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요양 보호사로 섬겼던 어르신댁을 찾아뵈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차일피일 미루었다.
마침 시장 가는 길에 멀지 않은 곳이라 농협에 들려서 어르신이 아침마다 드시는 토마토와 생선 중에 잘 드시는 고등어도 샀다. 그동안 자식처럼 같이 살았던 애완견 몽실이가 하늘나라 간지 두 달 째라고 했다. 지금도 잊지 못해 눈물을 비치셨다. 나도 일 년 반 동안 목욕시키고 털 깎아 주고 정이 많이 들었는데 몽실이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더구나 어르신은 십오 년 정도 함께 살았으니 그 마음 오죽 하실까? 나는 본 적이 없지만 어르신께서 노래 부르면 고개를 이쪽저쪽 흔들며 입을 벌리고 같이 노래도 불렀다고 한다.
자식처럼 아프면 죽을 끓이기도 했고, 믹서기에 갈아서 먹이기도 했다. 간질로 걷지 못하고 자리보전 하고 누워 있을 때 주무시다 일어나셔서 물도 먹이고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셨다. 의사 선생님도 앞으로 다시 걷기 힘들다고 했는데 기적처럼 회복되어 소파에 기대고 걸어 다녔다. 나중에는 비틀거리며 혼자 걸었다. 예전만 못하지만 제법 잘 걷게 되어 출근해서 카드 찍으면 어느새 내 곁에 와 있었다. 살만큼 살았으니 더 고생하지 않고 잘 떠났다 하면서도 자꾸 눈물을 훔치셨다. 요즘같이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에게는 애완견이 말벗도 되고 정서적으로 좋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항상 이별은 슬프다. 구십 대 중반이지만 작년과 똑같이 허리도 굽지 않으시고 비교적 건장하셨다. 점심 식사시간이라 짧은 만남이었다. 잊지 않고 찾아 주어 고맙다며 현관문까지 나오셔서 한참 동안 손을 흔들고 계셨다.
나도 골목길을 벗어날 때까지 손을 흔들며 어서 들어가시라고 손짓을 했다. 친정어머니 하늘나라 가시고 한 달 만에 만난 어르신이라 정이 남달랐던 분이시다.
요즘 시장과 반대되는 곳에서 일하느라 자주 오지 못했다. 나온 김에 채소라도 살 겸 큰길로 나섰다.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야채, 과일가게에서 가지, 호박, 참외, 자두를 샀다. 현재 섬기고 있는 사모님이 자두를 좋아하신대 본인이 직접 나갈 수 없으니 안타까워하셨다. 몇 번 그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나서 갔다 드릴 요량으로 샀다. 이년 전만 해도 일주일 두세 번씩 시장 다니시면서 제철에 나는 채소와 과일을 사서 할아버지를 섬기셨다. 그런데 지금은 다리가 편찮으셔서 치료하기 위해 병원만 겨우 다니시고 계신다. 이것저것 사다 보니 꽤 무거웠다.
버스정류장 비어있는 의자에 잠시 시장 짐을 내려놓았다. 갑자기 칠십 대 정도 되시는 분이 사람 앉을 곳에 짐을 두었다고 빨리 치우라고 호통을 치셨다. 황당하기도 했지만 말 섞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네 "죄송합니다" 금방 치울게요 하고 성급히 양산을 접어서 가방에 넣고 짐을 들었다. 그랬더니 옆에 계신 할머니께서 나 대신 그 영감님과 말다툼이 시작됐다. 아니 무거워서 잠깐 내려놓고 금방 치워준다는데 왜 그렇게 말을 험하게 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할아버지도 질세라 누가 사람 앉는 의자에 짐을 놓냐? 삿대질을 하자 이 아줌마가 미안하다고 안하요 글고 금방 치운단 디 뭘 그렇게 난리를 치요 난리를 치기는 ~옥신 각신 하고 있는 사이에 버스가 왔다. 그 할아버지께서는 차를 타시면서도 뒤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다른 분들도 무거우면 의자에 잠시 짐을 내려놓을 수도 있지 별것 가지고 화를 내신다고 혀를 끌끌 차셨다.
갑자기 의자에 짐을 내려놓은 일로 한바탕 정류장이 시끌벅적했다. 한편 날씨도 더운데 괜히 나 때문에 소란스러워 무색하기도 했다. 내편을 들어주시던 할머니께서는 저 영감하고 같이 사는 사람 얼마나 힘들까 혀를 끌끌 차셨다. 그리고 얼마 전 떠나신 남편 자랑을 하셨다 결혼생활 오십팔 년 하셨는데 할머니께 섭섭하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떠나보낼 준비도 안 했는데 가셨다고 한다. 간 곳이 얼마나 좋으면 자기를 두고 떠났는지 처음 본 저를 붙잡고 눈물지었다. 요즘 살만큼 사신 분들은 남편을 평생원수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사이가 정말 좋으셨나 보다. 아니면 이미 헤어지고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으니 좋은 추억만 간직한 것일까? 우리 집 방향으로 오는 차가 먼저 와서 할머니와 인사하고 헤어졌다.
차 타고 오는 길에 참았던 분이 올라왔다. 나도 노인인구에 속하는데 먼저 자리 잡고 앉아있으면 어떡할 거야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교양 때문에 말을 못 했지만 대신 싸워주신 할머니 때문에 그나마 속이 시원했다.
여자들은 대체적으로 지하철 역사, 버스 정류소에서 차 기다리는 시간에 모르는 사이라도 옆에 있는 분과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그러나 남자들은 모르는 사람끼리 대화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가정에서도 외톨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의자 위에 짐 때문에 시비를 걸었던 할아버지께서는 젊은 시절 어떤 길을 걸어오셨을까? 왠지 사연이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동네 공원 산책을 나가도 할머니들 목소리가 크고 할아버지들은 듣기만 하신다. 요즘 시니어 일자리로 몇 시간 공원이나 거리 청소로 용돈 버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담배꽁초, 과자 봉지 등 쓰레기 봉지에 담고 쓰레기 집은 찌개를 의자옆에 세워두고 몇 분 어르신들이 앉자 계셨다. 복날 오리집을 갔는데 물가가 올라서 두 마리 주문해서 몇 사람이 먹어도 충분했는데 요즘은 어림 택도 없습디다. 영감님들도 가시려면 우리랑 같이 갑시다~ 해도 할아버지들은 묵묵부답이셨다.
지금 섬기고 있는 사모님께서도 동생, 친구들과 한 시간 이상 통화 하신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는 가끔 울리는 재난 문자만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켠다. 사모님께서는 집안에서도 세상과 소통하며 지내시니 성격이 밝으시다. 할아버지께서는 허리가 조금 굽었어도 걷는데 지장이 없는데도 전혀 밖 같 출입하지 않으신다. 혼자 침대에 누워서 하루 종일 티 비만 보시고 계시는 할아버지는 외로워 보이신다.
거실로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