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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를 잃었지만

어머니 덕분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by 진주

아침에 세 시간씩 섬기시던 어르신께서 감기로 편찮으셨다.

허리 협착증으로 계속 치료를 받으셨는데 병원 오고 가는 길에 좀 무리가 되었나 보다. 처음에는 코로 나인 줄 알고 염려했는데 다행히 감기었다.


세 시간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수박, 계란, 땅콩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서너 시간이 지난 후 배가 살살 아파와서 낮에 먹은 것이 잘못돼서 배탈이 난 줄 알았다. 그런데 저녁 내내 오른쪽 배가 만질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해서 병원에 갔더니 맹장염이란다.


어르신 병원 다니시는 중에 나도 맹장염으로 수술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최소 이 주간은 쉬어야 된다고 한다. 독일에서 휴가차 한국에 온 따님도 한 달 일정을 마치고 며칠 후면 다시 독일로 출국한다.

그런데 어머님 보살피는 요양보호사 건강이 좋지 않으니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임시로 섬겨주던 요양보호사님께서 계속 근무하기로 하셨다고 사회복지사가 전해주었다.


그 찰나 요양병원 실장 자리 제의가 같은 교회 다니는 집사님으로부터 들어왔다.

한 달 동안 시간 여유를 줄 테니 그때 가서 결정하라고 한다. 결코 쉬운 자리는 아니라고 잘 생각해 보라고 한다.

요즘 요양병원 간병사들이 거의 중국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한다.

어렵고 힘든 일이라 인력수급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그동안 입시학원 상담실장 경력이 있는데

그들과 관계만 잘 맺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기다릴 필요 없이 미리 찜을 하기 위해 전화드렸더니 상담실장이 다시 재직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렇게 육십오 세 취업 도전기는 한 여름밤의 꿈이 되어 버렸다. 가족 카톡 방에 "엄마 일자리 잃었다" 다들 기도해줘 했더니 자녀들이 지금은 환자의 때를 지키며 가는 것이 적용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입시학원을 퇴직하고 백세 되신 친정어머니를 섬기기 위해서 요양 보호사 자격증 준비를 했다.

그런데 코로나 기간이라 시험이 자주 연기되어서 자격증이 나오기까지 십 개월이 걸렸다. 그 사이 어머니는 결석도 안 하시고 주간보호센터 잘 다니셨다.

여름부터 입맛이 없고 소화가 안돼서 고생하셨다. 주간보호 센터 가시려다 지팡이를 놓으신지 백한 살 되시던 겨울 천국 가셨다.

결국 어머니를 위해서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사용하지 못했다.


어머니 떠나보내고 난 뒤 주간보호센터에서 만들어 오신 작품과 못다 한 바느질 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그동안 잘 섬겨드리지 못한 죄책감으로 엄마! 미안해 무뚝뚝한 딸과 사느라 섭섭할 때 많았지 하며 울고 다닐 때가 많았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어머니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더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집에 있으면 상실감으로 우울증이 심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처럼 몸도 마음도 편찮으신 어르신들을 섬기며 용돈도 벌 수 있는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일 년 반 동안 수전증과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우울증이 심한 92세 어르신을 섬겼다. 날마다 똑같은 말씀 하셔도 처음듣는것 처럼 어르신께 맞장구도 잘 쳐렸다. 야채도 몇 센티로 썰고, 포크, 칼 놓은 자리 도마, 그릇 순서까지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놓아두어야 했다. 만약에 제 자리에 놓치 않으면 바로 불호령이 떨어졌다.

성격이 꼼꼼하지 않은 나에게는 그 일이 가장 힘들었다.


그래도 어르신이 요구하신 건 군소리 없이 다 순종했다. 그런데 왜? 우리 어머니에게는 맨날 가르치려고만 했을까? 생각할 때마다 죄송하고 마음이 아프다.

봄에는 코로나가 걸려서 삼주을 쉬었어도 기다려주셨.

그런데 맹장염 수술 후에는 좀 더 쉬어야 한다고 하자 다른 분으로 교체하셨다.

결국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어찌 되었건 수술 한 곳 실밥 풀었고 현재 환자이니 이때를 잘 지키며 가는 것도 순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어머니와 사 년을 함께 사는 동안 주고받은 이야기를 형제들 카톡방에 올렸다.

그랬더니 둘째 오빠께서 글을 써보라고 격려해 주셨다. 옛날 우리 세대들이 살았던 이야기를 가끔 한편 씩 써보기도 하지만 단어 자체가 촌스럽고 부끄러울 뿐이다.


그런데 그동안 모아놓았던 글로 브런치 작가로 부르심을 받았다.

천국 가신 후에도 어머니께서 그동안 남겨주신 집안 이야기가 결국 나에게 큰 유산이 되었고 글 쓰는 소재가 되었다.


일자리는 잃었지만 어머니 덕분에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이다.

사람 냄새나는 우리 세대들의 따뜻했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작가 #요양보호사 #어머니 # 글 소재 #어르신 #맹장염 #육십오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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