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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Oct 10. 2024

어머니와 핸드폰

고흥댁 열세 번째 이야기




카톡이 울리자 핸드폰을 열었다.

말씀과 함께 성화를 그린 둘째 오빠가 보내준 편지였다.

 " 아이 우표도 없이 어쩌게 편지가 요 속으로 온다냐"

엄마는 핸드폰을 열고 보여 줄 때마다 참 요새 세상은 요상흔 것도 많다 놀라워하신다.

하긴  우리 세대도 따라갈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하물며 백세를 바라보는 어머니께서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백 년 전 선교사들을 통해 사진기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왔다.

혼을 빼앗아간다는 물건으로 다들 오해해서 처음에는 사진 촬영하려다 봉변을 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엄마도 핸드폰으로 사진 찍고 보여 드릴 때마다 사진관도 안 갔는데

내 얼굴이 어찌 그 속에 있다냐?

매번 놀란다.

일세기를 살아오신 어머니는 걸어서 전해온 부고장, 급할 때 몇 자 적어서 보낸 전보가 익숙하시다.

우표 붙쳐서 몇 칠 걸려서 보내온 편지,수동으로 돌린 전화에 이어 핸드폰까지 빠르게 변해서  숨이 벅찬 건 당연하다.

자녀들과 경험한 세계가 다르고 빛의 속도로 변화가 되니  나도 우리 자녀들과 소통이  안될 때가 많다.

작은 화면으로 성경 읽는 게 불편하게 여기자 남편은 날마다 컴퓨터로 타이핑하고 출력해서 어머니께 드린다. 지식 욕구가 많으신 어머니는 무엇이든 읽기를 좋아하셨다.

가끔  " 아이 나이가 든 게 요것 쪼게 읽어도 목이 멕이고 기침이 난다". 

그때마다  그만두라고 하지만 남편은 따뜻한 물 한잔 드리고 기다렸다가 "어머니 지금은 괜찮흐요"

다시 해봅시다 하며 기어이 녹음을 마친다.




그때마다 나는 칭찬보다 '인정 중독"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런데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난 뒤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책 읽기, 손빨래, 바느질등 치매예방이 더없이 좋은 것이라고 한다.

같은 교회 다니는 정연실 집사님과 수요예배 가는 길에  어머니가 자투리 천으로 만든 쿠션을 보여드렸다.

어머! 정말 '장인'이네요 버릴 천을 이용해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놓았네요

그러더니 수요일에 불쑥 책 한 권을 꺼내 주었다. 우리 어머니를 위해서 도서관에서 책한 권을 빌렸다고 한다.

퇴근 후에 드렸더니 요새는 참말로 책 재질도  좋고 사진도 선명하니 이쁘다 하시며 좋아하셨다.

 "한국 보자기"에 대한 책을 머리맡에 두고 밤 한 시까지 보신다.

바느질도 잘하시고 무슨 책이든 손에 잡히기만 하면 돋보기도 쓰지 않고 보신다.

주무시다 실수하면 속옷도 직접 빨아서 널어놓았다.

주간보호 센터 가시기 위해 날마다 삼층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종아리를 만지면 단단해졌다.

프로그램대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와서 또 바느질감을 꺼내든다.

젊은 시절 일하던 습관이 몸에 배어서 그런것 같다..




에제르 남편은 아침에도 어머니 밥상 보며 한소리 한다.

노인들은 변비로 자칫 고생할 수 있으니  양배추 삶고  찍어 드실 양념장도 몇 가지 준비하라고 한다.

입맛에 맞게  상추 겉절이. 부드러운 계란찜, 갈치 구운것, 사골국 등 골고루 하라고 잔소리한다.

속으로 원님덕에 나팔 분다고 어머니 덕에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말하는 건 아닌가?

아무튼 사위가 장모님과 잘 지내니 고마울 뿐이다.

갈수록 귀가 멀어 엉뚱한 소리도 잘하시고 짠맛을 잃어버려 소금도 사골국에 듬뿍 넣어 드신다.

적게 넣으라고 하면 "음식은 원래 짭짤해야 맛나다"  한번 더 소금통에 숟가락을 살짝 넣는다.

남편이 오히려 어머니 하시는 행동을 그대로 받아준다.

같은 고향이다 보니  뉘 집 이야기 하면 벌써 알아듣고 서로 말벗이 된다.




한참 색보를 만드느라 천을 오리고 접고 있는데 남편이 어머니! 하고 부른다

보리밭 매 놓고 꽃피는 사월이 오면 시골에서는 화전놀이 했지라이

하고 묻자 딴소리를 한다.

내가 농사일도 잘 못하고 일이 느려도

자들 할매가 참 좋았네

생정 며느리  숭 안 보고 우리 공떡은 일 흐면

뒷손이 안 가게 얌전하게 잘한다고 칭찬만 했네

자네 장인이 집에 없어도 어른들이 잘해준 게 살았제

근디 상할아부지는 일 못한다고 어지간히 나를 미워하기는 했네

나락 덕석도 착 못 챈다고 한디

무건 덕석을 일도 안 해본 내가 어찌께 딱 챈당가

참말로 그때마다 속은 상하대만은




요맘때 모다들 보리밭 어지간히 메놓고

장구재비 뒤따라서 화전놀이 갔제

곡조가 안 맞아도 '이미자' 노래깨나 불렀네

자들 새 돔에 당숙모가 목청이 참말로 좋았네

장구 잘 치기는 방구 각시가 잘 쳤제

장구채 하나 들고 장구 뚜들면 모다들 그 앞에서

술 한잔 묵고 저 고름짝 풀어진지도 모르고 덩실덩실 춤추고 놀았제

자들 할매도 논 것을 좋아해서 꼭 화전놀이 끝나면 다들 우리 집으로 왔네

누구 집 메느리들은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흔디

우리 집 메느리들은 놀지도 모른다고

그때는 화를 냈제

그래도 닭 잡아서 죽 끼래 줘서 다들 잘 묵고 놀았네

그때가 좋았네 참말로




어머니!

먼 노래 좋아흐요

잘 부른 노래 한번 불러보쇼

미쳤든갑다.

저 할매 백 살 묶어감서 노망했다고

욕 흘라고

어머니는 "사공의 뱃노래" 좋아흐지라

한번 불러볼라요

핸드폰은 켜드리자 어이! 그 속에서 노래도 나온가?

참말로 존 세상이네


사공에 뱃노래 가물거리는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에 새색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인가 목포의 설음

아이고 목이 멕혀서 참말로 못 불겠네


그날 저녁 엄마는 젊은 시절 꿈을 꾸는지

입가에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2018 0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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