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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김치 담던 날

열무김치와 함께 추억도 담던 날!

by 진주


어제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김치 담글래? 담아야지 근데 장마가 져서 열무, 얼갈이가 제법 비싸서 했더니 조금만 담아서 같이 나누어 먹자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서 얼갈이 다섯 단, 열무 세단, 파 한 단, 대파, 붉은 고추 등을 사 오셨다. 저녁 먹은 후 옥상에서 뭘 찾는 소리가 들렸다. 물이라 미리 다듬어서 물기 마르도록 넣어둘 빈 박스를 챙기고 있었다.

열무와 얼갈이 다듬어서 빈 박스에 풀어헤쳐 놓으니 두 박스나 되었다.




나는 김치가 조금 남았어도 감히 담을 생각도 못했다. 언니 덕분에 새 김치 담그게 되었다.

같은 집에서 사는 편리함이 이래서 좋은 것 같다. 다음날 언니 집에 내려가 보니 벌써 씻어서 소금에 반쯤 절여져 있었다.

형부 출근하시고 바로 씻어서 소금 간 해놓고, 죽도 끓여서 벌써 식어 있었다.

양파, 파는 썰어놓고 빨간 햇 고추와 같이 마른 고추도 씨를 대충 빼고 물로 씻어서 믹서기에 갈았다. 양이 제법 많은데 언니는 그동안 살림 노하우가 있어서 어깨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척척 잘 해냈다.




열무김치는 자주 뒤적리면 풋 냄새가 난다.

양념 흘러내릴 정도 만들어서 한 사발 씩 떠서 얼갈이 위에 부어주고 또 얼갈이 한 줌 놓고 차곡차곡 양념을 부어 놓았다.

어느 정도 숨이 죽으면 살짝 뒤적여 주니 양념도 골고루 베이고 간도 알맞게 잘 되었다.

언니 손저울과 눈대중으로 대충 양념을 만들었지만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맞아떨어졌다.

김치 담은 함박에 물을 조금 붓고 양념 하나 없이 흔들어 놓으니 한 대접이나 되었다.

열무 다듬을 때 나온 시래기를 삶아 놓았으니 국 끓일 때 넣으면 추어탕처럼 맛있.


김치 다 담그고 난 후에 언니랑 같이 오랜만에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웠다.

맹장 수술하고 그동안 김치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 막 버물린 김치라 색깔부터 먹음직스럽고 아삭아삭하니 적당히 매운맛이 입맛을 돋웠다.



옛날에는 콩 밭 사이사이 심어 놓은 열무로 김치 담갔다.

그러나 비가 자주 오던 해는 열무가 그대로 녹아내려 흔적 없이 사라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잘 될 때는 길쭉길쭉 솟아 오른 열무는 터질 듯이 연두 물이 올라 있었다.

밭에서 따온 햇 고추는 씻어서 물기 빠지도록 바구니에 담아 놓았다. 묵은 고추는 씻어서 봄철에 담가서 푹 삭은 멸치젓 한 사발과 장을 넣고 불려 놓았다.

식은 밥 한 공기와 마늘, 불린 고추, 햇고추

다 같이 확 독에 으득 으득 갈았다.

한 손은 절구 위에 대고 한 손은 중간쯤 잡고 돌리면 믹서기처럼 돌아 갈아지기 시작했다.

일 도와주는 삼촌들이 갈아주면 어느새 지 밥이 곱게 갈려 있었다. 확 독에서 바로 대충 간해서 씻어놓은 열무에 파 넣고 살짝 손 끝으로 버물 버물 했다.

마지막 볶은 깨 솔솔 뿌려서 고소한 냄새와 함께 상위에 올려놓았다.




여름 반찬은 별게 없었다. 밥 위에 삼베 보자기 깔고 밥이 퍼지기 전 씻어놓은 가지와 호박을 넣어 두었다. 밥 푸기 전 꺼내서 무치고 늙은 노각 무침, 고구마 줄거리 삶아서 된장에 묻혀놓으면 훌륭한 밥상이 되었다.

즉석에서 버물린 각종 채소 반찬으로 한상에 둘러서 참기름 한 방울치고 비벼 먹는 저녁밥은 임금님 밥상이 부럽지 않았다.




농촌 인구가 줄어 들어간 지금 시골에도 이와 같은 밥상은 찾아볼 수 없다.

겨우 흉내 내보지만 대식구가 모여서

참기름 병이 이 상 저 상 옮겨가는 일 없고,

그저 추억 속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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