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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Aug 03. 2024

요양 보호사가 무력감을 느낄 때

어르신들  하소연 어떻게 대처해야 될까요?  

    

요양 삼 등급을 받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섬긴 지 벌써 일 년 반이 되었다.

일하는 시간은 오후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이다. 그런데 요즘 심상치 않는 폭염에 무턱대고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린다면 얼굴이 아스팔트 열기로 익을 판이다.

버스 앱을 핸드폰에서 확인하고 집에서 다섯 정거장쯤 도착할 때 나가면 기다리지 않고 승차할 수 있다.

옛날에는 무턱대고 나가서 정류장에서 혹시나! 하고 목을 빼고 타야 할 버스를 기다렸다.

차츰 발전되어서 차가 어느 지점 몇 분 남았는지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전광판에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이제는 핸드폰에서 버스 앱  확인만 하면 어디까지 왔는지 가르쳐 주니 참 편리한 세상이다.

몇 분 걷는 거리이지만 후끈 달아오른 열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버스만 올라타면 에어컨이 빵빵하게 가동되니 금방 더위가 식는다. 헬 조선이라고 하지만 가는 곳곳마다 공중 화장실도 깨끗하고 에어컨까지 가동되는 곳도 많다.

잠깐 쉬어가는 정류장에서도 에어컨이 가동되고 겨울에는 잠시 앉자 있는 의자에도 스팀이 들어온다.

또한 나이가 들었어도 내 체력에 맞는 일자리가 있는 것도 감사하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현관 벽에 붙어 있는 태그를 핸드폰으로 찍는다.  

안방으로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저 왔어요! 인사드린다.

안경을 쓴  할아버지는 침대에 누워계시다가 번쩍 손을 들고 반갑다는 표현을 한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검은색으로 염색을 한 할머니께서 몸을 뒤뚱거리며 안방에서 나오신다.

날씨 너무 덥지요? 하며 에어컨부터 가동하고 잠시 커피 마시라고 배려해주신다. 할아버지는 안방에서 거의 나오시지 않는다. 식사도 겨우 호박죽 몇 숟가락만 드시고 불가리스만 하루에 보통 열두 병에서 어느 날은 열여섯 병까지  마신다. 너무 많이 드신다고 하면 오직 이것밖에 먹을 것이 없고 하루에 본인은 세병만 드신다고 한다. 죽도  호박죽만 드신다.



처음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는 거실에 나오셔서 식탁에서 할머니랑 같이 식사하셨다.

그때는 김치찌개, 소고기 뭇국, 미역국, 구운 조기, 떢볶기, 어묵 등  잘 드셨다.

간식으로 항상 떡볶이를 만들어 드리면 흡족하게 잡수셨다.

어묵도 물 조금 붓고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 조선장 한 숟갈, 물엿 넣고 졸이면 된다.

간단한 어묵 조림도 항상 끼니때마다 잘 드셔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해드렸다.      

작년 여름부터 좋아했던 음식이 하나씩 줄어들었다. 식탁에서 할머니랑 같이 식사하시다가 이제는 안방에서 혼자 드신다. 날마다 떡볶이를  간식으로 잘 드시더니 씹는 게 불편하다고 드시지 않는다.

어묵도 부드러운 반찬인데  치아가 망가져서 씹을 수 없다고 손도 대지 않는다.

옛날 어르신들도 치아가 없어도 잇몸으로 드셨어요. 입에 넣고 오물 오물 하면 키위나 부드러운 카스텔라는 얼마든지 드실 수 있어요 해도 본인은 못 드신다고 손사래를 친다.




일주일에 세 번 끓이던 호박죽도 잘 드시지 않아 두 달 전부터 두 번으로 줄었다.

그리고 계속 불가리스만 드신다. 어쩔 땐 하루 열여섯 병까지 마실 때가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까운 데 사는 아들이 주일에 와서 분리수거를  한다. 그러나 삼사일만 지나도 박스에서 넘쳐나서 불가리스 빈병이 베란다에서 굴러다닌다. 무거운 품목이라 하루 네 줄 이상 배달이 안된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하루 열세병 이상 드시고 나면 일주일에 세 번씩 배달을 해도 모자란다.  안방에서 대나무로 만든 효자손으로 탁자 치는 소리가 들린다. 불가리스 가져다 달라는 신호이다. 일하느라 미처 알아듣지 못할 때 거실에 나와서 냉장고를 열어보고 개수 확인하고 가져간다. 얼마나 남지 않았으면 그때부터 할머니께 돈을 주며 사 오라고 한다. 밤에도 자녀들 자는 방을 두들기며 불가리스를 사 오라고 재촉한다.  


