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궁화 호를 타고

오랜만에 반쪽이랑 기차여행을!

by 진주


여름휴가다. 언니네랑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 먼저 출발했다.

오랜만에 기차 타고 여유 부리며 남편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지금 어머니께서 사셨던 시골집에는 채송화, 봉선화 꽃이 피어 있으려나


어머니 살아생전 마지막 김장하는 날이었다.

남편, 아들, 딸, 사위, 언니, 조카딸 부부까지 총출동해서 김장을 도와주었다.


식구들이 많이 모이니 어머니도 다니시던 주간보호센터 가지 않고 집에 계셨다.

식구들이 많이 모이니 기분이 좋으셨다.

젊은 시절 몇 백 포기 김장 하셨던 분이라 백세 연세지만, 칼과 도마를 찾으셨다.

엄마! 일 할 사람 많아서 그냥 구경만 하시고 안 해도 돼했더니 니그들 보다 내가 무채도 훨씬 잘 썬다.

옛날 무시 밥 해 먹느라 새벽부터 무시 한다라이 썰었다.

반찬 없을 때도 무시 나박나박 썰어서 고춧가루로 색깔 입혀서 조선장 치고 마늘 몇 알 툭툭 깨서 넣고 큰 멸치랑 조려놓으면 머슴들 술안주 감으로 좋았다.

어서 도마와 칼 가져오니라.


그냥 챙겨서 드리자 언니가 한마디 했다.

연세 드신 부모님께 소일거리 드려야 소외감도 느끼지 않는 거라고, 요양 보호사 공부할 때 배웠어도 실천은 언니가 했다.


엄마는 이까짓 거 혼자 다 썰 수 있으니 너희들은 다른 거 해라 하시며 의기양양하게 칼을 드셨다.

그러나 무 한 개 써는 시간이 오래오래 걸렸다. 칼자루 힘 없이 내려놓고 '맘은 할 것 같은디 아이고' 하시더니 그 자리에 누워버렸다.

여름부터 부쩍 건강이 좋지 않았다.

주무실 때 보면 얼굴이 백지장 같았다.


김장의 꽃은 수육이다.

푸짐하게 삶아서 갖가지 양념으로 버물린 김장김치와 수육으로 양볼이 터지게 먹고 있는데 어머니는 드실 게 없었다.

김장하는 날이니 대구매운탕과 수육만 준비하고 따로 엄마 반찬은 미처 하지 못했다.


오래 사용하다 보니 아랫니가 빠져서 틀니도 교체 중이라 고생하던 였다.

지금도 어머니 생각만 하면 이것 말고도 두고두고 걸리는 게 많다.


각자 흩어살던 형제들이 여름휴가 때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빈집으로 모이는 날이다.

몇 년 전 오빠들이 도배를 깨끗히 했는데 이층에서 누수가 되어 새로운 벽지가 골동품 그림처럼 되어버렸다.


비록 어머니가 살고 계시지 않은 집이지만 형부가 도배를 자청하자 조카도 도와주겠다고 한다.

옆에 사는 막내 오빠, 올케 언니도 서로 도와 집을 깨끗하게 해 놓았다.


여름휴가만 되면 각가지 푸성귀 준비해 놓고 인자 니그들이 알아서 해 먹어라 하시던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금 남원이란다.

곳 도착인데 오늘은 그동안 뵙지 못했던 순천 형님댁 먼저 찾아가는 중이다.

벌써 곡성역이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차창밖이 온통 푸르다.

백중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나락 꽃이 금방 피겠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머니와 재봉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