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집 꽃밭 소박 하게 핀 나팔꽃 권중택 목사 그림
새벽이슬이 내렸다.
집 앞 냇가 한가운데 작은 풀밭이 생겼다.
새벽이슬 머금은 풀 섶 위에 베갯잇, 적삼, 치마, 고쟁이 등을 걸쳐 두고 햇볕이 내려 쬐기 전에 걷었다.
무명 홑이불 깔고 차곡차곡 개어서 발로 자근 자근 밟고 다림질했다. 전기다리미가 없던 시절이었다.
이글이글 타고 있는 숯불 담아 다리다 보면 숯덩이가 옷가지에 떨어질 때도 있다.
아침 내내 풀을 빳빳하게 먹인 베겟 잇, 홋 이불도 다려서 새로 입혔다.
고슬고슬하게 다린 적삼은 차곡차곡 벽장에 넣어 두고 모시만큼 시원한 옷은 없다며 흐뭇해하셨다.
점차 시대가 변해가면서 쇳덩이를 불에 구워 다리미 통에 넣고 일요일만 되면 토요일에 빨아놓았던 교복을 다림질해서 입었다.
집 집마다 여름 맞이 준비로 방마다 문종이 뜯어내고 파란 색깔 모기장을 부쳤다.
작년에 궤 안에 넣어 두었던 부채도 꺼냈다. 김지미. 윤정희. 남정임 씨 영화배우 얼굴이
새겨진 새 부채도 오일 장에서 사다 놓았다.
저녁 드신 후 어르신들은 부채로 훌훌 모기도 쫓으며 밖으로 나오셨다.
동네 한가운데 세워진 다리에 가마니나 비료포대를 깔고 앉잤다. 옆에서 놀고 있는 자녀들에게 부채질도 해주시고 이야기 꽃도 폈다. 아랫 다리에서는 동네 아재, 오빠들이 군대 다녀온 무용담으로 열을 올렸다.
열방의 총알을 한 구멍으로 명중시켰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게 들었다.
TV이가 없던 시절이라 도깨비불, 귀신 이야기는 항상 들어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집에 들어올 때는 뒤에서 귀신이 잡아당길까 무서워서 숨이 차도록 뛰었다.
한 여름밤, 돼지고기 짚으로 매달고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 산길 걸어오신 할아버지가 계셨다. 비틀비틀 걸어오시다 넘어지셔서 " 놔라 이놈아"! 그 자리에서 앉아서 소리소리 질러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지팡이로 할아버지 두루마기를 짚고 일어서려다 도로 주저앉았던 것이다. 이야기가 와전되어 제사 지낸 음식을 가져오니 귀신이 따라붙었다고 했다.
비가 오기 전 바람이 불 때도 나무끼리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큰 나뭇가지가 불빛도 없는데 흔들흔들할 때마다 무서웠다.
무서운 생각이 들자 도깨비불 보았다는 소리에 무서워서 집으로 도망쳐 올 때도 있었다.
다음 날 도깨비불 보았다는 정자또랑 맡은 편 산자락에 다 쓴 빗자루가 뒹굴고 있었다는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가 많았다.
집에서 사용한 물건 아무 데나 버리지 말라는 교훈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해 질 녘 냇가에서 빨래 빨 때 방망이 질 하면 복 달아난다고 하셨다.
이 모든 것이 함께 더불어 사는 옛 우리 선조들이 예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루 일과를 마친 조용한 저녁시간에 방망이 소리가 온 동네 울리면 요즘 같으면 소음공해를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처럼 아파트 층간 소음,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서 주변이 더럽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옛 선조들이 비유로 가르쳐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름철 냉장고도 없던 시절인데 돼지고기나 음식은 빨리 상할 수 있다. 그래서 귀신 이야기로 둔갑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 낮잠 한숨 늘어지게 자고 약속하지 않아도 정자 또랑으로 모였다. 수영복도 없이 작년 가을 운동회 때 입었던 다우다 빤스 하나 걸치고 물속에서 놀았다.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놀다가 햇볕에 달구어진 바위에 앉아서 귀속에 들어간 물기를 빼냈다. 배가 출출해지면 큰 바위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옷을 주워 입었다. 빤스에서는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삐꺽 삐걱 물기가 올라온 검은 고무신 신고 뜨거운 햇볕 아래서 젖은 머리를 흔들며 물기를 털어냈다.
아직 마르지 않는 고무신을 신고 쭉 미끄러지면 닳아빠진 코빼기 신발이 찢어져 발이 쑥 나와 버렸다. 이불 꿰맨 바늘로 고무신 코를 듬성듬성 꿰매어 신고 다녔다.
거뭇거뭇 포도가 익어가기 시작하면 몇몇 친구들이 모였다. 아직 채 익지 않은 포도를 몰래 따서 섬진강에 가서 먹었다.
이른 아침 벌써 포도밭을 다녀오신 할머니께서 한마디 하셨다. 어느 손목아지가 채 익지 않는 포도를 벌써 땄는지 포도막부터 지어야겠다고 하셨다.
그때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길을 가다가도 배가 고파지면 오이, 가지등 따서 먹었다.
우리 시대 놀이였지만 아무 밭이나 들어가지 않았고 그중에 아들이나 딸이 있었다. 개구쟁이들이 어느 집 복숭아 서리를 갔다. 한놈은 나무에 올라가서 복숭아 따서 던지면 밑에서 받은 놈이 있었다. 거친 복숭아를 쭉 늘어진 메리야스 밑을 묶어놓고 가슴팍으로 집어넣었다. 한참 복숭아를 따서 나무 밑으로 던진 후에 야! 그만 따도 되냐 다 찼냐? 해도 아무 말 없이 받기만 했다.
내려와 보니 눈앞에 별이 왔다 갔다 했다.
친구는 도망가고 밑에서 받은 사람이 주인이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여름방학 내내 '꽃 본 듯이 '놀아보세 노래 부르며 물속에서 헹가레 치다가 장난기가 발동을 하면 그대로 놔버렸다. 물속에서 나온 친구는 얼굴을 쓰다듬고 머리까지 쓸어 올리며 다시 우리들을 향해 물을 퍼부어댔다.
서로서로 엉덩이를 맞대고 물을 퍼댔다.
우리 동네 정자 또랑, 우리 집 포도밭 서리를 같이 했던 계집아이들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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