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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가 자리에 안 계십니다.

쉴 수 있는 정류장은 내 속에도 없어요

by 진주

나이 들었어도 어엿한 국가자격증으로 일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대상자 어르신 아파트까지 걸어가도 멀지 않은 거리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는 조금만 걸어도 아스팔트 열기로

얼굴이 홍시가 된다. 그래서 요즘 시내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버스 중에 유일하게 한대만 대상자 어르신이 사시는 아파트를 지나간다. 배차도 약 이십오 분 정도라서 한 대 놓치면 다른 버스 타고 내려서 십분 정도 걸어야 한다. 유일한 내 전용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앱을 핸드폰에 설치하고 수시로 확인한 후에 집을 나선다. 그래도 항상 오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땡 볕 열기가 대단한 오후 시간인데 버스 정류장에는 그늘 막 하나 없다.

그런데 몇 칠전부터 학교 정문 쪽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을 다시 세우고 있었다.

성인 다섯 사람 정도 넓게 앉을 수 있는 긴 의자와 천장도 예전보다 앞 뒤가 훨씬 넓게 거의 완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마침 이 정류장을 새로 공사하는 회사와 시청 담당실 전화번호가 적인 팻말이 흔 한 문구와 함께 서있었다. “보행에 불편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맞은편 새로 교체한 정류소는 학교에서 내려온 나무 그늘 막과 버스 정류장 의자까지 놓여 있으니 부럽기 그지없다. 길하나 사이에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낮 모른 사람끼리도 버스 기다리는 동안 다른 곳은 햇빛 가리개가 정류소마다 설치되었는데 이쪽 라인만 없으니 서로 불만이 대단했다. 그러던 차에 시청 담당과 전화번호가 적혀있으니 얼마나 반가웠던지 퇴근 중에 전화드렸다. 전화벨이 울리자 누군가의 소중한 가정의 딸이오니 폭언하지 말라는 멘트가 흘렀다. “여보세요” 앳된 아가씨가 상냥한 목소리 흘러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말도 더듬게 되었다. 현재 공사 중인 ㅇㅇ초등학교 앞 정류소를 이용하는 시민입니다. 혹시 맞은편 정류소도 바람막이나 햇빛가리개 설치 계획이 있나요? 여쭈었더니 네 “지금 담당자가 자리에 안 계십니다” 내일 다시 전화 주세요. 한껏 부풀었던 마음이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 네 알겠습니다 하고 핸드폰을 끊었다. 다음날 또 똑같은 멘트가 흘러나온 후에 통화가 연결되었다. 어제 전화드린 시민입니다만 학교 앞 맞은편 버스정류장 공사계획이 있는지요? 요즘 폭염에 학교 맞은편이고 이쪽 편에는 고등학교도 있는데 햇빛가리개가 설치 안 되나요?

어제 전화받은 아가씨 목소리라 내심 반갑기도 했다. 그런데 똑같은 멘트로 아~네 안녕하세요 지금 “담당자 자리에 안 계십니다.” 방금 퇴근하셨어요. 내일 점심시간 피하시고 다섯 시 이전에 전화 주세요.

나긋나긋 한 목소리로 응대해 주었지만 왠지 성의 없어 보여 기분이 언짢았다.




주일 지난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똑같이 담당자가 자리에 계시지 않는다는 답변이었다. 연결음이 소중한 어느 가정의 따님이라는 말씀 때문에 화는 내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너무 성의 없는 답변 아닌가요? 몇 번 전화드렸는데 그때마다 “ 담당자가 안 계신다니”? 전화받으신 분도 똑같은 민원 전화가 오면 메모해 두었다가 계획이 있다. 없다. 물어보실 수 있지 않나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지만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면 화 낼 만한 상황 아닌가요? 화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화가 납니다. 그랬더니 제가 담당이 아니고 일하는 부서가 다릅니다. 많은 민원 전화가 와서 힘들겠지만 부서가 달라도 자주 전화 온 내용은 메모해 두었다가 담당자에게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계획이 있는지 내용만 알면 되는데요? 그랬더니 그제야 네 죄송합니다. 꼭 들어오시는 대로 말씀드려서 전화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통화를 마쳤다.



어르신 저녁 드리려고 상차림 중에 시청 전화번호가 울렸다. 내용인즉 길이 좁아서 보행하는데 불편해서 설치할 수 없다고 한다. 할 수 있는 장소이면 맞은편 정류장 공사 할 때 같이 했지요 하셨다. 버스 기다리는 중에 혹시 길이 좁아서 할 수 없나? 그래도 두 사람 정도 앉을 수 있는 의자, 지붕은 좁게 하면 되지 않을까 나름 생각했었지만 역시나 좁은 길이 문제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새로 만들어놓은 정류장 쪽에서 하차했다. 맞은편 정류장은 이제 그늘이 지고 있었다. 좁은 길이라 보행자가 불편해서 그늘막도 세울 수 없다는 담당자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잠시 더운 것도 참지 못한 인내심 부족으로 따지고 들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마음이 좁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말도 걸려서 넘어서지 못할 때도 많다. 얼마 전 출산한 며느리에게 열무김치 담가서 주려고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밀린 집안일을 한 후에 아들 집을 방문하려고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런데 밑에 층에 살고 계신 형부께서 외출하는 방향이 같으니 기어이 태워다 주겠다고 전화가 왔다. 몇 번 사양했지만 그 후에도 전화가 왔다. 고마우면서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형부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같이 갈 수 없는 이유를 자초지종 설명 했으면 좋으련만...

꼭 들어야 할 옳은 말씀도 많은데 나랑 성격이 맞지 않아서 마음을 닫아 버릴 때가 많다.

내 마음속에도 잠깐이라도 아무나 쉴 수 있는 넉넉한 정류장이 없다. 위로받고자 전화하는 지체들에게 “담당자가 안 계십니다” 수없이 남발했던 것 같다.


# 전화 # 시내버스 # 홍시 # 형부 # 담당자 #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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