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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운동회

가을 운동 굿은 최고의 축제였다.

by 진주


요즘 초등학교에서 애국가와 행진곡이 울러 퍼진다. 코로나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겼.

그러나 요즘 들리는 애국가가 다르게 느껴진 이유는 그동안 닫혀있던 교문이 활짝 열렸기 때문이다. 친구 이름을 부르며 뛰어가는 아이들, 신호등 앞에서 손자, 손녀를 마중하는 할머니 모습들이 정겹기만 하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때는 가을 운동회는

온 마을 축제나 다름없었다.

쌀쌀한 날씨에 반팔과 짧은 다우다 팬티만 입고 을 나섰다.

광목으로 발바닥을 몇 번이고 누빈 예쁜 덧 보선을 신고 양쪽에 달린 하얀 끈을 십자로 발목을 묶었다.

다우다로 만든 여자팬티는 바지통에 고무줄을 넣었다. 풍선에 바람 불어넣은 것처럼 풍성한 팬티를 '부르마'라 불렀다.

이른 아침 이슬 내린 산길을 친구들과 함께 청색과 하얀색으로 된 머리띠를 동여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었다.

우리는 머리띠를 매는 순간부터 선의의 경쟁자가 되었다.

밤새 이슬에 젖어 날지 못한 고추잠자리가 풀섶위에서 간들간들거렸다.

명산이라 불리는 산이 가까워질 때쯤 퍼진 햇살에 날개를 말린 잠자리들이 가볍게 날개 짓을 한다. 학교 교정을 들어서자 물기 마른 오동잎이 나뒹굴고 운동장에 걸려있는 만국기가 파란 하늘을 뒤덮었다.

행진곡이 울러 퍼지고 부지런한 학부형들은 벌써 한복자락을 펄럭이며 교문을 들어섰다.

같은 동네끼리 운동장 한쪽에 자리 잡은 학부형들 옆에는 함지박이 놓였다.

새로 지은 햅쌀로 만든 찰밥, 떡, 김밥, 식혜등 점심시간에 먹을 먹거리가 담겨있었다.



교장선생님의 운동회 격려사가 끝나고 악대장의 휘파람 소리와 함께 경쾌한 행진곡이 울러 퍼졌다.

운동장 한 바퀴를 돌며 청군과 백군이 나뉘애서 운동장 한쪽에 자리 잡았다.

반별 달리기는 여덟 명이 한 조로 달렸다. 해년마다 등수 안에 들지 못하고 마지막 골인지점에서 4등으로 밀려났다.

운동회 때마다 달리기로 공책을 받아 본 적이 없어 상 받은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다.

손님 찾기로.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담임 선생님이나 학부형이 씌인 종이를 주우면 최고 행운이었다.

중학생도 별로 많지 않은 시절에 하필 '여학생'이 씌인 쪽지를 주었다. 눈을 씻고 찾아도 없어서 슬그머니 뒤로 빠지고 말았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악착같이 찾아야지 왜 뒤로 빠지는지 저런 학생이 있어서 큰일이라고 했다. 속이 상했다. 나라고 달리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지금 여학생이 어디 있을까? 다들 중학교에서 공부하고 있겠지.

훗날 알았다. 여학생은 꼭 중학교 다니는 여학생만 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한 달 동안 준비했던 여학생들의 소고춤과 강강술래로 운동회는 점점 흥이 넘쳤다.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강강술래를 외치며 흥이 난 우리들은 버선짝이 보이도록 발을 굴렸다.

막걸리 몇잔으로 기분 좋은 학부형들은 우리랑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었.

남학생들 기마전은 전투나 다름이 없었다. 서로 상대 적장의 모자를 뺏으려고 함성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상대 적장의 모자를 빼앗아 자기 머리에 쓰고 손을 흔들며 친구들 팔로 만든 가마를 타고 진영으로 돌아갔던 대장 친구는 누구였을까?




각 마을 학부형들 중에 선수로 뽑힌 마라톤 경기가 운동회 마지막을 장식했다.

교정을 나가 면사무소에서부터 섬진강까지 쭉 뻗은 길에 순경 아저씨들이 오토바이에 태극기를 달고 먼저 출발했다. 그 뒤를 따라 선수로 뽑힌 학부형들이 달렸다. 코스모스가 활짝 핀 길에는 선수들이 지나갈 때마다 응원하듯 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올림픽 마라톤을 응원한 것처럼 우리들은 아버지들을 향해 발을 구르고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청군이나 백군이 이겨도 놀이가 없던 시절 가을 운동회는 온 마을 축제로 끝이 났다.

함지박을 이고 가는 어머니들 뒤에 막걸리로 흥이 난 아버지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지러진 옷자락 ~~~




운동회를 마치고 난 후 사교 시를 마치고 각 마을로 밴드부들은 공연을 다녔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밴드부가 결성되었는데 쓸만한 악기가 없었다고 한다.

하모니카는 녹이 슬고 피리는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았다. 큰 북, 작은 북도 찢어지고 심벌즈도 녹이 슬었다. 그래서 학부형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각 마을에서 보리쌀과 쌀을 걷어 필요한 악기를 샀다고 한다.

운동회를 마치고 가을걷이를 하고 계신 학부모님들에게 답례를 하기 위해 동네마다 인사를 다녔다.

고달리, 백곡리, 학교에서 십리길은 족히 되었다.

다리가 아파서 투덜대기도 했지만 동네 어귀만 들어서면 악대장의 호루라기에 맞추어서 줄을 정비했다.

둥둥 큰북이 힘차게 울리면 모든 악기가 제각기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가을 들판에 울려 퍼졌다.

풀기 마른 가을 냄새가 코끝에서 맴돌고 허수아비도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목이 마른 우리들은 마을 어귀를 들어서자 우물가부터 찾았다.

물 들이켜는 소리가 꿀떡꿀떡 들렸다.

선생님들은 학부형들의 간단한 상차림으로 막걸리에 목을 축였다.





1960년대 말 가을 운동회를 어르신들은 굿이라고 불렀다.

놀이 문화가 없던 시절 운동 굿을 즐기고 막걸리 한잔에 동네마다 춤사위가 벌어졌다.

그 시절 가을 운동회는 자녀들과 어른들의 최고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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