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할아버지와 할머니

나 저녁 안 먹어도 돼

by 진주


나이가 들어 늙어간다는 표현을 요즘 좋은 말로 익어간다고 한다.

허리, 다리가 편찮으셔서 일상생활이 조금 불편하신 어르신을 섬기고 있다.

그동안 건강하셔서 성도들과 함께 김장도 삼백포기 정도는 거뜬하게 하셨다.

주일마다 점심 식사도 권사님들과 함께 교인들 대접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게 하셨다. 퇴임 후에도 귀촌 한 자녀들 농사도 틈틈이 도와주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계단 내려오시다가 넘어져서 허리 수술받으셨다. 그 후 할아버지 병원 다니는 것, 시장과 마트에서 식재료 구입해서 세끼 식사와 간식까지 다 섬겼다.




그런데 사모님도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잘 걷지 못하셔도 꾸준한 치료 덕분에 집에서는 웬만한 살림은 직접 하실 수 있을 만큼 되었다. 하루 삼십 분씩밖에 나가서 보행기 의지해서 걷기도 한다.

그런데 이주 전부터 발을 디디기만 하면 당기고 아파서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주말 지나고 방문했더니 사모님 방에 있던 피아노가 거실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피아노 자리에 작은 침대가 놓여 있었다. T.V이도 다른 프로그램을 잘 보시지 않고 뉴스를 좋아하시고 나라 걱정을 참 많이 하셨던 분이셨다.




그런데 이제 그마저도 안되고 약에 취해 침대 누워계셨다. 어제는 가깝게 지내는 목사님이 방문하셔서 변기 앞, 샤워 부스 앞에 손잡이를 해주셨다. 같이 오신 여전도사님에게 그동안 애지중지 키우던 꽃나무를 주셨다. 꽃나무 돌보는 일로 소일하셨는데 이제 그 일도 힘들어서 식물 잘 키울 수 있는 분에게 주신 것이다.




화분이 하나씩 현관 밖으로 나갈 때마다 사모님께서는 울음을 삼키셨다. 마지막 화분이 나가고 전도사님이 가자 애써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셨다. 10여년간 같이 살았던 꽃나무들이었다. 작은 묘목부터 애지중지 자식처럼 키웠던 꽃나무들에 대한 그동안 사연을 풀어내시며 섭섭해하셨다. 죽을 고비가 몇 번 있었던 꽃나무들을 유튜브 스승 삼아 식물 키우는 방법을 새로 터득해서 살려냈다. 자녀들이 카네이션을 사다 주면 꽃망울이 많이 맺혀 있는데 결국 다 피지 못하고 시들어서 죽었다. 땅에 묻으면 핀다는 소식을 유튜브를 통해서 듣고 올해 큰 화분에 카네이션을 심어 두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베란다 나가서 돌보시더니 정말 꽃이 피기 시작했다. 꽃이 피고 새순이 돋아나면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 두고 자랑했다. 런데 그 식물을 다른 집으로 다 보낸 것이다.




몇십 년 전 일이지만 우리 집도 사업이 부도 나서 작은 집으로 이사 가게 되었다. 그때 베란다에 꽉 차 있던 꽃나무를 형님 댁, 이웃들에게 나눔 했다.

할머니 마음이 충분히 체휼이 되었다.

평소 내가 잘하던 일,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이 나이 들어가는 삶인 것 같다. 할아버지 위해 떡볶이를 간식으로 해주셨다.

그런데 간이 스며드는 몇 분의 시간도 이제. 서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떡볶이는 오늘부터 내 담당이다. 몇 칠 동안 드시지 못한 할아버지께서 떡볶이를 드리자 맛나게 드셨다. 사모님은 불편하셔도 할아버지 위해 사소한 것까지 다 챙긴다.

날마다 세끼 반찬과 간식거리 챙겨 놓는다.

할아버지께서는 엄마처럼 할머니만 의

지하신다. 남자분들은 힘이 있는 것 같아도 나이 들수록 아이가 되어간다. 할머니 누워있는 방안을 슬쩍 내다보시고 “허리가 얼마나 아픈지” 한마디만 물어보셔도 좋을 것 같은데 그냥 돌아선다. 그러다가 이른 저녁 드시면서 마침내 한마디 하셨다. 내가 먼저 아팠으니 나를 보내고 아팠으면 좋을 건데 둘이다 아파서 앞으로 어떡하냐고 걱정하셨다. 그 뜻은 나를 더 보살펴 줘야 하는데 하는 속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할아버지는 허리가 약간 굽었어도 걷는 데는 지장 없다. 사모님이 편찮으실 때 가사 일을 조금만 나누어서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여전히 남자들은 이기적이다.

가정사역자 도 은미 목사님께서도 입에 혀처럼 목사님 사역을 도우셨다고 한다. 그런데 관절염으로 꼼짝없이 눕게 되었다. 식사도 못한 채 누워있는데 남편 목사님께서 퇴근해서 들어오셔서 "나 저녁 안 먹어도 돼"

하셨단다.

대부분 우리 세대 아내들은 남편이 아프면 좋다는 것 다 해서 바친다. 그런데 남편들은 대체적으로 아내를 챙겨 줄줄 모른다. 그동안 너무나 성실하게 뒷바라지한 것도 죄라는 것을 그때서야 사모님도 깨달았다고 한다.

지금은 가정일도 서로 분담하며 훌륭한 가정사역자로 “아버지 학교와 할아버지 학교”를 만드셨다.




헌신적으로 할아버지만 돌보지 않고 자신도 돌보면서 살아오셨으면 좋았으련만~~~

조기 한 마리 구워도 뼈를 다 발라놓아야 잡수시는 할아버지 이제 어찌할까?

나이가 들어 익어간다는 게 어떤 뜻일까? 여전히 몸이 편찮으신 사모님께서 할아버지, 자녀 걱정으로 눈물 흘리신다.




# 할아버지 # 할머니 # 떢볶기 # 꽃나무 # 허리 # 조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