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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Sep 23. 2022

가을 운동회

가을 운동 굿은 최고의 축제였다.


요즘 우리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는 아침마다 애국가가 울러 퍼진다.

코로나 이전에는 애국가, 행진곡이 울러 펴져도 당연하게 여겼데 요즘 들리는 애국가가 다르게 느껴진 이유는 그동안 닫혀있던 교문이 활짝 열렸기 때문이다.  재잘거리며 등, 하원하는 아이들 소리도 들리니 생동감이 넘친다. 그러나 이맘때가 되면 운동회 연습하느라 학교에서 들리는  신나는 음악소리와 선생님들의 마이크 소리,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옛날에는 놀이 문화가 빈약하던 때라 가을 운동회는 온 마을 축제나 다름이 없었다.

학교 교정을 들어서면 물기 마른 오동잎이 운동장에 걸려있는 만국기와 함께 우리들을 맞이한다.  

광목으로 발바닥을 몇 번이고 누빈 발레슈즈 같은 예쁜 덧 보선을 신고 하얀 메리야스와 다 우다로 만든 운동복 팬티를 입었다. 이른 아침 이슬 내린 산길을 친구들과 함께 이마에 청군, 백군 머리띠를 동여 매고 학교를 갔다.

명산에 가까워 올 때쯤  밤새 이슬에 젖어 날지 못한 고추잠자리가 퍼진 햇살에 날개를  말리고 가볍게 날개 짓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행진곡이 울러 퍼지고 교장선생님의 운동회 격려사가 끝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반별 달리기는 여덟 명이 한 조로  해년마다 내 목표는 3등이었지만 마지막 골인지점에서 4등으로 밀려나 공책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상 받은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다.


한 달 동안 준비했던  여학생들의 소고춤과 강강술래로 흥을 돋아 춤을 추면 막걸리 한잔으로 기분 좋은 학부형들은 우리랑 함께 춤을 추었다음 순서로 남학생들의 기마전으로 서로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를 외쳤던, 그날의 함성이 지금도 귓전에 울린다. 상대 적장의 모자를 빼앗아 자기 머리에 쓰고 의기양양하게 손을 흔들며 가마를 타고 진영으로 돌아갔던 대장 친구는 누구였을까?

각 마을 학부형들 중에 선수로 뽑힌 마라톤 경기가 운동회 마지막을 장식했다. 교정을 나가 면사무소에서부터 섬진강까지 쭉 뻗은 길에 순경 아저씨들이 오토바이에 태극기를 달고, 그 뒤를 따라 달리는 길 양쪽에는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있었다.  올림픽 마라톤을 응원한 것처럼 우리들은 교정으로 다시 달려온 아버지들을 향해 발을 구르고 함성을 지르며 힘찬 박수로 응원을 보냈다.

청군이나 백군이 이겨도 놀이가 없던 시절 가을 운동회는 온 마을 축제로 끝이 났다.


밴드부를 만들었지만 악기가 낡아 제 기능을 못하자,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각 마을에서 보리쌀과 쌀을 걷어서 악기를 샀다고 한다.  운동회를 마치고 가을걷이를 하고 계신 학부모님들에게 5, 6학년들로 이루어진 밴드부들이 들길과 산길을 걸으며 동네마다 답례로 인사를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학교 중심으로 십리길 되는 길을 걷다가  다리가 아파서 투덜대기도 했지만  동네 어귀만 들어서면  악대장의 호루라기에 맞추어서 줄을 정비했다.

큰북이 울리면 모든 악기가 아름다운 하모니로 가을 들판에 울려 퍼지고 풀기 마른 농촌 가을 냄새가 코끝에서 맴돌고 허수아비도 밴드부에 맞추어서 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백곡리에 도착해서  동네 우물가에서 목이 마른 우리들은   바가지로 물 퍼서 마시고  선생님들은 학부형들의 간단한 상차림으로  막걸리에 목을 축였다.


1960년대 말 그때 당시 가을 운동회를 어르신들은 굿이라고 불렀다

운동 굿을 즐기고  막걸리 한잔에 동네마다  춤사위가 벌어졌던 1960년대 말 시골에서는 자녀들과 어른들의 최고 축제였고  문화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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