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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개망초 꽃

by 진주

6.25 전쟁고아 소년이 어느 마을에 머물게 되었다. 러나 사소한 오해로 동네를 떠나면서 산천에 즐비하게 피어있는 개망초 꽃을 한 아름 꺾어 가슴에 품고 간다.

그런데 철로를다 그만 리를 헛디뎌 강물로 떨어지며 끝이 났던 6,25 전쟁을 다룬 드라마가 생각난다. 강물에 떨어진 그 소년은 사실 곱상한 소녀인데 남자처럼 살았던 것이다. 여자로 살기에는 너무 험한 세상이었으니 남자로 살지 않았을까?




개망초는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후 경의선을 세우려고 미국에서 목재를 가져올 때 따라 들어왔다. 전국 각지에 퍼진 개망초는 나라가 망할 때 들어온 꽃이라고 하여 망국초라고도 불렀다.

우리 마을은 산과 가까운 동네로 백여가구가 넘은 동네였다.

미처 북으로 넘어가지 못한 빨치산들이 지리산으로 모여들었다.

지리산과 가깝다 보니 밤이 되면 가끔 빨치산들이 내려와 가축과 곡식, 된장. 고추장. 옷가지 등을 가져갔다.

이 소식을 들은 경찰은 쫓아와서 빨치산과 내통했다고 총부리를 겨누다.

경찰서가 멀었던 탓에 낮에는 경찰관들 밥 해주고 저녁에는 빨치산 밥해 주었다.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경찰과 빨치산은 먹물이 들어간 사람들을 회유하기 바빴.




남의 집에 도둑처럼 들어와 생필품을 챙겨 갔다. 그때. 의외로 챙긴짐이 많을때 머슴들이 짐꾼이 되어 그들 일행과 산으로 갔다. 큰 아이들도 짐을 지울만하면 산으로 데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끌려가서 빨치산이 되었다.

이문열 씨의 "영웅시대"를 보면 주 무대였던 지리산, 구례, 곡성, 옥과 마을에서 짐꾼으로 따라갔다가 빨치산이 되었던 분들이 많이 나다.


우리 아버지는 부르주아라는 죄목으로 빨치산들에게 잡혀가 감옥 수감 중이었다.

전세가 급격히 기울게 되자 불을 지르고 빨치산들은 도망쳤다. 이때 근처 시민들이 곡괭이와 삽, 모든 연장을 들고 나와 감옥을 부수어서 살아서 나왔다. 소설 속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백세 되신 어머니께 밥상머리에서 매일 듣고 살았다.

그 감옥에서 같이 살아오신 분 중에 미래 우리 시아버지도 계셨다.


일제강점기에도 우리 아버지는 어차피 끌려가게 되니 자원해서 군 입대 했다고 한다. 버어마까지 가서 칠 년 만에 살아 돌아오셨다.

그 후 다시 동족상잔 6,25 전쟁이 일어났다. 다시 전선으로 투입되어 군인들 가르치는 교관이 되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을까?

그 험한 전쟁 중에 살아내신 아버지 덕분에 내가 태어났다. 우리 남편도 나보다 윗동네에서 먼저 태어나 선배가 되었다.


열일곱 살에 시집와 삼대를 모시고 살아왔던 어머니 이야기는 끝이 없다. 일제강점기. 여순반란 사건 6,25 전쟁까지 겪으면서 살아내셨다. 큰아들. 둘째 아들이 장성한 후 학생운동으로 4.19까지 겪었던 어머니 이야기는 퍼내도 퍼내도 끝이 없었다.


한 마을에서 우익, 좌익으로 나뉘어서 싸우고 잠깐 좌익에 몸담았던 분이 경찰에게 끌려가면서 외쳤다. 아버지 전답 팔아서 저 좀 살려주세요 저 죽고 난 뒤 전답이 무슨 소용이 있다요. 울부짖으며 끌려가 총살당했다.


작은 산골짜기 동네는 이념이 뭔지도 모르고 오늘은 우익 내일은 좌익으로 목숨 부지하기 위해 때로는 회색분자로 살았다.


마지막 빨치산 토벌에서 자수한 후 제 이의 인생을 살고 계신 분들이 이 동네 저 동네로 시집, 장가갔다. 래서 아버지. 오빠를 죽인 원수들이 가까운 집안이 되었다. 한 맺힌 피들이 자녀들에게도 내려왔고 그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낸 사람들이 우리 대한민국에는 많이 있.



개망초 꽃 이름 뜻은 "화해"라고 한다.

꽃다발 한아름 만들어서 예수님의 피 묻은 복음과 함께 한이 서린 이웃들에게 안겨주고 싶은 오늘이다. 그 한을 씻길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니까요 ~



"반목과 불신으로 나뉜 이 민족의 막힌 담과 경계를 주의 사랑으로 허물어주옵소서. 서로 대립하는 이 땅의 백성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하옵소서."


우리들 교회

김양재 목사님 어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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