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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의 때에 단비로 찾아온 친구

by 진주


중학교 2학년 때 기술 시험으로 자전거 타기가 있었다.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하느라 까만 아스팔트 위에서 넘어지고 무릎이 깨지기도 했다. 앞으로 여자들도 자전거를 타야 한다며, 선생님은 한 달의 시간을 주었다. 주말마다 육촌 언니와 함께 당숙의 자전거를 몰래 끌고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다. 작은 키에 어른들이 타는 자전거는 버거웠다. 큰 돌멩이를 발판 삼아 겨우 올라타면, 뒤에서 언니가 잡아주었다. 비틀거리다 넘어지고, 무릎에서 피가 나고, 당숙에게 혼나기 일쑤였지만, 한 달이 다 되어갈 무렵 마침내 혼자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힘겹게 배운 자전거 실기 시험은 보지 않았다. 선생님은 우리들의 노력을 보셨다며 모두에게 만점을 주었다. 넘어지지 않으려 애썼던 그 시간들 덕분에 인생이라는 자전거를 타는 법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 도시락에 담긴 진심 *

중학교 3학년, 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가 있었다. 하얗고 고운 피부 얼굴도 예뻤다. 3학년 끝자락에 전학을 왔기에 서로 얼굴만 익히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 친구는 수업이 끝나면 그때당시 흔하지 않던 여자 자전거를 타고 섬진강가를 자주 왔다.

하굣길에 자주 만나 친구가 되었다.

섬진강 배를 타고 처음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 친구는 촌년이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초콜릿을 선물로 주었다. 씁쓸하면서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그 맛은 신세계였다.

섬진강에서 토요일이 되면 반바지 수영복을 입고 땡볕에서 영을 했다.

그때만 해도 좋은 시절이었다.

우리들 모습을 보고 남학생들이 모자를 푹 눌려 쓴 채 다른 길로 다녔다.

친구는 몸이 허약해 교련 시간이나 아침조회 시간에 자주 쓰러졌다. 그럴 때마다 조퇴를 하고 내게 도시락을 주고 갔다. 나는 먼 거리 학교 다니느라 삼교시 정도 되었을 때 거의 빈 채로 가 되었다. 쉬는 시간마다 도시락을 꺼내서 먹었기에~~

자주색 도시락통을 열자 달걀 프라이가 덮어져 있었다. 부잣집 딸이니 당연히 좋은 쌀로 지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힘없이 흩어지는 쌀밥은 정부미였다. 친구를 나와 다른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 친구 아버지는 우리 지방에서 고아원을 운영했다. 그들과 똑같은 쌀로 차별하지 않고 자녀들에게도 도시락을 싸준 것이다.


* 삶의 빚을 진다는 것 *

졸업 후 십여 년이 흘렀다. 친구는 그림을 잘 그렸다.

미대에 들어가서 캠퍼스 커플로 의사와 결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 교회에서 친구를 다시 만났다. 변함없이 고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몸이 허약했던 친구는 건강해졌다.

창원에서 살고 있다며 친구가 나를 자기집으로 초대를 했다.

가서 보았더니 프로 가정주부가 다 되어 있었다.

집에서 삼십 대 초반인데도 된장. 간장, 고추장을 담가 먹고 있었다.

몇 년 후 우리 집 사업이 부도가 났을 때, 그 소식을 들은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너랑 나랑 어떤 사이인데, 힘들 때 서로 돕고 살아야지." 지금도 큰돈이지만 30여 년 전에는 훨씬 더 컸을 '백만 원"을 건네주었다.

그녀의 도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춘기 자녀들이 좋아하는 명품 옷도 가끔 사서 보내주었다.

97세 된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소식을 듣고 가끔 보리굴비를 보내주었다. 남편의 간염 치료비가 걱정될 때마다 "빨리 치료받자, 내가 병원비 보탤게"라며 아우성을 쳤다.

갚으려고 할 때마다 친구는 한사코 거절했다. "주님이 잠시 맡겨주신 것을 필요에 의해 흘려보내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주변의 어려운 친구들을 돕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고 조용히 실천하고 있었다. 자신의 자녀 결혼식은 스몰 웨딩으로 치르고, 부모님 장례식 조의금도 받지 않는 친구였다. 베푸는 삶으로 가득 차 있었다.


* 함께 가는 인생이라는 자전거 *


자전거를 배울 때 뒤에서 잡아주던 언니처럼, 인생의 고난 앞에서 넘어지려 할 때마다 늘 붙잡아 주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의 고난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아파해 준 친구 있다는 게 가장 큰 복이다.

"잘 나갈 때는 함께할 사람이 많지만, 곤궁할 때 함께할 친구는 드물다"라는 세상의 인심이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단비 같은 친구 덕분에 힘든 고비마다 살아왔다. 나도 그 친구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의 곁에서 묵묵히 손을 잡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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