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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내리던 날

내 마음에 그리는 고향

by 진주

김수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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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가지에 흰 눈이 쌓인다.

마치 목화 꽃이 핀 것 같다.

간밤에 내린 눈이 세상을 하얗게 뒤덮였다. 고향에도 눈이 내렸는지 앞산이 눈꽃으로 변한 사진 한 장이 카톡으로 올라온다.

사람의 일생이란 고향에서 점점 멀어지다가 마침내 그 고향으로 누운 채 돌아가는 것이. 얼마 전 칼럼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고향은 나룻배로 섬진강을 건너야 갈 수 있다. 지금은 다리가 놓여서 차로 달리고 있지만.


학교 다니 던 시절 섬진강 주변에는 밭이 많았다. 가을걷이가 끝나갈 무렵 튼실하게 자란 무, 배추가 시퍼렇게 뿌리박고 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초가집 지붕 위에 빨갛게 익은 감도 꽃처럼 늘어져 있다.

하얗게 서리 맞은 감을 한입 베어 먹으면 단물이 줄줄 흐른다. 학교 다녀오다 주인 몰래 하나씩 뽑아 먹은 무도 손톱으로 껍질을 돌돌 벗겨서 친구들과 한입씩 베어 먹었다. 차디찬 도시락도 미리 먹어 치운 터라 배가 고팠다. 배보다 더 시원하고 단물 나는 무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첫눈이 내리던 날 깜박했을까?

간밤에 미리 나무 청에서 꺼내지 못한 솔갱이 다발에 눈이 쌓였다.

눈 맞은 솔갱이가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자 매운 연기로 가득했다.

눈이 빨개진 엄마는 아궁이에 얼굴을 들이밀고 입으로 후후 바람을 불어댔다.

마침내 불이 활짝 붙은 솔갱이는 타닥타닥

타들어간다.

기와지붕 위로 뻗은 굴둑에는 흰 연기가 몽글몽글 올라가고 하늘에서는 흰 눈이 내렸다. 마당에는 모처럼 흰 융단이 깔렸다.

눈 오는 마당에서 메리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마당 한쪽에 나무로 만들어 놓은 철봉 위에도 눈이 가득 쌓였다.

거침없이 흰 융단을 밞으며 발자국으로 한발 한발 내딛으며 꽃을 만들었다.

발자국으로 만든 꽃송이 위에서 냅다 뛰며 철봉을 잡았다.

하얗게 쌓인 눈이 얼굴을 덮었다. 그래도 철봉 위에 나비처럼 사뿐히 앉잤다.

앞산에는 꿩이 푸드덕 날아가며 또다시 눈을 뿌다.

대나무로 만든 간짓대 하나를 걸어도 될 만한 거리의 뒷산에도 눈이 쌓였다.

장대 밑에는 올망졸망한 초가집, 간간이 보이는 기와집이 눈 속에 파묻혀서 그림을 그려놓았다.

아직도 고향의 초겨울 풍경은 내 기억 속에 그대로이다.




그러나 수시로 올라오는 고향 풍경도 날마다 달라지고 있다.

골짜기 방언인 “골안”를 우리는 고란으로 불리며 자랐다.

그곳이 지금은 청계천처럼 멋지게 공사 중이다.

비뚤비뚤한 돌다리 건너서 봄이 되면 진달래 꺾고 여름이 되면 목욕을 했던 곳이다.

가재 잡고 대사리 잡으며 여름 내내 일 년 치 목욕을 끝내버렸던 “고란”이 지금은 많이 달라져 가고 있다.

그래도 간짓대 하나 걸치면 맞닿을 거리에 있는 앞산과 뒷산은 그대로이다.

장대 밑에 올망졸망한 초가집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지금은 빨간 지붕에 튼튼한 벽돌집이 마치 독일마을처럼 세련되게 서있다.

집 앞에 늘 소리 내어 흐르던 냇가는 비뚤 비뚤 하게 박힌 돌 몇 개만 내려가면 된다.

그런데 지금은 둑을 높이 쌓아 놓았다.

여름철 장마로 물난리를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고향도 날마다 새롭게 변해간다.

칠십대로 달려가는 나도 날마다 변해간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내 마음속 고향은 그대로이다.

지금도 마루 끝에 매달린 곶감이 삐득 삐득 말라가는 풍경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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