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되고 보니
기록적인 폭염이 연일 이어지는 요즘 날씨다.
다리를 다쳐 병가를 내고 딸이 오랜만에 집을 찾아 왔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듣고 찾아온 아들 내외를 위해 더위도 잊은 채 귀한 백숙 한 상을 준비했다.
옛날에는 귀한 손님이나 제사 때나 겨우 맛볼 수 있었던 닭을, 이제는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풍요로운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자녀들에게 오랜만에 직접 재료를 엄선해서 정성껏 끓이기로 마음먹었다.
백숙에 넣을 황귀, 음나무, 대추, 마늘, 그리고 그동안 아껴두었던 능이버섯까지 냉장고를 뒤져 찾아냈다. 찹쌀과 녹두까지 미리 불려두었다.
펄펄 끓는 물에 닭을 한 번 데쳐 잡내를 없애고, 온갖 좋은 재료들을 넣어 푹 고아내니 집안 가득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에어컨 바람에도 땀이 줄줄 흐르는 더위 속에서도 오직 자녀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에 땀 흘리는 것조차 아랑곳하지 않았다. 손녀딸을 위해 미리 죽을 끓이고, 직접 담근 배추물김치와 김장김치까지 꺼내 완벽한 한 상을 차렸으니, 정말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진수성찬이었다.
그렇게 땀 흘려 차린 백숙 한 상. 자녀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했다.
특히 옛날 시어머니께서 며느리들에게 닭다리를 먼저 주셨던 기억을 떠올랐다,
나도 며느리와 딸에게 닭다리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자녀들이 음식을 '깨작깨작' 먹는 모습에 너무나 속이 상했다
. "자기 아빠처럼 손으로 닭을 들고 소금에 찍어서 입으로 뜯어 먹고 해야 해준 사람 보람도 있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젓가락으로 깔짝깔짝 찢어 먹는 폼이 눈에 거슬렸다.
결국 "아이 좀 맛나게 좀 먹어라 왜 그렇게 깔짝 거리고 먹냐?"라는 말이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우리들이 다 알아서 먹어요 먹고 있는데 왜요?"라는 반응에 더욱 속상했다. 손녀딸마저 고기를 한 점 먹더니 뱉어내고 죽도 한 숟가락 먹고는 먹지 않았다. 속으로 정말 부아가 올랐다. 이 복더위에 땀 흘려 음식 했는데,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자녀들이 백숙을 맛있게 먹지 않아 속상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이렇게 맛있는 걸 왜 안 먹은지 모르겠다"며 허겁지겁 맛있게 먹어주었다. 역시 '남편만이 내 편인 것 같다', '내가 해준 음식은 무엇이든 잘 먹는다'는 생각에 큰 위로가 되었다.
그날 저녁, 컴퓨터를 열어 우연히 보게 된 '사건반장'의 '입 짧은 며느리' 사연은 깊은 공감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며느리에게 "왜 그렇게 깨작깨작 먹냐"는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힘들어하는 사연 속 여성의 이야기를 읽었다, '아, 나도 아들과 며느리에게 똑같은 말을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도 아이를 출산하고 시어머니께 미역국 먹는 방식이나 밥 먹는 습관에 대해 잔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 "미역국에 짐이 날 때 밥 한 그릇 말고 땀 흘리며 먹어야 기미도 벗겨진다", "밥숟가락이 입으로 크게 들어가야 복이 들어온다"는 시어머니와 형님의 말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결국 다 자기 스타일대로 먹는 것인데 내가 한 음식이라고 꼭 맛있게 먹어야 되는 법은 없다'는 깨달음이 왔다. 땀 흘려 음식을 만들었다는 생색으로 자녀들에게 강요했던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정성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마음이다. 하지만 동시에 음식을 먹는 사람의 취향과 방식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자녀들의 식사 방식을 이해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소중한 지혜를 얻게 되었다. 다음에는 식탁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따뜻한 대화가 오가는 더욱 풍요로운 공간이 되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사실 음식은 맛있게 먹는 것이 보기도 좋은것임에는 틀림없다. 애기 낳고 며느리가 미역국을 깨작거리고 있는 것을 본 시어머니 마음은 애가 탓을 것 같다.
'시어머니가 되고 보니' 그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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