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뚜껑이 프라이팬이 되었다.
아침부터 분주했다.
어제저녁 씻어서 불린 찹쌀을 확독에 붓고 포독으로 득득 갈아서 풀을 쑤었다.
노그래 하니 끓인 찹쌀 풀에 조선장, 마늘 다진 것 참기름 넣고 간을 맞춘다.
부엌문 열고 혼자 말로 바람이 불면 안 될건디 하시며 연신 손을 내밀며 바람을 쟀다. 특별히 봄 철 큰 행사로 오일장에서 사 온 푸른 바닷 빛을 띤 자반과 김으로 부각을 부치는 날이다. 마당에 대나무로 된 평상을 펴고 묵은 먼지를 닦아냈다.
평상 닦은 행주를 빨 때마다 구정물에서 맑은 물이 되자 어지간히 됐다. "인자 자반 부칠 거 가지고 오니라 풀 쑨 것이 간이 너무 짜도 맛이 없고 싱거면 맨입에 묵어불면 헤프다" 적당하게 간해야 된다. 몇 번이고 이르고 다니셨다.
도마 위에 김 한 장 깔고 솔로 찹쌀풀 무쳐서 슬쩍슬쩍 바르고, 그 위에 다시 김 한 장을 올리고 또 찹쌀 풀을 발랐다. 풀이 마르기 전 잽싸게 깨를 세 줄로 점찍듯 뿌려주고 실고추도 살살 뿌려주었다. 한 장 한 장씩 찹쌀풀을 바르고 난 후에는 평상 위에 한 줄로 널어놓았다.
찹쌀풀 먹은 김은 후줄 후줄해서 구기지 않게 평상에 널 수 있는 것도 나름 노하우가 필요했다. 찹쌀 풀로 화장을 한 김은 볶은 깨와 실고추로 마무리 한 얼굴로 오월 햇살 아래서 썬텐을 하고 있었다.
가끔 씩 불어오는 실바람이 아카시아 향기까지 데리고 와서 꾸덕꾸덕 말라간 김부각에 향신료까지 뿌려주었다.
앞산에서는 뻐꾸기도 울었다.
바다 냄새와 아카시아 향기까지 어우러진 부각은 해질 무렵이 되면 가장자리는 바싹 말라 있었다.
그러나 듬성듬성 찹쌀풀이 하얗게 점찍어지듯 있었다. 다음 날 대나무 평상에 다시 한 장 한 장씩 펴 널었다. 오월 햇살은 눈이 부시다. 바삭 거리는 소리를 내며 햇볕에서 오그라 들고 있었다.
해질 무렵 낙엽처럼 바싹 마른 부각을 거둬서 빈 장독대 차곡차곡 담아 놓았다.
아무리 햇볕에 바싹 말랐어도 김부각이 시간이 지나면 눅눅해서 엉겨 붙는다.
점심밥 상 차리기 전 한 장 한 장 떼어서 햇볕에 달궈진 장독 뚜껑이 자연 프라이 팬이 되어 바삭바삭하게 구워서 내놓았다. 바삭해도 뒷 맛은 쫀득쫀득함이 남아 오래까지 바다냄새가 입안에 남았다.
밥맛 없을 때 찬물에 말아서 바삭바삭한 부각을 한 잎 떼어먹으면 저절로 밥이 넘어갔다. 햇살이 풀어지면 자주 장독대 위에 김부각을 꺼내 놓았다.
햇볕에 다시 바싹 마른 김부각으로 안주삼아 논, 밭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에게 막걸리와 함께 드렸다.
옛날에는 부각을 부치는 날 바람이 불면 한데 뭉치기도 하고 먼지까지 날아들어 불편한 게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실내에서 전기장판 위에 비닐 깔고 김부각을 편리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가 지나면 맛이 조금씩 변한다.
그러나 지금은 냉장고에 보관해서 사시사철 술안주나 주전부리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옛날에는 자연 햇빛에 말려서 먹었지만 지금은 기름에 튀겨서 먹으니 더 바삭거리고 튀김처럼 맛은 좋은데 먹고 나면 왠지 개운하지가 않다.
초 여름 햇볕에 달군 장독대에 말린 자연의 맛을 지금도 혀끝이 알고 있다. 나이 들수록 까다로운 입맛 때문에 가끔 자녀들에게 핀잔을 들을 때도 있다.
그때마다 옛날 어르신들 생각이 난다. 그분들도 우리 세대들과 입맛이 맞지 않아 가끔 잔소리할 때가 있었는데 벌써 그 어른의 자리에 와 있다.
봄이 되면 작년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한 씨를 받아 놓고 파종했다.
순이 나고 잎이 나불거리면 호미로 흙을 돋아주면 상추가 배추처럼 속이 차기 시작했다.
김부각이 입에 물리게 될 때쯤 새 또랑 밭에는
포기 상추가 배추처럼 속이 꽉 차있었다.
서 너 포기 뽑아다가 흐르는 냇물에 혹여 상처라도 날까 조심스럽게 흔든다.
" 앞집 경호엄마가 상추 참말로 연흐고 맛나게 생겼네 새 또랑밭이 뭐든지 맛나당께"
그 말 듣고 몇 줌 흔들어서 물기 빼자 비 오듯 물방울이 떨어졌다.
떨어진 물방울을 가리느라 수건을 덮어쓰며 어지간히 흔들어도 된디.
네 -점심때 쌈 싸서 맛있게 드셔요.
아이고 반찬이 어중간했는디 쌈 좋아흔디 맛나게 묵어야제 하시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점심때가 되면 들에서 소쿠리에 푸성귀 담아 오시는 분들이 많았다.
누구라도 만나면 의례히 나누어 먹었다.
막 가른 된장과 고추장 섞어서 참기름 넣고 숟가락으로 뒤적뒤적 막장을 만들었다. 상추쌈에 막장 넣고 볼이 터지도록 씰룩 거리며 입으로 밀어 넣었다. 대소쿠리도 우리랑 같이 보낸 시간이 많아서 테두리가 벌어져 꿰맸다. 제법 큰 소쿠리에 가득 담긴 상추가 밑바닥이 보일 때면 서로 이빨사이에 낀 상추 잎을 보면서 겸연쩍게 웃었다.
감자도 커가고 있었고 모내기할 때쯤에는 주먹보다 큰 감자가 넝쿨 째 줄줄이 따라 나왔다.
( 곡성지방에서만 자란다는 포기상추 붓을 해주면 배추포기처럼 속이 노랗게 꽉 찬다)
요즘에는 전라도 지방의 특산물이 된 김부각을 오일장이 되면 건어물 전에서 쌓아놓고 팔고 있다. 선물로 받은 김부각을 식용유에 튀겨서 자녀들과 나누어 먹었다.
밥상머리에서 다시 장독대 이야기를 하자 엄마! 그만하세요 지금은 시골에도 장독 뚜껑에 자반을 구워 먹은 집은 없습니다. 안다 이놈아! 나도 알아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리워서 말을 하는데 말도 못 하냐 말도 못 해 ~~
# 김부각 # 아카시아 # 뻐꾸기 # 장독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