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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때마다 사라 덕분에 살았습니다

뜻이 있으셨습니다

by 진주

우리 집 둘째 오빠가 결혼이 늦어지자 집안 어르신들이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정월 초하루 설날이 되면, 새 떠매 계시는 할머니께 세배를 가면 "아이고 우리 늙은 강아지 왔냐"! 하시며 올해는 꼭 장가를 가라며 덕담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오빠가 장가를 들었습니다.

빨간색 두루마기를 입고 수줍은 미소를 띠며 대문을 들어서자 공떡 집 둘째 며느리 새 각시가 왔다고 동네 친척 분들이 음식을 장만하다 말고 줄줄이 나와서 반겨주었습니다. 그 무리 중에 콩과 미영 씨를 던져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아들, 딸 낳고 잘 살아라는 의미가 있었던 거지요.


손자가 결혼해서 너무 좋아하시던 할머니께서 얼마 되지 않아 편찮으시자 올케언니가 할머님을 섬겨주시기 위해 시골집으로 잠시 오셨습니다.


"내사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어찌 부산에서 이 골짜기 산동네로 시집을 왔을꼬"?

장마가 져서 섬진강 배를 탈 수 없게 되자 곡성에서부터 목동을 거쳐서 고달리로 접어드는 길에 나에게 올케언니는 말을 건넸습니다.

나는 안듯 모른 듯 "긍께 말이여" 하고 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나는 언니가 한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되었습니다.

만세전부터 우리 집안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진 평탄치 않은 오빠의 앞길에 사라를 예비했던 거지요.


중학교 때부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고

대학 졸업 후에는 하란 땅 부산에서 사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가는 중에 힘들면 아내를 팔았습니다.

오빠도 사업이 잘 될 때는 잘되는 대로 언니를 외롭게 했고, 안되면 안 되는 대로 언니는 오빠의 힘든 감정의로 스펀지 역할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뭄이 들자 두려워서 애굽으로 내려가 바로에게 사라를 팔았지만 하나님이 지켜 주셔서 살아났고 영적 흉년이 들자 또 아비멜렉에게 자기만 살려고 아내를 팔아먹었지만 한 번도 사라는 왜 나를 팔았느냐 항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 오빠도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혈육을 떼어 내지 못하고 동생과 조카들도 데리고 갔지만 번번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고 배신도 당합니다. 위대한 결혼은 한 남편, 한 아내로 자기매김 하기 위해 숱한 고통을 치르며 내 힘으로 할 수 없어서 하나님만 부르짖으며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김양재 목사님 위대한 결혼 중에서) 총체적인 고난 속에서 살았던 사라 언니는 결혼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임을 일찌감치 깨달았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기 위해 어떤 행동도 옳고 그름으로 따지지 않았습니다.


사라 언니는 나이 들어 이삭을 낳았습니다.

어렵게 얻은 자녀였지만 진로를 잡지 못해 비실비실 거렸습니다

총체적인 고난 속에서 자라나는 꿈나무들을 위해 두란노 어린이집을 세우고 세상적인 자녀들을 영적 자녀들로 키우기 위해 한평생을 바쳤습니다.


남편 아브라함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이끈 사라 언니, 늦게 얻은 자녀도 믿음으로 키워 결혼도 하고 이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그 긴 고난의 여정 속에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두란노 유치원을 세우고 영혼구원을 위해 살았던 사라 언니가 올 2월에 유치원을 폐업했습니다.


나이도 어느덧 칠십을 넘었습니다. 더 큰 이유는 90년 대 초에는 개발 붐으로 산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구도시가 되었고, 출산율이 저조한 탓에 아이들 웃음과 울음소리 가 들리지 않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폐업을 결정하게 되었답니다.


어린아이를 양육하는 기관에서는 칼날 위에 물방울처럼 하루하루 긴장하며, 보내야만 하는 곳입니다.

아침 등원부터 유치원에 머무는 동안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40여 년 동안 무사고로 마칠 수 있었던 게 하나님께서 하신일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없어서 날마다 무릎 꿇고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오다 보니 40여 년이 훌쩍 지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날마다 기도하며 예수 신랑 만나서 오빠를 우리 집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언니 생각만 하면 믿음의 땅 헤브론을 생각나게 하는 열국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텅 비어있는 유치원 교실을 볼 때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던 선생님들의 발자국 소리가 귀에 쟁쟁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두란노에서 보이지 않는 씨를 뿌리며 새싹을 틔워낸 자녀들이 어엿한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 사회 곳곳에서 열매를 맺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소쩍새 우는 봄날도 먹구름 속에서 천둥치 던 여름날도 지나고 거울 앞에선 국화꽃 한 송이처럼 ~~

그 진한 향기로 배고픈 선교현장으로 나아가는 우리 사라 언니!

말씀대로 살고 누리는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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