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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또 가고 있네

여름아! 조금만 더

by 진주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열기로 걷기도 힘들었던 여름과 이제 슬슬 작별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아스팔트 열기에 얼굴이 감홍시가 되어 들어오자마자 에어컨을 틀어대면 시원한 바람이 금방 열기를 식혀 줍니다.


요즘

거의 집집마다 에어컨이 없는 집이 없습니다. 다양하게 개발된 에어컨으로 시내버스, 택시, 지하철 어느 건물에 들어가도 요즘은 다 시원합니다. 그런데 밖으로만 나오면 상대적으로 너무 더워서 한낮에는 웬만해선 외출도 자제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에어컨 시설이 잘 되어있지만

영국에 현재 살고 계시는 분의 글을 읽어보니 에어컨이 설치된 집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 이상기후로 영국도 너무 더워서 앞으로 집집마다 에어컨을 설치하고 가동 하게 되면, 이상기후가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염려한 내용이었습니다.


여름 하면 그래도 떠오르는 게 우리 세대들은 부채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일장이 돌아오면 동네 아줌마들은 제일 깨끗한 옷을 차려입고 풋고추, 깬잎, 호박잎, 등 돈이 될만한 푸성귀를 광주리에 이고 섬진강 나룻배를 타고 시장을 오고 갔습니다. 여름이 슬슬 다가올 즈음 오일장을 다녀온 아줌마들 손에는 다들 부채가 들려있었습니다.


그 시대를 반영하듯 유명한 영화배우 사진이 새겨진 계란형 부채는 주로 여자들이 사용 했습니다.

대나무 살이 많아 부치면 제법 옆에 있는 사람까지 시원했던 무늬 없는 부채는

주로 남자들이 사용했습니다.


비료포대가 비닐로 나오기 시작하자 우리 할머니는 다 쓰고 난 비료포대를 잘라서 주름잡은 후 부채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부채가 여러 사람이 사용하다 보면 종이로 만든 거라 살이 부러지고 종이가 찢어지기도 해서 항상 여름만 되면 부채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료포대로 만든 부채 덕분에 손님이 오셔도 이곳저곳에 두었던 탓에 할머니 표현대로 푸지게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모깃불을 마당 가운데 피워놓고 매운 연기를 날려 보내기도 하고 달려드는 모기도 쫓기도 했던 부채가 찬 바람이 나기 시작하면 슬슬 천덕꾸러기가 되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지요.

할머니는 그때마다 혀를 차시고 부채를 모아서 뒷방 마루에 있는 두지 함에 넣어두셨습니다.


전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선풍기가

또 무더위에 한몫을 톡톡히 했습니다.


손님이 오시면 땀을 식혀 주기 위해 고정을 시켜놓고 바람을 맘껏 쏘이게 했고 좀 시간이 지나면 우리 할머니께서는 "똘래 똘래" 선풍기를 돌려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똘래 똘래"라는 말은 왔다갔다라는 말씨인데 우리도 자주 그 말을 사용하며 웃기도 했지요.


햇빛 가리개로도 사용했던 부채 대신 요즘에는 휴대용 손 선풍기까지 만들어져서 길거리 어디에서도 사용이 가능해졌습니다.


열 식구가 살아도 선풍기 한대로 충분히 여름 나기를 했던 때가 불과 얼마 전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방마다 에어컨이 설치된 집도 많습니다. 폭염에 더없이 고마운 물건이긴 하지만 저녁내 가동하고 자고 나면 몸이 부은 듯하고 몸이 마비된 듯해서 한참 애를 먹어야 제 상태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살살 붙여주는 부채바람은 시원하면서도 할머니, 어머니 따뜻한 사랑이기도 했습니다.


파리 모기떼를 쫓아주기도 하고 예쁜 영화배우들 웃는 얼굴이 바람과 함께 살랑살랑 우리 곁을 맴돌면 어느새" 미워도 다시 한번" "가슴 아프게" "맨발의 청춘, " 등 화면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다가 서늘한 바람이 불면 손에서 놓지 못한 부채가 내년을 기약하며 두지 함 속에 들어갑니다.


이제는 정말 그분들의 영화나 부채도 추억 속에나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여름 칠월부터 시작된 더위에 못살겠다 외마디 소리를 외치고 다녔지만 또 작별을 고하려 하니 아쉽네요.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한번 더 남극의 뜨거운 햇빛을 비추어달라는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과실들이 핏 빛 정열로 선명하게 빛을 내도록 아쉬움에 여름을 붙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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