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 삐비 뽑으러 가자

애똥 밭 양지바른 언덕배기 삐비는 누가 다 먹었을까

by 진주


간밤에 꽃눈이 내렸나 보다.

바람결에 휘날리는 하얀 꽃눈이 밀려난 자리에는 연두색 새 주둥이가 뾰쪽하게 고개를 내밀다가 처음 맞은 바람에 놀래 오므라 들었다.

이맘때면 애똥밭 양지바른 언덕에 삐비가 올라오고 있었다.

학교 마치고 집에 들어서면 마당에는 소여물에 넣을 독새풀 말라가는 풀내음이 진동했다.

삐득삐득 말라가는 풀섶을 헤치며 암탉은 얼마 전에 부화한 아기 병아리 떼를 데리고 마당을 헤집고 다녔다.

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봄나물 캐러 어서 나가세. 대충 기억하건대 이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 뛰기로 겨울을 보내고 우리들은 봄을 맞았다. 작년에 강남 갔던 제비가 처마밑에 집을 짓다가 마당 한 바퀴 낮게 돌며 우리들을 반기어주었다.

고모!

애똥밭으로 삐비 뽑으려 가자, 시간만 나면 고모랑 같이 작은 대바구니 옆에 끼고 집을 나섰다.

쑥꾸쟁이, 나숭개, 신나물, 달래 등을 캐며 삐비로 궁금한 입도 달랬다.

겨우내 먹었던 고구마도 동이 나고 이맘때가 되면 사실 우리가 자랄 때는 먹거리가 없었다.

찔구리, 삐비, 진달래 꽃, 쌀칡, 보리 칡 등을 찾느라 야산과, 들판을 뒤집고 다니며 우리들의 먹거리를 찾아 봄을 즐기며 놀았다.

삐비 껍데기를 벗기면 우유빛깔처럼 윤기 나는 하얀 속살이 나왔다. 냉큼 입에 넣으면 풀냄새의 상큼함과 달보드레한 맛이 긴 봄날에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다.

삐비 껍질 벗겨서 오물거리고 애똥밭 언덕배기에서 내려오면 진달래 꽃으로 붉게 물든 앞산 그림자는 우리 집 마당까지 내려와 있었다. 진분홍으로 불타는 앞산과 맞닿은 파란 하늘에 토끼, 강아지, 때로는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놓은 구름이 어느새 날아가는 새가 되어 있었다.

남학생들은 뒷동산에서 쌀 칡과 보리 칡을 캐서 가끔 나누어주곤 했다. 보리칡은 거칠고 질기며 쌉쌀함이 더 한 반면 쌀칡은 알이 톡톡 터지며 쌉쌀하면서도 단맛이 나고 걸쭉한 느낌이 씹을수록 입안에서 맴돌았다.




먹거리가 귀해서 먹었던 칡이나 삐비가 요즘 한방에서 훌륭한 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어린 시절 산천을 헤매고 다니며 먹었던 것들이 이제는 귀하신 몸들이 되었다.

봄만 되면 작으만한 대소쿠리 옆에 끼고 새 또랑, 애똥밭으로 나물 캐러 갔다.

이제는 애똥밭 언덕배기도 농로길을 넓히느라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해년마다 아버지 산소 가는 길에 애똥밭을

지나가지만 옛날정취는 온 데 간 데 없다.


그러나 기억 속의 봄날은 지금도

나랑 같이 숨 쉬고 있다.






# 고모 #쌀 칡# 보리칡 # 꽃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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