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밀과 수제비

by 진주

동네 시장 근처에 유명한 칼국수 집이 있다.

언제나 점심시간이 되면 머리에 서리가 앉은 듯 희끗한 어르신들이 줄지어 계신다.

대를 이어 4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변함없이 10시에 문 열어 4시에 닫는다. 기계를 쓸 법도 하지만 반죽은 여전히 손으로 치댄다. 홍두깨로 밀어 칼로 썰 때는 착착착 일정한 칼질 소리가 한 석봉 어머니 같다.

구십이 가까운 연세이지만 한 길을 쭉 걸어왔으니 장인이나 다름없다.

문 닫고 싶어도 같은 골목에서 생사고락 같이 했던 이웃들 사랑방이라 쉽지 않다.




뒤뜰 마루에 걸터앉아 바가지 물에 동동 띄워 식혀 먹었던 수제비가 생각난다. 어머니 손맛과 고향집 마루가 생각나는 추억의 음식이다. 인두질하듯 정수리를 태우던 복더위에 떼 지어 울던 매미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할 때였다.

읍내 사시는 아버지께서 농사일이 궁금했는지 갑자기 본가에 오셨다.

풀 먹여 다림질한 빳빳한 모시옷 입고 자전거를 타고 당 한바퀴를 도시더니

마당 한쪽 담밑에 바쳐놓았다.

갑자기 오신 아버지가 어려운 손님 같아 ‘점심을 뭘 로 할까’ ?어머니는 부엌에서 허둥지둥하셨다.

할머니는 “아이! 가는 여름에는 수제비 잘 먹느리라. 매운 고추 썰어서 알캐하니 양념장 만들어서 간하면 된다.” 하시고는 텃밭에서 애호박, 여린 풋고추, 실파 등 양념거리를 장만해 오셨다.




할머니께서는 방아 찧어 단지에 꼭꼭 눌러 담아 놓은 밀가루를 양푼 하나 가득 꺼내오셨다. 자칫하면 벌레가 일어서 먹을 만큼 푼 다음 의식을 치루 듯 손바닥으로 꽁꽁 눌러 포대 종이로 덮고 뚜껑을 닫았다.

밀가루가 담긴 양푼에 밥그릇 하나만큼 물 부었다.

손으로 살살 뒤적이다 몽글몽글 해진 반죽을 치대다 보면 매끈매끈 하니, 반죽이 덕지덕지 묻었던 손도 깨끗해졌다.

멸치로 우려낸 육수가 끓어오르면 먼저 내가 먹을 수제비를 큼지막하게 떼어 넣고 나머지는 얇게, 말 그대로 수제비를 뜨기 시작했다.

국자로 수제비가 서로 붙지 않고 골고루 익도록 휘휘 저어주었다.




별다른 양념 하지 않아도 집에서 담근 간장으로 간 맞추고 애호박 숭숭 썰어 넣고 파, 마늘 넣으면 점심 한 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음식이 되었다. 내 몫으로 먼저 떼어서 넣어둔 큰 수제비 건더기가 익으면 꺼내서 바가지에 물 받아서 동동 띄다. 간장에 참기름 치고 매운 풋고추 얇게 썰고 파, 마늘, 깨소금 곁들여 만든 양념장을 어른들은 수제비에 넣어 드셨다.

한 여름 애호박 송송 썰어 넣은 수제비 한 그릇은 여름철 별미 중의 별미로 아버지께서도 즐겨 드셨던 음식이다.




여름철 시골에는 텃밭이 냉장고였다. 뒤뜰에는 장독대가 여름 햇볕에 반짝거리고 포도나무 두 그루와 감나무 두 그루 사이에 조그만 텃밭이 자리 잡고 있었다. 깬 잎, 풋고추, 가지, 오이, 호박, 아욱 등 어지간한 푸성귀는 다 자급자족이 되었다.

급하게 손님이 올 때도 바구니와 날이 뭉뚝한 칼 하나 들고 뒤뜰만 가면 다 해결이 되었다.

밥보다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던 나는 크게 빚은 수제비를 큰 대접에 떠서 뒤 안 마루 끝에 걸터앉아 한 입 달라고 날아온 파리를 쫓아가며, 베어 먹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보리밭 한쪽에 심었던 밀을 수확해서 동네 방앗간에서 방아 찧던 날은 눈처럼 쏟아진 밀가루가 날려 할머니, 어머니께서 눈사람이 되었다. 여름 한 철 한 끼 식사를 대신했던 밀가루는 보관을 잘해도 여름 끝자락에는 바구미가 생겼다. 가는 체에 밀가루 걸러내고 팥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었다. 읍내만 나가도 하얀 밀가루로 만들어낸 음식을 보면 보기도 좋고 고급스럽게 보였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밀가루가 보급되면서 우리 밀은 점점 사라져 갔다.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으니 여름 한철 지나고 나면 바구미도 생기고 흰색이면서도 거무스름했던 밀가루가 나중에는 푸대접받고 점점 우리 식탁에서 사라졌다.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별미로 드셨던 수제비가 바쁜 일손을 덜어 드리기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버지 이야기 하실 때마다 수제비 이야기를 빼놓지 않으셨다. 그리고 항상 이어지는 뒷말은 ‘너는 무슨 맛으로 큰 수제비 건더기를 먹었느냐’고 물어보셨다. 형제들도 모이기만 하면 놀려댔다.

굳이 맛을 이야기하자면 씹어 먹는 식감이 달랐고. 쫄깃쫄깃한 맛과 밀방아 찧던 향기가 입안에서 감도는 것 같았다.




요즘, 어린 시절 먹었던 우리 밀에 대해 관심이 커지는 것 같아 다행이다.

1만 km 대장정으로 인한 변질, 부패를 막기 위해, 수입 밀은 선적하기 열흘 전 산지에서 농약처리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밀은 여기로부터 자유롭다. 드물지만 내가 사는 곳도 우리 밀 빵집이 있어 반가웠다.

수제비 하면 떠올리게 되는 것은 가난이고, 힘들었던 시절의 상징이다. 점심밥이 어중간하면 수제비를 끓이고 밥과 함께 먹었다.

그런데 우리 가족들은 다행히 수제비를 좋아해서 배고픈 시절보다 추억이 서린 음식이다.


오늘 저녁은 애호박 썰고 풋고추 곁들인 수제비를 만들어 봐야겠다. 가족들 수제비는 얇게, 내가 먹을 수제비는 큼지막하게.


# 우리밀 # 텃밭 # 냉장고 #애호박 # 풋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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