮겠지 했는데 여전히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출근하기 전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제 설명을 듣더니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서 MRI 촬영을 해야 한단다.

결과는 얇은 막으로 되어 있는 연골이 금이 갔고 절대 붙지 않으니 수술해야 된다고 하셨다.

그날은 결과 듣고 물리치료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려서 할 수 없이 처음으로 결근했다.




어느새 인생의 중요한 시기였던 삼십 대 후반부터 육십 대 초반까지 학생들과 생활하며 지냈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시험 네 번만 치르면 한 해가 훌쩍 지나갔고 결국 허리, 다리도 고장 난 채 더 이상 직장 근무가 힘들어지게 되었다.

사실 눈도 많이 나빠지고 학생들 학원비, 교재비 등이 잘 보이지 않아 실수가 잦아진 터였다. 하루 종일 돋보기로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으니 목까지 디스크가 왔던 터이다. 학부모님과 학생 상담, 원비, 교재비등 자질구레한 일들이 너무 많았지만 자라난 꿈나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러나 결국 63세 되던 해 정들었던 아이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근무하는 동안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내 자리 앞에 와서 숙제, 단어등을 암기했다. 그래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차츰 친구도 사귀고 적응하면서 내 앞자리를

떠났다.

지나치게 말썽을 부린 학생들도 시험기간 동안 교실에서 내 앞으로 쫓겨왔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보다 말썽 부리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가끔 떡볶이도 사주고 그들 입장에서 대화하고 들어주려고 했다.

그랬더니 벌써 군 입대 하는 놈들 중에 퇴직한 지 몇 년이 흘렀는데 꼭 생일 때만 되면 연락하는 학생들도 있다.

말썽쟁이였는데 어느새 철이 들어 어른스러운 이야기도 하고 내 건강도 묻는다.

그러나 버릇없는 학생들은 물어보는 말도 무시하는 경우도 많았다.




연골에 금이 가자 퇴직하고 난 뒤 십 분도 걸을 수가 없어서 서글펐다.

남편과 바닷가 여행을 왔는데 낮은 비행으로 푸른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떼로 마음이 설레었다. 차에 내려서 해안도로를 남편과 함께 오랜만에 걸었지만 십분 이상 걷지 못했다. 수술을 해야 할까? 서울대학교 병원에 찾아갔더니 아직 수술할 단계는 아니니 약 한 달 분 먹고 다시 오라고 했다.

다행히 지금은 한 시간 이상 거뜬히 걷고 있지만 조금만 무리하면 역시 예전 갖지 않아 항상 조심하고 있다.




지난해 딸이 다니는 직장에서 건강검진이 있으니 남편과 함께 진료를 받아보라고 했다. 작년 11월 말 건강검진 하고 몇 주 후에 검진결과를 우편물로 받았다.

내 나이보다 팔 년이나 젊게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허리, 다리는 아파도 내가 알지 못한 내장기관이나 혈관은 좋은 모양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다가 하루 날 잡아서 자세히 결과지를 보았더니 백혈구 쪽에 문제가 있으니 다시 추가검사를 받으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단어로

백혈구 중 단핵구가 상대적으로 높고 호중구 감소증 범위에 있다고 한다.

21년에도 백혈수 수치가 낫다고 했는데도 별 이상이 없으니 더 이상 추가 진료를 하지 않았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을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백혈병에 관한 것들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부랴 부랴 대학 병원 진료 절차를 받고 드디어 건강검진 기록지를 가지고 방문했다. 헉 ~ “혈액 암 내과”라는 무시무시한 팻말이 보이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의사 선생님은 지긋한 연세에 흰머리가 나 있었지만 인상이 좋아 보였다. 나에게 일상적인 일과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살이 빠졌느냐는 질문에 작년 3월 코로나 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6월 달에 맹장염 수술하고 난 뒤 집에서 빈둥거리고 놀다 보니 살이 많이 쪘다고 했다.

요즘 치매 5급 어르신과 함께 한 시간씩 걷고 있는데 하루 만보 이상 걷는 중이라고 했더니 꾸준히 운동하란다. 걷기 하면 숨이 차지 않느냐고 하시길래 별로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원래 무기력증이 있었는데 아침에 일을 하게 되니 훨씬 나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의사 선생님께서 나의 하루 일과를 듣더니 나이롱환자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웃으셨다.

그러나 혈액 암 내과라는 팻말을 가르치며 무섭지 않으냐 관리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조심해야 한다 일주일 후 방문하지 않고 결과는 전화상담 하시겠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으니 전화로 결과를 가르쳐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면역기능이 저하되었으니 내원하지 말라는 게 아닌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간호사 말로는 코로나 시기에 일시적으로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주일 기다리는 동안 일 하다가도 문득 생각나면 두려웠다.

그리고 시간 나면 인터넷을 열고 자판기를 두들기며 유사 병명이 무엇인지 찾아보며 두려움을 한껏 올리기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사실 알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일하고 있는 데 병원 전화번호가 울렸다. 떨리는 마음으로 통화음을 눌렀다. 다행히 수치는 좋아졌는데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한다. 혹시 암은 아니냐고 물었더니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애매모호한 말씀을 하시고 한 달 후에 다시 피검사 후 살펴보잔다.

선생님을 자주 뵙지 않은 게 훨씬 좋은 것이네요 했더니 맞다고 하신다. 특별히 복용할 영양제도 없고 일상생활 잘하면서 운동하고 살 빼라는 처방을 하셨다. 살은 허리, 다리가 아파서 병원 가도 체중 줄이라고 하는데 정말 살 빼기는 한없이 도전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다이어트 업계에서 은퇴했다는 우스개 소리로 지인들에게 요요로 돌아온 나의 체중을 개그 아닌 개그로 웃어넘겼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대장 내시경과 위 검사를 했다.

시작하기 전 술을 얼마나 마시느냐 묻는 말에 마시지 않아요 ~

원래 마시지 않았느냐

전에는 좀 마셨는데 이제는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처녀 때는 잘 마셨어요.

어느 정도나 마셨나요? 소주 두 병 정도요.

그리고 ~~~~ 추워서 일어나 보니 얇은 담요도 덮지 않은 채 누워있었다. 간호사 불러서 이불 달라고 했더니 담요를 덮어주었다. 다행히 장은 깨끗해서 용종 제거 하는 일이 없었다.

밖에 나와서 담요 두 장를 덮고 한참이나 쉬었다가 죽 한 그릇 먹고 귀가했다.




오는 길에 아는 집사님 시아버님께서 천국 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병원과는 멀지 않았다. 고령인지라 교회 나오시기도 힘들어서 집에서 세례 받으실 때 같이 심방해서 받으셨던 아버지셨다. 그동안 건강하셨는데 이주동안 식사를 잘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역시 노인들은 밥심으로 살아가신다더니 95세 일기로 잠자듯이 주님 품에 안기셨다고 하신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살아온 날들 보다 이제 살아갈 날이 더 가까워진 나이가 되었다.

하루하루 삶을 더 알차게 살아가기 위해서

유언장은 미리 준비할 때가 온 것 같다.

# 건강 검진 # 대장 내시경 # 호중구 # 단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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