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한 마리가 일생으로 차려낸 고귀한 성찬
제목 어머니의 닭 국물 항아리'
"한 생명의 희생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았던 마음, 마지막 손님까지 항아리를 들여다보며 기다리던 어머니의 넉넉한 인심. 닭국물 떡국 한 그릇에 담긴 그리운 시절의 기록입니다. “
설날이 다가오면 마당 한쪽 거름 간에는 주황빛 닭 털이 눈송이처럼 수북이 쌓였다. 꼴망태 안 암탉의 품에서 태어나 사계절을 우리와 함께 지내고, 끝내 기꺼이 제 몸을 내어준 흔적이다. 봄철 보리밭매기를 마치고 망태 가득 풀을 담아와 마당에 널어두면 집안 가득 향긋한 풀냄새가 진동했다. 어미 닭의 "꼬꼬꼬" 소리로 길을 삼아 풀섶을 헤치며 따라다니던 병아리는 어느덧 늠름한 어미 닭이 되어, 설날 아침 가족과 손님들을 위한 거룩한 양식이 되었다.
그 시절 우리 집 설날 떡국 국물은
토종닭이었다. 집안의 크고 작은 행사마다 제 몸을 내어주는 제물이 되었다. 며칠 전부터 할머니께서 점찍어둔 닭을 셋째 오빠가 굵은 철사로 만든 갈쿠리로 잡았다. 어머니는 살코기는 간장과 참기름에 고소하게 무쳐두셨고, 남은 뼈는 도마 위에 올렸다. 그때부터 난타 공연 같은 칼질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뼈마디가 밀가루와 섞여 가루가 될 때까지 내리치던 그 소리는, 설이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가장 친숙한 리듬이었다. 거친 뼈 조각들이 튀지 않게 밀가루를 솔솔 뿌려서 보드랍게 다독이고, 육수를 끓이는 동안 풀어지지 않도록 찰기를 더해주었다. 마치 빳빳하게 풀 먹인 이불 홑청을 다듬잇돌 위에 올리고 방망이질을 하는 것과 같았다. 어머니의 칼질에는 정갈한 정성이 배어 있었다.
그렇게 곱게 다져진 뼈는 완자처럼 빚어져 무쇠솥 안에서 진한 육수를 뿜어냈다. 하루 종일 고아낸 국물을 조선간장으로 짭짤하게 간을 맞춰 단지에 담아두면, 보름까지 이어지는 손님맞이도 걱정이 없었다. 어머니는 단지 옆을 떠나지 못하셨다. 아직 다녀가지 않은 친척들을 손꼽아 헤아리며 닭국물 항아리를 수시로 들여다보셨다. 저 멀리 동녘굴에 사시는 상할머니 외손주까지 찾아와 세배를 올려야만 어머니의 긴 '설 잔치'도 비로소 끝이 났다.
손님상에는 떡국과 함께 귀한 간식도 올랐다. 대 석작 안에는 언 동태 짝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쑥인절미가 숨겨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정성스레 다시 쪄내어 보드라운 콩고물을 입혔다. 닭은 제 몸뿐만 아니라 생전에 낳아둔 알까지 지단이 되어 상 위에 올랐으니, 노랗고 하얀 지단이 올라간 떡국 한 그릇은 닭 한 마리가 일생을 바쳐 차려낸 성찬이었다.
철없던 시절의 나는 완자 속 뼈를 고기인 줄 알고 덥석 물었다가 딱딱한 촉감에 뱉어내며 투덜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가난한 시절, 자식들에게 뼛 속의 영양가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었던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요즘은 온갖 약재를 넣어야 겨우 맛을 내고 있다. 하지만, 마당의 햇살과 바람을 먹고 자란 옛날 토종닭은 그 자체로 이미 진하고 구수한 떡국의 맛을 한층 더 살려주었다. 편리함과 맞바꾸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순히 '옛날 맛'뿐만이 아닐 것이다.
생활이 편리하고 좋아진 세상이 되어 온갖 양념으로 맛을 내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에 비해 사라진 맛들이 너무 많다. 국물 한 그릇으로 친척들과 이웃을 대접하던 넉넉한 인심이 우리가 살아왔던 농촌이 사라져 가니 설 문화도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다. 그저 60,70년대를 살았던 우리 세대들의 추억 속에 자리고 잡고 있을 뿐이다.
TV 속 토종닭 한 마리를 보다 문득,
그 진하고 그리운 떡국 한 그릇이 간절해진다.
#설날 #어머니 #토종닭 #추억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