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목요일은 목장예배 드리는 날이다. 소그룹으로 모여 지난주 들었던 설교말씀으로 한 주간의 삶을 나누고 있다. 각자 오래된 사연에 매여 나오지 못할 때는 말씀으로 잘 풀어서 해석하고 서로 격려해 준다. 그래서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작은 것 하나라도 적용하도록 함께 돕는 소그룹 예배이다. 지난주 몸이 아파 결석했던 집사님께서 간식으로 기정 떡을 사 왔다.쌀가루와 함께 막걸리로 발효해서 만든 기정 떡은 카스텔라처럼 부드럽고 팥 앙금까지 들어있었다. 다이어트 중임에도 맛있어서 다섯 개나 단숨에 먹어치웠다.
내가 국민학교 시절에는 각종 떡은 집에서 다 만들어 먹었다. 삼 일 전부터 쌀 씻어서 불린 다음 소금 넣고 간을 한 후 절구통에서 빻았다. 빻은 쌀가루를 다시 체에 치면 하얀 가루가 쏟아져 내리고 아직 덜 찧어진 쌀은 체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다시 절구통에 넣고 찧기를 반복했다. 고물도 여름에 수확해서 보관해 둔 동부나 팥을 삶았다. 동부로는 흰 앙금을 만들었고 쌀 방아와 마찬가지로 절구통에 넣고 찧기를 반복하며 체로 쳤다. 흰 베이지색 가루가 쏟아질 때마다 한 웅 큼씩 쥐어서 먹는 맛이 좋았다. 찰시루떡. 콩떡, 쑥떡, 호박고지 넣어서 만든 호박 시루떡, 무 시루떡 켜켜이 팥고물 넉넉하게 올렸다.
그리고 시루에 안치고 통장작불로 떡을 찌기 시작했다. 불린 찹쌀은 시루에 안쳐서 흰 찰밥을 했다. 확독에서 장정들이 떡메로 내려칠 때마다 찰기로 달라붙은 떡덩이가 따라붙었다. 한겨울에도 떡메로 떡 치기 하는 아저씨들 얼굴에는 땀이 줄줄 흘렀다.
잘 찌어진 찰떡은 마루에 안반을 피고 마른 콩고물 묻혀주면 인절미가 되었다.
제사 때는 주로 동부로 만든 흰 고물을 만들어서 켜켜이 올려주었다.
팥은 체에 치지 않고 대충 찧어서 생일 떡이나 잔치 때 고물로 만들어 사용했다.
여름이 돌아오는 계절 음력 6월 15일 유두라는 절기가 있었다.더위를 이기기 위해 가까운 친척들과 물맞이하는 놀이였다.
말 그대로 흐르는 물에 머리 감고 집에서 만든 빵이나 전을 부쳐서 간식으로 함께 먹고 즐겼다.유두가 돌아오면 밀가루에 막걸리 넣고 반죽해서 햇볕 잘 드는 장독대 위에 올려놓았다.시간이 지나면 발깍 거리며 동그랗게 기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삼베 보자기 깔고 반죽을 얇게 펴서 빵을 찌기 시작했다. 뒤 안에서 빵 찌는 냄새가 해질 때까지 진동했다. 기정 떡은 밀가루가 아닌 쌀로 만들었다. 주로 여름에 먹는 떡이라 술 빵과 같이 쌀가루에 막걸리 넣고 발발효되어 쉽게 상하지 않고 소화도 잘 되어서 누구나 좋아하는 여름 철 별미였다.
요즘 떡 방앗간에 기정떡 주문해도 비닐로 한 개씩 낱개로 포장되어 온다. 이틀 지나도 변하지 않고 부들부들하니 부드럽고 맛이 그대로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비닐이 흔하지 않았다. 미리 감나무 잎을 따서 씻은 다음 소쿠리에 차곡차곡 쟁여 놓고 떡을 찌기 시작했다. 물기를 대충 닦고 완성된 기정 떡을 감잎 위에 놓고 큰 대 바구니에 하나씩 놓았다.
켜켜이 쌓아도 서로 떡이 달라붙지 않았고, 싱그런 감잎의 향기가 기정 떡 먹을 때마다 입안에서 퍼졌다. 여름철 별미중에 으뜸이었다.
요즘 집에서 직접 떡 만드는 집은 없다.
더구나 기정 떡은 만들기 쉽지 않다.
발효된 시간 기다려야 하고 면포 깔고 반죽도 조금씩 부어서 쪄내야 하니 인내심이 필요한 떡이다. 반죽 얇게 붓고 여러 번 쪄내야 더 부풀고 부들부들 하니 부드럽게 쪄진다. 한 짐 나간 후에 또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랩으로 싸서 놓아야 한다. 어느 음식이든 먹기는 쉬워도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 전문적으로 기정 떡만 만드는 방앗간이 전라도 지방에 특히 많이 자리 잡고 있다.
목장 예배 드리는 중 간식으로 기정 떡 먹으면서 갑자기 생각났다. 우리 인생도 사노라면 갖가지 사건을 만나고 상처가 난다.
금방 해결된 아픔도 있지만 오랫동안 나도 모르게 쌓인 상처가 불쑥불쑥 나타나 상대방을 힘들게 한다. 성경에서 누룩은 죄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천국이 확장되는 과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마 16:6)
누룩은 적게 넣어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우리 인간 죄의 속성이 이와 같다는 의미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인용되었다. 나도 한때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었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남편과 숱한 갈등 속에 피해의식과 자기 연민으로 자녀들에게 아픔만 주었다. 그 상처가 아이들에게 누룩처럼 퍼져서 피투성이가 되어 살았다.
그러나 좋은 누룩이 우리 가정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 13:33)
불행한 결혼생활은 결국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훈련과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미워했던 남편도 나를 나 되게 하려고 수고했구나 생각하니 불쌍하게 보였다. 내가 경험했던 아픔이 남을 살리는 약재료가 된 것이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각자 좋은 누룩이 퍼져서 지난날 부모 때문에 힘들었던 사연을 잘 풀어서 가정이 작은 천국이 된 것이다.
결국 우리 목장도 주마다 모여서 사연 속에 갇힌 우리 자신을 직면하고 말씀으로 해석하며 조금씩 성장해 간다. 성장한 만큼 좋은 누룩이 퍼져서 가족들에게 화평한자가 되어 간다.
" 나에게 찾아온 고난은 또 다른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기 위해우리 각자에게 '전공 필수 과목'으로 주신 것이다." (김양재 목사님 어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