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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Jun 16. 2024

소장수와 반성문


80년대 작품성이 좋은  TV 문학관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유튜브를 통해

얼마 전 우연히  TV 문학관에서 김성겸. 이덕희 주연 "소장수"를 보게 되었다.

 



1970년대는 학교에서 허락해 준 영화 외에는 볼 수가 없었다.  남자들만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단체 관람한  영화를 우리

여학교 람불가였다. 그때마다 담임선생님께  항의도 했지만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었다.

그때마다 몇몇 학생들은 몰래 극장가서 영화보다  들켜서  반성문 쓰기 일쑤였다.

지겹게  반성문 쓰다가 글짓기 실력이 쌓이게 돼서 감사합니다. 했더니 열 번으로 늘어난 적도 있었다.




방학을 맞이해 몇몇 친구들과 재미있다는 소문 듣고  `소장수` 영화를 보러 갔다.

한참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극장 안에 계신다는 정보를 얻었다.

간첩 잡듯이 몰래 들어와서 한 명씩 잡혔다는 소리를 듣고 급히 화장실로 숨은 친구도 있었다. 푸세식이라 냄새도 고약했고 여름이라 통통하게 살찐 굼벵이가  궁글듯이 기어 다녔다. 화장실 문구멍으로 망을 본 후 살짝  문 열고 나오려는데 "냄새난디 뭐흐고 있냐 얼릉 나오제"  무서운 과학 선생님이 빙글빙글 웃으며 매를 흔들고 서 있었다.




그해  '소장수' 영화를 몰래 보다 선생님께 걸린 후 개학이 되자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여름방학 동안 영화관람하다 걸린 학생이 거의 삼십 명이 넘었다.

일일이 반성문 내용 확인하기도 힘들었는지 단체로 벌을 받게 되었다.

워낙 많은 학생이 걸려서 수업 마치고 난 후  교무실 입구를 청소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마른걸레로 닦고 양초로 문질러서 애벌걸레로 윤기를 냈다. 젖은 걸레로는 교무실 구석구석 닦고 다녔다.

그때마다 선생님들이 지나가며 꿀밤을 먹여주었다.




그때 소장수 영화를 관람하다 중간에 들켜서 제대로 무슨 내용인지 알턱이 없었다.

주인공이었던 박노식 배우가 나쁘고 여자 주인공이 너무 불쌍하다는 정도였다.

학교 오가는 길에 읍내 다 이르면 오일장 터가 있었다. 개울 건너편에는 소 거간하는 곳이라 장날마다 소 끌고 오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때마다 소도 자기를 팔러 가는 것을 아는지 고개를 저어가며 음메! 하며 울고 지나가는 울음소리가 왠지 처량했다.

소 거간하는 곳에 가면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로 버티고 있다는 말도 들었던 것 같다. 팔로 오는 사람 사러 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소 울음소리로 활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저  밭 갈고 논 가는데 필요한 소였는지라 단순하게 생각했다. 장날 돼서 필요하면 사고 새끼 나면 팔고 하는 정도로만 알았다.

그런데 사고파는 일에 업을 삼아 오일장을 다니는 고달픈 소장수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때는 차가 귀한  세상이었다.

이곳저곳 오일장을 찾아다니며 소와 함께 사계절 걸어 다닐 때가 많았나 보다.

해가 저물면 들판이나 산에서 불을 피우고 잠을 자는 소장수의 애환이 절절히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성격도 포악해지고 사랑했던 여자마저 책임지지 못하고 노름판에서 돈을 잃자 팔아버린다.




얼마 전 '소장수"를 다시 보게 되면서 작품성에 반했고 사계절 경치에 반했고 남녀 주인공의 연기력에 반했다. 끝까지 다 보고 나서는 앤서니 퀸  리에타 마시주연 '길'이라는 영화 스토리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악한 곡예사  노 순박한 처녀 젤소미나도 소장수처럼 남자 주인공의 살인사건으로 버림받게 된다.

아쉬운 게 있다면 두 작품 다 비극으로 끝나서  마음이 아팠다.

여자 주인공은  빚으로 팔려가고 살아남기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억세고 사나운 남자들에 의해서 팔리고 버림받은 여자들이 가여웠다.

그런데 그 못된 남자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게 더 애잔하게 느껴졌다.

결국 세월이 흘러 나이 들자 자기가 버린 여자들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이미 죽고 난 뒤였다. '길`이란 영화에서도 파노가  바닷가에서 가슴 치며 짐승처럼 울부짖는 모습으로 영화는 막이 내린다.

소장수 주인공 만석이도 세월이 흘러 그때서야 사랑했던 옥분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자기 아들 낳다 죽은 후였다.




방학 동안 등산을 가도 걸리면 무조건 반성문을 썼던 우리 세대 이야기는 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지금은 학생들도 영화를 자유롭게  볼 수 있다. 학교에서 혹시 체벌이 가해지면 학생이나  학부모님들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우리나라 역사 이래 이만큼 풍요를 누린 때도 없다. 여권신장도 향상되어 주요 요직도 많이 차지하고 있다. 세상은 갈수록 풍요해지고 자유가 주어졌다

학교에서 '관람불가' 된 영화만 보아도 반성문을 쓰고 벌을 섰던 그때와 너무나 다른 세상이다. 하긴 오십 년 세월이면 반세기인데

뽕나무 밭이 변해도 다섯 번은 변했다.




교무실 청소할 때  꿀밤 주었던  선생님들은 생존해 계실까? 같이 반성문 썼던 친구들은 손주, 손녀들이 벌써 그 시절 우리들 세대가 되었을 테다.



# 극장 # 길 # 반성문 # TV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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