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의 계절 대를 잇는 사랑

by 진주


소제목 : 감나무 아래에서 배운 유산과 기도의 씨앗


창문이 열리자 살짝 언 홍시 하나가 훅 들어왔다. 베란다로 통하는 부엌문 곁에, 우렁각시처럼 언니는 가끔 먹을 것을 두고 간다. 이번에는 시골 조카가 보내준 장두감이 홍시가 되자 창문으로 슬며시 넣어준 것이다. 살짝 얼어 아이스크림처럼 차고도 달콤한 홍시를 먹고 나니, 밥을 거른 허기보다 마음이 먼저 넉넉해졌다.

모든 과일이 귀하던 시절, 다행히 우리 마을에는 감나무가 제법 많았다. 특히 우리 집 마루에서 훤히 보이던 감나무 밭은 증조할아버지께서 심어 놓으신 것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감이 열리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지만, 뾰족 감, 넓적 감, 대봉, 물감 등 다양한 감들은 그분이 남긴 유산처럼 가을을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우리 집 뒤뜰에도 세 그루의 감이 장독대 옆에서 사계절의 풍경을 만들어주었다.


봄이 오면 앙상하던 가지마다 연한 새순이 돋았다. 감나무 밭 옆 장동 할머니네 초가지붕 위에도 연둣빛 잎이 수를 놓듯 펼쳐졌다. 잎이 넓어질 즈음이면 연한 주황빛 감꽃이 피었는데, 떨어진 감꽃은 떫지만 긴긴 봄날 심심풀이 먹거리였다. 바람 부는 날이면 우리 집 뒤뜰에는 감꽃으로 꽃길을 만들었다. 장독대에 떨어진 감꽃을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녔다.

여름이 되면 감은 어느새 굵어졌고, 벌레 먹은 감이 땅에 떨어지면 개미들이 줄을 지어 몰려들었다. 며칠 지나면 땡감에도 단맛이 돌기 시작했는데, 개미들은 그 맛을 미리 알고 찾아온 듯했다.


가을이 되면 빨갛게 익은 감나무가 우리 집에 풍요를 안겨주었다. 감은 먹을거리였고, 때로는 학자금이기도 했다. 철마다 절구통 위에 걸린 감나무 밭 열쇠를 들고 가면 배불리 채울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늦은 봄에는 노지딸기가 검붉게 익었고, 울타리에는 주황빛 산딸기가 달렸다. 여름엔 감나무 그늘에 가려 빛을 덜 받았지만, 포도도 제법 익어갔다. 벌써 주먹만 해진 감이 홍시가 되어 땅에 떨어지면, 성한 부분만 골라 먹어도 달달한 맛이 참 좋았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감 따기가 시작됐다. 장대 끝을 벌려 높은 가지를 꺾어 감을 따고, 삼촌들은 원숭이처럼 나무에 올라 허리에 망태를 차고 감을 땄다. 망태가 가득 차면 새끼줄로 묶어 내려보냈다. 흠집 없는 홍시는 시장으로, 단단한 감은 공판장으로 나갔다. 미리 익어버린 홍시는 아이들 차지였다. 집집마다 감나무가 많던 동네에서는 초가집 지붕 위에도 감이 주렁주렁 열려, 가을이 꽃처럼 피어 있었다.


수분이 많은 감은 오래 두기 어려워 곶감으로 말렸다. 꼬챙이에 꿰어 말린 것을 ‘곶감’이라 했고, 쪼개 말린 감은 ‘감고지’, 즉 감말랭이였다. 약이 귀하던 시절, 아이들이 설사를 하면 곶감을 다려 먹였는데, 타닌 성분이 효험이 있다는 것을 조상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밤새 눈이 내려 하얀 지붕 위로 참새들이 날아다녔다. 매서운 추위에도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계절이었다. 냇가에는 얼음이 얼었고, 손재주 좋은 시골 남학생들은 판자로 자작 스케이트를 만들어 겨울 내내 탔다. 무엇이든 잘 만들던 오빠는 동전에 새긴 거북선까지 만들어냈으니, 스케이트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엉덩방아를 찧어가며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물기 어린 스케이트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고드름이 되었다.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이던 안방 문을 열면, 곰방대로 봉초를 태운 연기가 굴뚝처럼 피어올랐다. 방 한가운데 보물처럼 놓인 화로 위에는, 놋그릇에 담긴 얼음 홍시가 몸을 녹이고 있었다. 제사 때 쓰려고 시렁에 올려 두었던 감이 추위에 얼어 아이스크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할머니는 몇 번이나 혀를 차셨지만, 그 얼음 홍시는 결국 우리들 차지가 되었다.


이제는 지나간 시절이지만, 홍시만 보면 여전히 감나무 밭이 떠오른다.

나이가 들수록, 감나무만 심어 두고 열매는 보지 못한 채 떠나신 증조할아버지의 마음이 크게 다가온다. 씨앗은 심었지만 단맛은 보지 못했던 그분처럼, 나 또한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 자주 생각하게 된다.

감은 철마다 옷을 갈아입고 해마다 열매를 맺지만, 결국은 썩어 사라진다. 물질적인 유산을 넉넉히 남겨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나는 가장 귀한 것 하나를 물려주려 한다. 바로 썩지 않는 신앙의 유산이다. 감나무가 깊이 뿌리내려 해마다 열매를 맺듯, 내 기도의 씨앗이 자녀들 마음에 심겨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뿌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험한 세상 넘어질 세라, 사랑 때문에 울먹일 세라” 염려하던 어머니의 마음처럼, 나는 오늘도 자녀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의 삶이 눈 오면 눈을 맞고, 비 오면 비를 맞는 감나무처럼 고단할지라도, 하나님 안에서 단맛을 내는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자녀들이 삶의 어려움 앞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나는 신앙이라는 가장 확실한 유산을 남기고 가려한다. 할아버지의 감나무가 우리에게 풍요를 주었듯, 내 기도는 후손들의 영혼에 가장 풍성한 먹거리가 되기를 바라면서.

나훈아의 ‘홍시’를 흥얼거리면, 화롯불 위 놋그릇에서 얼음 홍시가 짐을 풀던 그 따뜻한 겨울날이 떠오른다.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어머니의 사랑과 할아버지의 유산, 그리고 내가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신앙의 마음이 모두, 가장 잘 익은 홍시처럼 달고 귀하게 느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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