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기 전 옛날에는 집집마다 연례행사로 모기장 붙이는 일이었다.
보리도 거둬서 뜰방에 재어놓고 모내기도 끝마치고 난 후에는 집집마다 오일장이 되면 파란색으로 된 모기장을 사 왔다.
지난해 찬바람이 불기 전 여름에 붙였던 모기장을 뜯어내고 하얀 문종이를 발랐다.
대나무 잎을 문종이 속에 넣고 붙이면 하얀 여백에 무늬가 있어서 보기가 좋았다.
그러나 달이 뜨는 보름에는 하얀 문종이에 새겨진 대나무 잎사귀가 사람 손바닥처럼 비쳐서 놀래기도 했다.
제장 맞은 아이들이 그 문을 그대로 둘리가 없었다. 문구멍을 뚫어 놓기도 하고 대나무 잎사귀를 칼로 도려내기도 했다. 가을이 오기 전에 붙인 큰 방문은 여름이 오기 전까지 상처 투성이었다. 군데군데 구멍이 나서 덧대어놓은 문종이가 각설이 옷처럼 너덜너덜 새겨져 있었다. 문고리 바로 옆에는 손바닥만 한 유리를 부쳐놓고 안방에서 망원경처럼 바싹 붙어서 밖을 보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문 열고 드나드는 것이 빨랐다.
여름에는 유리가 필요 없이 훤히 비치는 모기장으로 마당에서 무엇을 하는지 다 볼 수 있었다.
이맘때쯤이면 뜰방에 쌓아놓은 보리를 퍼다가 가끔 복숭아, 살구, 자두를 사서 섬진강변으로 갔다. 흐르는 강물에 씻어서 한입씩 베어 먹고 씨는 강물에 힘껏 던지며 누가 가장 멀리 나갔는지 시합도 했다.
할머니께서는 큰 방문에 달려있는 손바닥만 한 유리로 밖을 잘 내다보셨다. 그런데 이제 방마다 모기장이 붙이게 되면, 모기를 지켜줘서 좋지만 우리를 감시하는 문이 더 넓어졌다. 가을이 오기 전에 유리는 조심스럽게 천에 싸서 보관해 두었다. 옛날 한옥은 방마다 문이 많아서 모기장 붙이는 일도 여간 큰일이 아니었다. 대나무 잎도 뜯어내고 풀기 묻는 창틀은 젖은 걸레로 닦아냈다.
문사이즈에 맞게 모기장을 재단한 후에 가위로 잘라서 앞 정으로 꼽거나 이불 꿰맨 바늘과 실로 문틀과 함께 듬성듬성 꿰매기도 했다. 시대 변천에 따라 합판으로 졸대를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 셋째 형님은 바느질 솜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다. 눈으로 보는 것은 무조건 다 만들었다. 커튼, 앞치마, 가방, 이불 웬만한 양장 옷까지 그 형님 손만 거치면 전문가 뺨치게 만들어냈다. 여름만 되면 형님께서 삼베조각에 밀가루 풀로 빳빳하게 먹인 쫄대가 짱짱하고 좋았다.
요즘에는 방충망이 잘 되어 있어서 모기장이 사실 필요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집집마다 유리창과 같이 붙어 있는 방충망이 훌륭한 모기장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집도 방충망이 군데군데 낡아서 구멍이 뽕뽕 나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에도 뚫어진 구멍으로 모기, 날 파리, 벌레들이 들어와서 불편함이 많았다.
올해는 꼭 여름이 오기 전에 방충망을 새로 하리라 마음먹었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차일피일 미루다 드디어 방충망 재료를 사 오게 되었다.
창문에 맞게 먼저 방충망을 재단하는데 애를 먹은 남편이 씩씩 거리며 주차장에서 올라왔다.
갑자기 거실 탁자에 물건을 치우더니 그 위에서 방충망을 창문보다 좀 더 넓게 잘랐다. 역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든 다음 일을 진행해야지 쉽게 대충 하려고 하니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깨끗이 씻어놓은 방충망 틀에 쫄대를 구멍에 넣고 롤로 문질러 주니 쉽게 완성이 되었다. 처음 하기 어려웠지 점점 속도가 빨라졌다. 방마다 다 완성하고 난 뒤 창틀에 끼워놓고 보니 방금 핀 채송화도 렌즈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남편은 방충망을 하고 난 뒤 작은 성취감이 생겼다. 언니랑 형부도 새집처럼 되었다고 칭찬하니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그 말이 맞다.
남편은 결혼할 때는 벽에 작은 못 하나 박지 못했다. 형광등이 나가도 새로 교체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매사에 똥손이라고 놀려대고 면박을 주었다.
사실 나도 청소, 집안 꾸미기, 정리정돈 등 잘하는 게 별로 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말처럼 내가 잘하지 못한 건 당연하게 여겼다. 칭찬에 인색하고 지적질만 잘하는 성격 탓에 자녀들에게도 인기가 별로 없다.
언니와 형부 칭찬에 남편은 우리 집만 아닌 형부 집까지 방충망 교체 작업에 나섰다.
나중 퇴직하고 나면 방충망으로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고 농담도 한다.
갑자기 우리 집에 요즘 고래 한 마리가 춤을 추며 다니고 있다.
# 방충망 # 칭찬 # 모기장 # 문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