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시간이 머물던 자리
나보다 한 살 많은 사촌 언니와 마당에서 고무줄을 뛰며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는데, 엄마가 우리를 부르셨다.
"아이, 봄나물이나 가서 캐오니라. 골안이나 애똥밭 언덕배기에 쑥이랑 달롱개가 삐죽삐죽 나왔을랑가 모르것다, 한번 가보니라."
뭉뚝한 칼과 소쿠리를 하나씩 들고 집을 나섰다. 우리 동네는 '골안'이라 불리는 깊은 골짜기에서 시작된다. 산허리를 휘감아 내려온 물줄기가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시냇물이 되고, 그 물길을 따라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흙담을 맞대고 있었다.
방앗간 옆에 사는 남원 할머니를 만났다. "봄바람이 찬디 어딜 가냐?"
"우리 엄마가 쑥이랑 달롱개 캐오라고 했그만이라" "
이잉, 또랑가상에 버들강아지 핀 지 며칠 됐응께 쑥도 나왔을 것이여."
할머니는 걸레가 담긴 세수대야를 들고 또랑가로 가셨다.
골안에서 내려온 물은 졸졸 소리를 내며 산허리를 돌아 마을로 흘렀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따뜻한 바람이 들락날락하더니, 어느새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길게 뻗은 싸리꽃은 연분홍 진달래 무더기 속에서 더 하얗게 빛났다. 정작 봄나물은 눈에 잘 띄지 않아, 우리는 꽃만 꺾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낮은 언덕에는 하얀 솜털을 두른 진자줏빛 할미꽃이 고개를 숙인 채 한 잎 두 잎 피어나고 있었다. 동화책 속 꼬부랑 할머니가 떠올라 괜히 마음이 쓰였다.
훗날 생각해보니, 비바람을 견디며 꼿꼿이 서 있는 그 모습이 어머니를 닮아 차마 꺾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파란 풀잎 사이로 통통하게 알이 밴 삐비가 보였다. 쏙쏙 뽑을 때마다 풋내가 났고, 한 가닥씩 벗겨내자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입에 넣고 오물거리니 풋내와 함께 단맛이 돌았다. 한 주먹도 안 되는 봄나물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루 밑에 굴러다니던 빈 병을 찾아 싸리꽃과 진달래를 꽂아 앉은뱅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어머니는 시래깃국에 쑥을 넣어 국을 끓이고 계셨다. 쑥향기가 부엌 가득 퍼졌다.
저녁밥을 먹다 어머니가 물었다."새또랑 밭에는 봄나물이 제법 올라왔등만, 어딜 갔다 왔냐?""나물은 안 보이고, 진달래가 겁나게 피었드만. 할미꽃도 쌔부렀대 여그 저그 .""요새 비암 나올 땐디, 조심해라."
보리와 밀이 누렇게 익어갈 무렵, 밀대모자를 쓴 이웃 아저씨들이 논밭에 엎드려 지나갈 때마다 들녘이 환해졌다. 보리가실이 돌아온 것이다. 어머니 머리에 쓴 수건에도 보리가시가 장식처럼 얹혀 있었다.
저녁 내내 타맥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곧 보리방아, 밀방아를 찧을 때였다. 골안에서 내려오면 첫 번째 물레방아와 방앗간이 나란히 있었다. 발통기 돌아가는 육중한 소리가 "텅, 텅, 텅" 울리며 마을을 흔들었다. 그 소리는 겨울을 견뎌낸 생명의 소리 같았다.
지게와 리어카에 곡식을 싣고 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비어 있던 독에 보리쌀과 밀가루가 채워졌고, 우리 집 뜰방에도 보리가마니가 쌓였다.
어머니에게 봄은 단순한 계절의 시작이 아니었다. 한 해를 살아낼 힘이 다시 채워지는 시간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찬 바람이 문풍지를 울리면, 마을은 산판 허가를 받아 벌목 준비로 다시 분주해졌다. 윤 씨 아저씨와 동현이 오빠, 옆집 아재, 택이 오빠, 쌍둥이 아버지가 함께 복숭아골로 올랐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무를 썰어 생채를 만들고 갈치를 가리불(석쇠)에 구워냈다.
"바쁜 날인디 너도 부엌일 좀 해라잉."
마른 고추에 멸치젓을 붓고, 고추가 부드러워지면 마늘과 식은 밥 한 공기를 넣어 확독(돌절구)에 갈았다. 나도 도구대를 잡고 한몫 거들었다. 곱게 간 양념에 미리 절여둔 배추를 버무리고, 애똥밭 언저리에서 따온 잰피(초피)를 넣어 김치를 담갔다.
어머니는 돼지 등뼈를 푹 고아 우거지를 듬뿍 넣은 해장국을 끓였다. 산일을 마친 이웃들이 한 상에 둘러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먹었다. 숭늉까지 마시고 나면 뜨끈뜨끈한 방에서 졸음이 쏟아졌다. 얼굴에 달라붙어 간지럽히는 파리를 쫓느라 자기 뺨을 때리고 나서 잠이 깨어 멋쩍게 웃었다. 날씨가 추워지자 천장에는 파리들이 까만 콩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그해 가을, 옆집 순이가 태어났다. 방아를 찧기 전이라 쌀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산모의 첫 국밥만은 흰쌀밥이어야 했다. 옆집 할머니가 쌀 한 되를 꾸러 왔을 때, 갓 지은 고슬고슬한 쌀밥과 보드라운 숙지나물을 넉넉히 챙겨 할머니 손에 들려보내셨다. 부엌문을 나서던 할머니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푸념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툭 던지셨다. "우리 메느리랑 아들은 눈만 마주쳐도 애기가 생긴갑어."
먹을 것이 넉넉지 않던 시절, 그 말에는 걱정과 웃음이 함께 섞여 있었다. 그날부터 산판 일이 끝날 때까지 우리 집 부엌에서 끓인 밥과 국은 매일 담벼락을 넘어 산모의 방으로 전해졌다.
나눔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끓는 솥에서 밥 한 그릇 더 퍼내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겨울이 깊어지면 어머니는 쌀밥에 엿기름을 넣어 식혜를 했다. 감미료만 빼내어 조청을 고았다. 밤새 장작불을 지피며 무쇠솥을 지키던 어머니의 얼굴은 불빛에 발갛게 달아올랐다. 이웃들이 모여 등이 휘도록 손을 맞잡고 커피색 조청을 늘이자, 구멍이 송송 뚫린 하얀 엿이 되었다. 찬 바람에 굳혀 잘라낸 엿은 '파삭'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그 엿에는 사계절의 노동과 이웃의 정, 그리고 어머니의 고단함이 단단히 굳어 있었다.
마루에 누워 바라보던 고달리의 앞산은 계절마다 색을 바꾸었고, 그 아래서 어머니는 늘 같은 자리에서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살아내셨다. 우리가 누린 평범한 일상은 모두 어머니의 굳은 손과 시간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세상의 시계는 빠르게만 흘러가지만, 고달리에서의 어머니의 시간은 늘 느리고 깊었다. 자식을 향한 마음을 한 숟갈 더 얹고, 이웃의 허기를 먼저 살피느라 어머니의 하루는 늘 뒤쪽에 머물러 있었다. 고달리의 사계절은 시냇물처럼 흘러가 버렸지만, 그 바닥에 차곡차곡 가라앉은 어머니의 손길과 숨결은 이제도 우리 삶의 밑바탕에서 조용히 힘이 되어 흐르고 있다.
#어머니 #추억 # 시골 # 밥상 #그리움 # 고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