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 주머니에 우러나는 그리움

by 진주


올해는 천수무를 사서 동치미를 세 번이나 담갔다. 김장 전에 담갔던 첫 통은 어찌나 맛있게 익었는지, 이웃과 나누다 보니 금방 바닥이 보였다. 어릴 적 입맛이 그리워 끼니때마다 꺼내 놓았더니, 남편과 나는 사이다보다 톡 쏘는 그 맛에 반해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시원하게 들이켰다.

한 통이 금방 비워질 것 같아 다시 무 두 단을 사서 동치미를 담갔다. 내게는 동치미를 담글 때마다 꺼내 드는 보물이 하나 있다. 바로 양념을 넣는 ‘시야(거즈) 주머니’다. 십여 년 전 여름휴가 때 형님 댁을 방문했을 때였다. 중국산 모시로 옷을 짓던 형님은 자투리 천으로 주머니 몇 개를 꿰매어 내미셨다.

“어이 동서! 별거 아니지만 동치미 담글 때 필요할것이네 가져가소.”

그렇게 건네받은 주머니를 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소중히 쓰고 있다. 마늘, 생강, 청각을 넣어 입구를 똘똘 감아 항아리 밑바닥에 넣어두면, 알싸한 양념 맛이 은은하게 우러나온다. 친정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주머니가 낡아 터질까 걱정하던 차에, 형님은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 때맞춰 새 주머니를 지어주셨던 것이다.

세 번째 담근 동치미 통을 헐었다. 옛날에는 항아리에 담아 뒤안 장독대 옆 땅속에 묻어두었지만, 지금은 며칠 밖에서 익힌 뒤 김치냉장고에 넣으면 맛이 변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무가 유독 많았는지 국물을 뜰 때마다 무가 걸렸다.

무 세 개를 꺼내 채를 썰었다. 간이 알맞게 배어 따로 염기를 뺄 필요도 없었다. 고춧가루를 넣고 조물조물 무치다 조선장 한 술, 마늘과 참기름을 넉넉히 넣고 깨를 솔솔 뿌렸다. 이 귀한 맛을 혼자 보기 아까워 언니 집에 한 접시 보내고, 퇴근한 아들에게도 작은 유리그릇에 한 가득 담아 보냈다.

점심을 과일로 때운 터라 싱건지 무침을 보니 절로 군침이 돌았다. 갓 지은 밥 한 공기에 무침 한 젓가락을 올리니 그야말로 향수에 젖는 저녁 밥상이었다. 문득 시야 주머니 속에서 우러나는 양념들을 보며 형님 생각이 간절해졌다.




1월 끝자락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곧 기일이 돌아온다.

형님은 참 정이 많은 분이었다. 여름휴가 때 찾아가면 밭일로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우리 목소리가 들리면 단걸음에 달려 나와 “밥 묵고 가소!” 하며 부엌부터 들어가셨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기어이 밥 한 그릇 먹여 보내야 직성이 풀리셨다. 나중엔 죄송한 마음에 아예 밥을 먹고 찾아뵀을 정도였다.

무엇이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하시던 형님은 낫으로 부드러운 호박잎을 툭툭 따서 비료 포대에 담아주셨고, 된장국에 넣어 먹으라며 바가지 가득 풋고추를 따오셨다. 그것도 모자라 텃밭 고구마 줄기를 따다 된장에 무쳐 상에 올리셨는데, 그 고소한 맛에 한 접시가 금방 동이 나곤 했다. 헛간에 매달아 둔 주황빛 양파와 야무진 마늘까지 한 보따리 챙겨주시던 형님의 손길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동치미 무를 먹으며 겨울철 떠나간 그리운 얼굴들을 하나둘 떠올려 본다. 환갑도 넘기지 못한 채 떠나신 시숙님. 주윤발을 닮으셨던 시숙님은 오토바이가 흔하지 않던 시절 부지런히 읍내를 오가며 가족들의 빈 곳을 채워주셨다. 겨울방학이면 조카들에게 돈가스를 사주셨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자녀들 사이에서 즐거운 추억으로 회자된다. 1월에 천국 가신 친정어머니, 그리고 조청 고는 단밥을 만들다 쓰러지신 새터 형님까지…. 설이면 쑥 인절미에 달콤한 조청을 내어주시던 그 따뜻한 맛을 이제는 더 볼 수 없다.

시야 주머니를 볼 때마다 형님들과 나누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엄격한 종갓집으로 시집와 시어른 몰래 파마를 하고는 수건으로 감추고 다녔다던 이야기, 뾰족구두를 보따리에 숨겨 나와 동네 어귀에서 몰래 갈아 신고 읍내에 나갔다던 이야기들. 네 동서가 모여앉아 박수를 치며 깔깔거렸던 그 추억들도 이제는 형님과 함께 땅속에 묻혔다.

하지만 오늘 내가 무친 이 동치미 무침 속에는 형님이 주신 주머니의 정성이, 그리고 우리네 그리운 옛이야기가 여전히 아삭하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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