    



오월달까지 전기난로를 치우면 도로 가져다 놓았다. 추워서 가끔 가동을 해야 된단다.

T, V이도 어쩌다  정전될 때만 꺼진다. 하루 종일 일 년 열두 달 내내 주무실 때도 켜 놓고 리모컨을 손에 쥐고 잔다. 지금은 에어컨을 밤새 가동해서 다리와 허리가 아프신 할머니가 찬바람에 몸이 더 불편하다고 하소연한다. 다른 방에서 할머니가 주무시면 기어이 문을 두들겨서 깨운다. 불가리스 배달도 원활하게 안되는 것도 문제지만 할머니는 날마다 생활비 거덜 나게 생겼다고 걱정한다. T, V이도 오래 켜두니 불이라도 나면 어떡하냐고 걱정하신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께 정답을 말씀드린다. 아무리 좋은 것도 많이 드시면 좋지 않다. 작년에도 옛날 다니시던 직장 근처 한 번 다녀오셨고 올해도 집 근처 공원 한번 다녀오셨다.  

걷는데 불편하지 않고 잘 걷는데도 중병 걸렸다고 생각하신다. 오히려 할머니께서 통증 주사 맞고 겨우 실내에서만 걷는다. 그런데 할머니께  심부름 시키는데 할아버지를 정상으로 보면 안 돼요. 하고 말씀드리면 그럴까? 지금도 본인이 할 건 다 하는데 하며 인정하지 않으신다. 단호하게 끊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할머니께서 강해지셔야 한다고 말씀드린다.

그때마다 불가리스 밖에 마시는 게 없고 외부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니 T, V 밖에 소일거리가 없다.  

그러니 불쌍해서 어찌 그럴 수 있느냐며 눈물을 손으로 훔치신다.     




그다음 날도 출근하자마자 얼굴이 상기된 채로 안방에서 나오셨다. 방에다 설사하고 다리에도 줄줄 새서 다 씻겨 드렸다고 한다. 자리에 일어설 때마다 아이고! 소리를 내며 겨우 걷는 할머니께서 화장실 변기, 바닥까지 닦았는데 힘들어서 눈에 보이는 것만 치웠다고 한다. 고무장갑 끼고 앞치마를 두르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청소 용품을 여기저기 뿌린 후에 미끄럼방지 매트 사이사이로 노랗게 끼여있는 덩어리를 솔로 문질렀다. 변기 위에 미끄럼 방지 매트를 올려놓고 물기를 빼고 나서 다시 바닥을 마른걸레로 닦은 후에 깔아놓았다.      

할머니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또다시 묻는다. 얼마나 힘드셔요? 불가리스 개수를 줄이는 것 밖에는 없어요 할아버지 스스로 제어가 안 되는데 불쌍하다고 계속 그대로 보고 계시면 안돼요.

안 되는 건 안된다고 단호하게 하는 게 사랑이어요.  

치매 어르신들이 대체적으로 며느리와 딸 사이를 갈라놓은 일이 많았잖아요.

식사 하고도 딸이 와서 물으면 며느리가 밥을 안 주고 굶겼다고 하소연하면 분별없이 시누이는 우리 어머니 밥을 굶겨? 하고 옛날에는 싸움이 많이 일어났잖아요. 할아버지 상황이 세병밖에 드시지 않는다는 것이나 비슷해요. 눈물 훔치는 할머니께 옆에 있는 화장지를 슬그머니 밀어드렸다.    


 



할머니는 힘든 것을 하소연하는 것이지 나에게 정답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오늘 또 할머니께 체휼보다 정답만 이야기했다.

언제까지 이 문제가 지속될지 모르겠다.

자녀들도 아버지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어머니가 알아서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한다.

집집마다 노인 문제가 심각하다.

요양보호사가 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 무력감을 느낀다.  

내일도 분명 출근하자마자 할머니 하소연이 시작될 텐데 정답 말하지 말고 그냥 듣기만 해야지  다짐해 본다.

그러나 잘 될지 모르겠다.           


# 요양 보호사 # 호박죽 # 불가리스

# 하소연 # 노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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