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잎처럼 잎이 넓고 두꺼운 토란 잎에 물방울이 또르르 떨어진다.
동글동글한 크고 작은 물방울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추석이 가까워오자 토란도 캐고 토란대는
여러 갈래로 쪼개서 말리고 토란 잎도 묶어서 햇볕에 말렸다.
물방울 미끄럼틀이 사라지고 나면 추석날에는 포근포근한 토란국을 먹는다.
해년마다 명절만 돌아오면 도회지로 이사 간 언니들이 오려나 섬진강 백사장으로 마중 나간다.
기다리다 심심하면 애꿎은 아카시아 잎을 따서 한잎 두잎 손가락으로 튕겼다.
어느 해 추석 한 살 많은 언니들이랑 똑같이 색동 한복을 입고 집안 어르신들과 함께 성묘를 갔다.
아껴두었던 꼬막, 밤. 대추 등 산소 주변에 던지고 올 때 어른들 몰래 다시
주워서 먹고 왔던 철부지들이었다.
같은 학교 다닐 때 세 명이 합치니 어디 가나 힘이 생겨서 웬만해서는 우리들을 대적하지 못했다.
한 울타리에서 살았던 우리들은 부엌문만 열면 우리 집 마당이었다.
눈만 뜨면 울타리 없는 마당이 놀이터가 되어 뛰어놀았다.
어느 해 마당이 메말랐는지 흙을 퍼다 물과 함께 반죽해서 이리저리 흩어놓았다.
진흙밭이 된 마당에 낡은 가마니를 깔아 두었다. 시간 날 때마다 가마니를 옮겨가며 밟아주고 땅을 돋아주었다.
벽마다 하얀 석회도 깨끗하게 발라놓았다.
학교를 다녀온 우리들은 크레용으로 하얗게 발라놓은 벽에 그림도 그리고 그날 배운 글씨도 써 놓았다. 내심 알고 있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깨끗하게 석회로 칠해놓은 벽마다
알 수 없는 그림과 낙서로 어지럽혀 있었다.
들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오신 할머니께서 벽에 알 수 없는 낙서로 빼곡하게 찬 광경을 보시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셨다.
사촌언니들과 함께 세명 머리카락을 한데 묶어 놓고 진흙밭이 된 마당에다 벌을 세웠다.
이리저리 흔들릴 때마다 얼마나 악을 쓰고 울었는지 모른다. 젖은 걸레로 아무리 지워도 얼룩얼룩 해진 우리들의 벽화 작품은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 있었다.
추석 밑이 돌아오니 그때가 생각나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지금은 셋이 다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다.
더구나 사촌 언니는 외국에서 살고 있으니 만나기가 쉽지 않다.
추석 밑에 섬진강가에 나가서 언니들을 기다렸던 아련한 추억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오늘은 언니들에게 안부 인사라도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