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되고 보니, 그때 그 매운탕 맛을 알겠네
굵은 빗방울소리가 하루 종일 들렸다.
기와집 물받이 함석에서도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졸졸졸 노래 부르며 흐르던 시냇물도 갑자기 내린 폭우로 순식간에 흙탕물이 되어 다리 밑을 무섭게 휘돌아 나갔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조굴탱이로 넘실넘실 거리며 흘러가는 물살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멀리 보이던 섬진강이 불어난 물로 바로 코앞에서 넘실거렸다.
그러나 하루만 지나면 도랑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의 평온함을 되찾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도랑 한가운데 자리 잡았던 풀밭이 사라지고, 세차게 흐르는 물살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밀대 모자를 쓰고 아버지의 커다란 와이셔츠를 원피스처럼 길게 늘어뜨린 채, 대나무 간짓대로 만든 낚싯대를 던졌다. 폼은 제법 그럴듯했지만 피라미 한 마리 낚지 못했다. 파리를 잡아 낚싯바늘에 꿰고 있는 나를 보며 할머니께서 한마디 하셨다.
“가시내가 동네 한가운데서 지랄하고 자빠졌네. 니그 에미 바쁜디 집안일이나 거들면 좋지만은!” 찰진 욕을 한 바구니 쏟아내셨지만, 그 목소리엔 정이 담겨 있었다.
막내 작은아버지는 집에 오실 때마다 도랑에서 피라미와 미꾸라지, 징거미를 잡아 오셨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풀어 칼칼한 매운탕을 냄비 가득 끓여내셨다. 석양이 빨갛게 타오를 때면 섬진강에는 갈피리 떼가 뛰어올라 은빛 장관을 이루었다. 방학 때 집으로 내려온 오빠들을 따라 섬진강에서 갓 잡아 올린 은어를 깻잎에 싸 먹던 기억이 새롭다.
멋모르고 받아먹었던 알싸한 소주 한 잔에 은어 회를 곁들이면 입안 가득 향긋한 수박 냄새가 진동했다.
운명이었을까. 나는 같은 면에서 살고 있는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시댁은 양조장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종곡실에 누룩만 띄워놓고 틈만 나면 투망을 들고 섬진강으로 나갔다. 그때만 해도 섬진강은 일급수에서만 산다는 은어가 지천이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제 자리를 지키지 않고 강으로 나가는 게 못마땅해 주조장을 드나들며 잔소리를 하셨다. 하지만 막상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애비 온갑다. 너는 웃으면서 맞이해라" 하시며 슬리퍼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대문간으로 나가셨다.
남편은 양동이 가득 찬 은어와 갈피리를 손수 샘가에서 다듬고, 넉살 좋게 웃으며 부엌으로 밀어 넣었다. 어머니의 화난 기색이 보이면 댁호를 부르며 너스레를 떨었다. "유상떡, 맛나게 좀 끓여주쇼잉!"
"내가 왜 끓여주냐? 니그 예펜네 보고 끓이라 해라!" 시어머니는 짐짓 퉁명스럽게 말씀하셨지만, 어느새 곤로에 불을 붙이고 큼지막한 냄비를 올리셨다.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적당히 풀어 갈피리를 넣고 끓이는 동안, 뒤안 텃밭에서 여린 상추를 한 소쿠리 뜯어 오셨다. "상추가 참말로 여리디 여리고 보드랍다 손끝으로 살살 씻어오니라."
매운탕이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쯤 땡고추와 파, 마늘을 넣고 마지막에 상추를 듬뿍 얹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인근 학교와 농협에 다니던 시숙님과 형님, 조카들까지 모이면 동그란 밥상은 금세 비좁아졌다. 결국 상을 하나 더 따로 놓아야 할 정도였다. 상추의 숨이 죽자마자 시작된 식사 시간, 매운탕 냄비엔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 많던 상추는 눈 깜짝할 새 사라지고 바닥엔 빨간 국물만 자작하게 남았다. 우리 집 개 ‘메리’도 그 맛을 알았을까.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주면 메리는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빈 그릇까지 싹싹 훑어 먹곤 했다.
은어 튀김도 빼놓을 수 없는 별미였다. 튀김가루가 없던 시절이라 밀가루에 막걸리를 부어 대충 휘휘 저어 반죽 옷을 입혔다. 끓는 기름에 은어를 넣으면 '자글자글' 소리와 함께 하얀 기포가 퍼지며 노릇노릇 튀겨졌다. 뼈째 씹히는 바삭한 은어 튀김은 수박 향이 입안에 감도는 최고의 호사였다.
여름철 매운탕을 끓일 때면 시어머니는 돌아가신 시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고을에서 알아주는 낚시꾼이셨던 시아버님은 날마다 투망으로 양동이가 넘치게 은어를 잡아 오셨다고 한다. 그러면 회도 뜨고 튀김도 해서 온 동네 이웃들과 넉넉히 나누어 먹었다는 이야기였다. 섬진강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을 따라 우리 가족의 웃음소리와 칼칼한 매운탕 냄새, 그리고 은어의 수박 향기가 오늘도 기억 너머에서 아련하게 전해온다.
그때 남편은 젊은 기운에 양조장 일은 종업원들에게 맡겨두고, 시간만 나면 투망을 오토바이에 싣고 섬진강으로 내달리곤 했다. 그런 아들을 보며 시어머니는 날마다 잔소리를 하셨지만, 결국 곤로 앞에 앉아 다시 불을 붙이셨다. "네 예펜네 보고 끓여달라 해라" 하시던 그 퉁명스러운 뒷모습은 사실 아들에 대한 원망보다 지독한 사랑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나 또한 시어머니가 되고 보니, 그때 그 매운탕 국물보다 더 진했던 어머니의 애달픈 마음이 비로소 보인다. 그 잔소리는 밖으로 도는 아들에 대한 걱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먹이고 싶은 어미의 마음이 뒤섞인 고백이었으리라. 상추 한 소쿠리 툭 던져 넣으며 아들의 넉살을 받아주시던 그 너른 마음이 오늘따라 섬진강 물결처럼 그립다.
* 어머니 기일이 훌쩍 넘어갔다.
크리스마스 전날인데~~
사진
호곡리 사람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